책소개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놀라운 일들
‘8개의 익살극’이라는 부제가 붙은 장-미셸 리브의 ≪동물 없는 연극≫은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놀람의 예술에 바치는 겸허한 기여고 사회제도의 침울한 감금 장치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경의”다. 8편의 짧은 단편 희곡에는 러브 스토리나 에로틱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일상의 사소한 소재에서 출발하고 있다. 치사함, 비루함, 비겁함, 종교에 대한 편협함, 지적 허영심 등 어디서나 늘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그러나 주제가 천박한 코미디나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생각할 거리를 주면서 격조와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시, 환상, 파스, 철학 등을 담고 있는 조각조각의 퍼즐을 통해 따뜻한 휴머니즘을 느끼게 하는 코미디다.
‘동물 있는 연극’은?
“사실은, 우리가 말이야. 매일 조금씩 동물로부터 멀어진다는 데 있어. (…) 사실 우린 동물 외에 다른 게 아닌데.” 작품의 제목이 되고 있는 “동물 없는 연극”의 의미는 여덟 번째 단편 희곡 <추억>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동물 없는 연극”은 부재를 통해 존재를, 부정을 통해 긍정을 찾아보게 하는 작품인 것이다.
여덟 편의 단편 희곡은 기성 가치 속에 결정되어 있지 않은 세계, 우리의 상상력을 거세하지 않고 자유를 속박하지 않는 어떤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해 매번 작은 혼란의 순간을 만든다. 조용한 일상을 교란시키고, 진부한 생각을 누전시켜 상투적인 관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이 세상이 이렇게 되도록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의 문이 출구 없이 다 닫혀 버린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작가는 “동물 없는 연극”을 통해 현실을 벗어나 유머가 부조리와 함께 존재하는 어떤 세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200자평
장-미셸 리브의 작품들은 판타지와 상상력, 장르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놀람과 호기심, 유머, 풍자, 웃음을 유발시키는 코미디로 알려져 있다. 2001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동물 없는 연극>은 “익살스럽고, 부조리하고, 잔인하기도 한” 모두를 웃게 만드는 희곡이다.
지은이
장-미셸 리브(Jean-Michel Ribes)는 1946년 파리에서 출생했다. 필리프 코르상(배우), 제라르 갸루스트(화가)와 1966년에 ‘겉옷(Pallium)’이라는 극단을 처음으로 만들게 된다. 학업을 계속하면서(불문학 석사와 스페인어 학사) 자신의 극단에서 배우와 연출을 계속한다. 1970년에 그는 첫 희곡 <근육질 딸기>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으로 극작가로서 곧바로 인정을 받는다. 4년 후인 1974년에는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되고, 미셸 베르토와 함께 베르토-리브 극단(Compagnie Berto-Ribes)을 창단한다. 그는 부조리 희극 계열의 작품을 선호하는데 특히 베케트와 이오네스코 같은 작가들을 좋아하고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전통과 성상파괴자 작가들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20여 편의 희곡을 쓴 극작가이며, 샘 셰퍼드, 코피, 그룸베르그, 아라발 등의 현대 작품을 즐겨 다루는 연출가이자, 영화 및 티브이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다. 연극 및 영화와 티브이 작업도 하는 현역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02년에 작품 <동물 없는 연극>으로 몰리에르상(불어권 최고극작가상, 최고의 희극작품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에 그의 작품 전체에 대해 ‘연극의 기쁨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연극대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프랑스정부로부터 ‘슈발리에 드 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08년 제1회 앙굴렘 불어권 영화 페스티벌 심사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2010년 7월 프랑스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옮긴이
임혜경은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프랑스 몽펠리에 제3대학, 폴 발레리 문과대학에서 로트레아몽 작품 연구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및 문과대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9년에 창단한 ‘극단 프랑코포니’ 대표이며, 프랑스문화예술학회 회장,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공이모) 대표, <공연과 이론> 편집주간, 희곡낭독공연회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공이모와 연극평론가협회 회원으로 연극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공역자인 카티 라팽(한국외대 불어과 교수)과 함께 우리나라 문학을 프랑스어권에 소개하는 번역 작업을 시작해 대한민국문학상 번역신인상, 한국문학번역상을 카티 라팽과 공동 수상한 바 있다. 윤흥길의 장편소설 ≪에미≫를 프랑스 필리프 피키에 출판사에서, 윤흥길의 중단편 선집인 ≪장마≫를 프랑스 오트르 탕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카티 라팽과 공동으로 한국 희곡을 불역해 최인훈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윤대성의 <신화 1900>, 이현화의 <불가불가>를 파리, 밀리외 뒤 주르 출판사에서 1990년대 초반에 출간했다. ≪한국 현대 희곡선집≫(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 오태석의 <자전거>, 이강백의 <봄날>, <호모 세파라투스>, 김의경의 <길 떠나는 가족>, 이만희의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김광림의 <사랑을 찾아서> 수록)은 1990년대 후반에 파리 라르마탕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이윤택의 ≪문제적 인간, 연산≫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32개국 ‘희곡 강독회’ 참가작이며, 프랑스 브장송, 레 솔리테르 젱탕페스티프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윤택 희곡집≫(<오구>, <불의 가면>, <바보 각시> 수록)은 파리, 크리크 라신 출판사에서, ≪한국 현대 희곡선≫(차범석 <산불>, 최인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이근삼 <30일간의 야유회> 수록)은 파리 이마고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연극의 어제와 오늘≫(편역)이라는 한국 연극 전문 연구서를 파리 라망디에 출판사에서 2007년에 출간한 바 있다. 2010년에는 이현화의 희곡집 ≪누구세요?≫(<누구세요?>, <카덴자>, <산씻김>, <0.917>, <불가불가> 수록)가 파리의 이마고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 외에도 국립극장의 튀니지 공연 대본인 김명곤의 희곡 <우루 왕>을 불역한 바 있으며, 유민영의 연극 논문 <해방 50년 한국 희곡>을 불역해 서울, 유네스코 잡지 ≪르뷔 드 코레(Revue de Coreée)≫에 게재한 바 있다.
2004년 이후부터는 희곡 낭독 공연에 참가한 동시대 불어권 희곡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장뤼크 라가르스의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상대방의 자리≫(연극과 인간, 2007), 캐나다 퀘벡 작가 미셸 마르크 부샤르의 ≪고아 뮤즈들≫(지식을만드는지식, 2009)과 ≪유리알 눈≫(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프랑스 극작가 장 미셸 리브의 ≪동물 없는 연극≫(지식을만드는지식, 2011)을 출간했고, 스웨덴 작가인 라르스 노렌의 <악마들>, 아프리카 콩고 작가 소니 라부 탄지의 <파리 떼 거리> 등을 번역했다. 그 외에 카티 라팽의 시집 ≪그건 바람이 아니지≫(봅데강)를 번역한 바 있으며, 다수의 논문 및 공연 리뷰를 썼다.
차례
<동물 없는 연극: 8개의 익살극>
평등-박애
비극
모니크
갈매기
일요일
기관지
USA
추억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안: 어쨌든, 내가 보기엔 지금 사람들이 너무 머리만 쓰는 것 같아! 머리! 머리! 지금은 지능만 중요해. 낮이고 밤이고 머리통만 말이야.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똑바로 앞으로만 속력을 내는 거야. 도대체 어디로 가기 위한 걸까?
카를: 그게 좀 문제지.
안: 그 결과, 이제 더 이상 잉어를 그리지 않는 거야.
릴리: 맞아, 정말 맞아.
리샤르: 사실은, 우리가 말이야, 매일 조금씩 동물로부터 멀어진다는 데 있어.
카를: 말하자면, 우리 자신으로부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