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김성한의 초기 단편 일곱 편을 수록했다. <자유인>은 도덕과 양심을 벗어던진 여학교 교원의 모습을 그려 교육계의 타락을 꼬집는다. <암야행>, <속·암야행>은 각각 전편과 후편으로 내용이 이어진다. 친일파 청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골짜구니의 정적>은 문둥이와 사투를 벌이는 시인의 이야기다. 지식인이 현실과 단절되어 지식 자체에 갇히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오분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를 통해서, <바비도>는 영국의 종교 개혁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정치권력과 종교의 타락을 꼬집고 있다. <극한>은 한·중·일 삼국을 배경으로 일본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일본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편견을 다루고 있다.
김성한은 극단적으로 뒤집혀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는 타락한 인간 세계를 그리고 있다. 선한 인간들은 고통을 겪고, 악한 인간들에게 배척받으며, 심지어 죽음에 이른다. 반면 악한 인간들은 선한 인간들에게 승리하고 더 많은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김성한은 이렇게 전도되고 뒤죽박죽이 된 세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현실에 문제를 느낀다. 그는 풍자와 우화로 6·25전쟁과 전후의 혼란스러운 상황, 부패와 부정으로 얼룩진 자유당 정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 문화의 일방적인 수입이라는 현실에 대응한다. 풍자와 우화가 아니고서는 전후의 한국 사회를 묘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200자평
1950년대 우리나라는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타락한 사회였고, 전도된 가치가 당연한 사회였다. 이 시기 김성한의 작품들은 6·25전쟁 전후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여실히 그려 낸다. 친일파 청산 문제, 타락한 교육 현실, 부패와 부정으로 얼룩진 정권, 무분별한 외래 문화 수입과 같은 당시의 부끄러운 단면을 풍자하고 있다.
지은이
김성한(金聲翰)은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4년 일본 동경제대를 중퇴했으며,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무명로(無明路)>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1955년 사상계사에 입사하면서 그의 문학은 <사상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김정한이 지식인의 타락을 경고하고 적극적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성향과 기독교 정신주의를 보인 것은 <사상계>의 정신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1955년 김성한이 <사상계>의 편집주간이 되면서 편집 방향은 민족 통일 문제를 지상 과제로 삼았고, 민주 사상의 함양과 경제 발전, 새로운 문화의 창조, 식민지 정신의 청산을 내걸었다. 여기서 새로운 문화의 창조, 식민지 지배로 인해 비굴해진 민족성의 청산은 김성한 소설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 시기부터 <사상계>는 비평과 소설을 다수 게재하면서 문학적 성격이 강화된다. <사상계>가 신인들의 등단을 주도하고 문학적 성격이 강화된 것은 김성한 이후였으며, 김성한에 이어 편집주간이 된 안병욱에 의해 더욱 활발해진다. 김성한은 <바비도>, <제우스의 자살>(이후 <개구리>로 개제), <폭소>, <귀환> 네 편을 <사상계>에 게재한다. 김성한 소설이 친일파나 사이비 지식인 등 부정적인 인물들을 형상화한 것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건설’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당시 장준하가 “오직 건설적 목적과 방안을 가진 정당한 비판만이 후진 정체 사회를 문명사회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연결되고 있다.
1957년 <사상계>를 퇴사한 김성한은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1981년까지 근무하면서 시대의 담론을 주도하는 언론인으로 활동한다. 그는 동아일보에 근무하는 동안에 영국 맨체스터 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역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역사와 사회에 대해 항상 주목했다. 1967년에는 장편 삼부작 ≪이성계≫를 발간했고, 이후에는 ≪이마≫, ≪요하≫등의 역사 장편소설을 다수 발표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장편 ≪이성계≫에 그의 1950년대 단편소설에서 다룬 주제들이 통합되어 있음을 밝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초기 단편소설에 주목하고 있다.
엮은이
김학균은 1970년에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저로는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화자의 성격 연구>(1999), <염상섭 소설의 추리소설적 성격 연구>(2008) 외에, <‘사랑과 죄’에 나타난 연애의 성립과정> 등 염상섭의 소설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자유인(自由人)
암야행(暗夜行)
속·암야행(續·暗夜行)
골짜구니의 정적(靜寂)
오분간(五分間)
바비도
극한(極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제가 한 가지 제안허겠읍니다. 남어지 다섯 명 전형 방법인데, 이것은 성적순으로 헐 것이 아니라 학교 및 여러 선생님의 사정을 고려해서 허기로 합시다. 우리두 역시 사회에 사는 만큼 체면 관계도 있을 터이니까.”
“옳습니다” 하고 선창하는 꼬마를 위시하여 소위 공명정대에 억눌려 자칫하면 기계적이 되고 침울해지던 실내 공기는 갑자기 활기를 띠었다. 모두들 들먹거리기 시작하였다. 수를 느리자고 열렬히 주장하는 교육자다운 이도 있었다.
이 때 잠잫고 있던 유영환이 일어섰다.
“학교는 보통 사회와 다르다고 봅니다. 적어도 여기서만이라도 사정(私情)이라는 것이 없었으면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 아닙니까? 수를 느리는 데도 이의가 없읍니다마는 언제나 성적순으로 하는 것이 좋겠읍니다. 이것이 공명정대가 아닙니까?”
언변이 없는 그의 말에는 열성은 보였으나 남을 움지길 힘은 부족하였다.
이광래는 서슴지 않고 응대하였다.
“선생님은 너무나 단순허십니다. 학교라구 사회가 아닌가요? 물론 우리는 공명정대해야 헙니다. 그러나 겉으로 공명정대헌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공명정대를 유지허느냐 못 허느냐에 있읍니다. 아무 힘도 없는 학원이 이 사회에서 움지겨 나가는 데는 이모저모 생각할 점이 많습니다. 다섯 명을 제 주장대로 뽑자는 것은 백사십오의 공명정대를 이 다섯으루 지탕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과연 그의 소론은 이론정연하였고 공명정대를 위하는 지성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유영환은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고군분투하였다. 그러나 다수와 한 사람이라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나종에는 일좌의 조롱까지 받았다. 영환이야말로 사회를 모르는 가련한 존재였다. 어린애였다.
“늘 말이 없다가 해필 오늘 말썽이야?”
“잘난 체해 보는 거지 머.”
“제 혼자 그래 봤자 소용 있나?”
군데군데서 이렇게 속삭이기도 하였다.
영환의 말도 안 되는 반박이 여지없이 부서진 다음 장내는 더욱더 소란하였다.
서로 자기가 부탁받은 학생의 번호와 이름을 제시하고 반드시 입학시켜야 할 정당한 이유를 개진하였다. 모두가 사회와 결부시켰고 거기 따라서 학교가 받는 이익의 막대함을 논하였다. 제 각기 자기 것이 옳았고 남의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마침내 종이쪼각을 들고 일어서는 자, 앞으로 나가는 자, 물러서는 자, 책상을 주먹으로 나려치는 자, 우두머리들과 속삭이는 자,−눈은 빛나고 팔뚝의 굴신은 재빨랐다.
-23∼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