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로만 야콥슨도 지적했던 것처럼, 크루솁스키는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 언어학계에서 충분히 평가되지 못하고 잊혔던 인물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유럽 언어학자들이 그의 연구 성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시 언어학자들은 소쉬르 이전 세대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다가 보두앵 학파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소쉬르 언어 이론의 많은 부분이 저 유명한 ≪일반언어학 강의≫가 세상에 나오기 30년 전에 이미 보두앵 학파가 발표한 언어 이론들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유럽의 학자들은 보두앵 드 쿠르트네를 중심으로 한 카잔 학파가 현대적인 구조주의 형성에 전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크루솁스키는 36세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연구 활동을 수행한 것은 1879년 부터 1884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이다. 이 시기는 독일의 소장문법학파가 형성되던 시기였기에, 크루솁스키는 그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파울의 1880년판 ≪언어사의 원리≫를 박사학위 논문에 여러 차례 인용했다. 그러나 크루솁스키가 소장문법학파의 이론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1881년의 석사학위 논문에서 그들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그들의 학문을 아리아유럽어족 언어들의 종적 상호관계를 밝히고, 아리아유럽어 조어뿐 아니라 다른 어족 언어들의 조어들도 밝혀내려는 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학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입증할 필요도 없다.” 또한 박사학위 논문 서두에서도 라이프니츠를 인용해 그들의 시도를 비판했다.
200자평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가 출간되기 약 30년 전에 이미 언어학자 보두앵 드 쿠르트네가 이끌었던 러시아의 카잔 학파에서 구조주의 관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니콜라이 크루솁스키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바람에 언어학계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쿠르트네의 제자로서 카잔 학파의 주요한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언어학 개설≫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지은이
크루솁스키는 1851년 12월 6일 볼린 주 루츠크 시의 퇴역 장교이자 지주인 바츨라프 크루솁스키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류블린 주의 헬름 시 김나지움에 입학해 1871년에 졸업했다. 그해 바르샤바 대학교 역사철학부에 입학해 트로이츠키 교수에게 철학을 배웠고, 포테브냐의 제자인 콜로소프 교수에게 언어학을 배워 그의 지도로 <러시아 민중 시가의 한 형태로서의 주문>(1875)이라는 제목의 졸업 논문을 썼다.
대학 졸업 무렵 카잔 대학교에서 교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를 만나 향후의 학업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카잔을 방문했다. 그러나 장학금은 받을 수 없었고, 대신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로부터 향후 언어 연구에 대한 귀중한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카잔 대학에서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의 일반언어학, 비교문법, 산스크리트어 강의를 성실하게 수강했다. 그리고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는 크루솁스키를 위해 자신의 집에서 슬라브 방언학, 산스크리트어와 리투아니아어, 언어학 중요 문헌 강독 등 실습 중심의 수업을 해 주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잔 대학의 학생들과 젊은 학자들이 이 수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보두앵 드 쿠르트네 학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크루솁스키는 이 수업에서 자신의 언어학 지식과 능력을 십분 발휘했으며,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가 장기 해외 출장을 가는 경우에는 카잔 학파를 이끌기도 했다.
1879년 5월 크루솁스키는 <강세와 연관된 몇 가지 음성적 현상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비교언어학과 비상근 조교수 직위를 취득했으며, 1881년 5월에 고대슬라브어 모음에 관한 주제로 석사 학위를 취득해 비교언어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었으며, 1883년 5월에는 <언어학 개설>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는 크루솁스키를 정식 교수로 임용해 줄 것을 대학 당국에 청원한 뒤 카잔 대학을 영원히 떠났다. 크루솁스키는 1885년에 정교수 직위를 취득했으며, 비교언어학, 산스크리트어, 음성 생리학, 러시아어 문법, 로망어 비교문법, 프랑스어사, 일반언어학,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과목의 강의를 했다. 그러나 너무 열성적으로 교육과 연구 활동에 전념한 결과 건강이 악화되어 자리에 눕게 되었으며, 1887년 11월 1일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옮긴이
김민수는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 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노어학을 공부했으며, 러시아 치타 국립대학교에서 철학과 인간학을 수학했다(철학박사, 언어학박사).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으며, 주로 러시아의 과학기술 분야, 에너지 분야의 전문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투르게네프 단편≫, ≪축치족 : 신앙≫ 등이 있다.
차례
서론
I. 발화에 대한 단순 분석. 발화의 다양한 요소들과 환경
II. 음성들과 음성 법칙들
III. 음성과 음성 결합체의 역사
IV. 언어 법칙에 관한 지배적인 시각들에 대하여
V. 단어
VI. 단어의 형태적 요소들의 분리와 그것들의 특징
VII. 구조 해체적 특성의 요인들
VIII. 단어의 형태적 요소들의 역사
IX. 단어 내 형태적 요소들과 언어 내 단어들의 합성
X. 단어들의 역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는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의 지도 아래 수학하면서, 언어 현상도 다른 존재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일반 학술적인 의미에서의 ‘알려진 법칙들’을 따른다는 데 대한 굳은 신념과 언젠가는 그 법칙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 있는 언어를 연구했다. 그리고 나는 점차 언어에 대한 그 어떤 전체적인 시각, 겸손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말한다면, 그 어떤 언어 이론에 도달했다.
-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