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로렌자치오’, 로렌조의 다른 이름이다. ‘로렌조 자식’이란 뜻으로 조롱과 멸시의 의도가 짙다. 신임 알렉상드르 공작 측근에서 그의 비위나 맞추며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은 대가로 피렌체 시민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그런데 그의 비행에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치보 추기경, 권세를 얻기 위해 공작을 이용하려 한다. 술에 취한 로렌조가 “오늘 밤 공작을 살해하겠다”고 떠벌이고 다니는 걸 듣는다. 공작에게 주의를 주지만 공작은 들은 체도 않는다.
모리치오 대법관, 피렌체에서는 유일하게 공신력을 인정받는 사법기관 ‘8인회의’의 의장이다. 공작과의 유착 이후 최근 이 기관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불합리한 판결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 역시 로렌조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필리프 스트로치, 피렌체 시민들은 그야말로 공작을 대신할 지도자라 생각한다. 딸이 공작의 측근에게 농락당하고, 이를 갚아 주기 위해 결투에 나선 두 아들은 부당하게 체포된다. 공작에게 대항하기 위해 가문 사람들을 모은 자리에서 딸이 독살되는 사건까지 벌어지자 전의를 잃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려 한다. 로렌조의 비행을 오랫동안 유심히 지켜봤다. 로렌조는 스트로치에게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로렌조가 스트로치에게 예고한 대로 공작이 살해된다. 로렌조가 범인으로 지목된 가운데 도시는 술렁이기 시작한다. 공작의 죽음으로 피렌체에 고대하던 공화정이 수립될 것인가. 뮈세는 ‘7월혁명’으로 왕정을 종식하고도 루이 필리프를 새로운 왕으로 맞아들여야 했던 프랑스 국민들의 허탈감, 낭패감을 15세기 피렌체 상황에 빗댔다. 레제드라마로 쓰였으나 이후 공연을 거듭했고, 현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견줄 만한 낭만주의 연극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200자평
19세기 낭만주의 연극을 대표하는 작가 뮈세의 5막극이다. 어느 날 알렉상드르 공작이 살해된다. 범인은 로렌조. 공작의 사촌이자 최측근이다. 공작의 전횡을 도우며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았던 로렌조에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뮈세는 대작 <로렌자치오>에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새롭게 재현한다.
지은이
알프레드 드 뮈세(Alfred de Musset)는 1810년 12월 11일 파리의 유복하고 교양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고위직 공무원이었던 부친은 계몽주의 시대 사상가이자 문필가였던 장 자크 루소를 열렬하게 신봉한 나머지 그의 작품집을 간행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뮈세의 외조부는 루소와 동시대 사람으로 다수의 속담극을 집필한 카르몽텔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점에서 뮈세의 집안에는 친가와 외가를 불문하고 문학을 즐기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명문으로 알려진 앙리 4세 학교에 진학한 뮈세는 일찍부터 문학과 고전에 대한 소양을 발휘했고, 빅토르 위고의 처남이자 동급생인 폴 푸셰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열일곱 살에 철학 바칼로레아를 취득한 뒤 대학에서 법학이나 의학, 음악이나 미술 등을 전공하려고 했으나 이내 그만두고 동창인 푸셰가 매형인 위고에게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를 전한 것이 인연이 되어, 샤를 노디에와 위고가 주도하는 문인들의 모임인 세나클에 출입하기 시작한다. 1833년 6월, ≪양세계 평론≫의 편집장인 프랑수아 뷜로즈가 초대한 만찬에서 6세 연상의 여류 문인 조르주 상드를 알게 된 뮈세는 곧 그녀의 연인이 된다. 두 사람은 화해와 불화를 반복하다 1835년 3월에 완전히 결별한다. 사랑과 배반, 갈등과 화해로 이들의 교제 기간은 2년이 채 안 되지만, 연상의 여인이자 선배 작가로서 상드는 연하의 연인 뮈세의 정신세계는 물론 여러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시와 희곡을 불문하고 특유의 연애지상주의를 표방했던 뮈세는 삶에서도 꾸준히 여성 편력을 이어 갔다. 상드와 결별한 뒤에는 당대 유력 정치인 달통 셰 백작의 손위 누이이자 유부녀였던 조베르 부인과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두 사람은 헤어진 뒤에도 20년 넘게 서신을 교환했다고 전해진다. 뮈세는 그 밖에도 스페인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마리아 말리브란의 동생 폴린 가르시아, 연극 배우 라첼과 로스, 브로앙, 나폴리의 왕녀인 벨지오조소 공주, 소설가 플로베르의 연인이도 했던 여류 문인 루이즈 콜레 등 여러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면서 사랑 예찬론을 몸소 실천했다. 1857년 5월 2일 영면한다.
옮긴이
이경의는 1962년 인천 부평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초·중·고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서강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며 연극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파리 4대학에서 프랑스 고전극 연구를 시작해 몰리에르 연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과정과 박사준비과정을 이수한 데 이어, 1994년 <17세기 프랑스 희극에 등장하는 바르봉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프랑스 문학사를 비롯해 프랑스 영화와 동화에 대한 강의를 맡고 있다. 고전극과 현대극에 비해 프랑스의 18세기, 19세기 연극이 국내에 덜 소개된 현실에 주목하여 마리보와 뮈세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여기에 이미 연구의 대상이었던 몰리에르까지 포함하여 이른 바 ‘3M(Molière, Marivaux, Musset)’ 번역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작품 목록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로렌조: 저한테 왜 공작을 죽이려느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럼 제가 독이라도 마시거나 아르노 강에 투신하기를 바라세요?
(자신의 가슴을 치며) 그게 아니면 아무리 때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 해골을 가진 유령이라도 되었으면 하세요? 제 그림자에서 예전에 가졌던 심장과 지금의 심장을 이어 주는 몇 가닥의 신경이라도 끊었으면 좋겠어요? 장차 실행하려는 암살이 제가 보여 줄 수 있는 마지막 미덕이라고 생각하세요? 수직으로 깎아지른 암벽에서 제가 미끄러지기를 2년 전부터 기다리셨나요? 이번 암살이야말로 그 절벽에 매달린 제가 손톱으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풀잎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저에게는 더 이상 수치심도 용기도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저 수수께끼 같은 제 삶이 조용히 마감되기를 기대하시는 거예요? 제가 예전의 미덕을 되찾고 지금의 악행을 그만둘 수 있다면 이 소몰이꾼을 그냥 살려 둘 수도 있겠지요.
<로렌자치오> 170-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