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스탕달의 이탈리아니즘, 그 시초
스탕달은 유럽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했던 여행 마니아였다.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유럽 곳곳에서 부단히 행복을 찾고자 했던 그에게 이탈리아는 특별한 곳이었다. 어린 시절 나폴레옹 원정대에 합류하여 경험한 그곳은 그에게 희망과 열정, 행복의 고장이었다.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이탈리아인들의 삶의 모습이나 그들이 창조해 낸 예술(음악과 미술)은 어린 벨(스탕달의 본명)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으며, 그를 열광시키며 딜레탕트로 만들게 된다. 따라서 스탕달의 작품 세계에서 이탈리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이탈리아니즘은 여행 일기뿐만 아니라 장편소설, 단편소설은 물론 각종 에세이, 예술 평론 등 거의 모든 작품에서 관류하는 지배적인 모티브로 떠오른다. 특히 ‘밀라노인 벨, 살았고, 썼고, 사랑했노라’ 하는 묘비명에서 보듯, 그에게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고향과 같이 편안함과 행복감을 주는 도시였다. 《로마, 나폴리, 피렌체》라는 여행 일기는 바로 이러한 작가의 이탈리아 예찬론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탕달은 여느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안내 책자의 형식을 거부한다. 그는 이렇게 조롱한다. “무미건조한 철학적 묘사 분야에서 하나의 걸작을 갖고 있다. 곧 그것은 센강의 도지사 샤브롤 씨에 의한 몬테노테 도(道)의 통계표다.” 이러한 통계표처럼 유적이나 기념물들을 세세하게 조사하고 돌멩이 하나하나를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스탕달 같은 딜레탕트에게는 무의미하거나 무미건조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존의 가이드 형식의 여행기들은 “여행객들이 지나갔던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다양한 방식, 풍습, 관습, 편견들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벽들만을 보았다”는 것이다. 반면 스탕달의 여행기는 여행하며 보았던 ‘벽’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벽의 안팎에서 생활하는 이탈리아인들의 풍습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자 한다.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스탕달의 작품이다. 1826년의 《로마, 나폴리, 피렌체》는 《적과 흑》이 출간되기 4년 전에, 《파르마의 수도원》이 출간되기 13년 전에 집필된 작품으로서, 이 책에 나타난 여러 핵심 주제와 일화의 내용은 미래의 소설 창작의 발판이 되고 있다.
200자평
일기 형식으로 모아 놓은 스탕달의 이탈리아 여행기다. 그의 여행기는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인들의 풍습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가령 성 베드로 성당이라는 웅장하고도 장엄한 예술 작품을 소개할 때도 그 예술 작품 주변의 사회적 배경, 즉 곤궁한 로마인들의 불행한 삶과, 이와 대조적인 로마 교황 정부의 사치와 부조리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밀라노인 벨(스탕달의 본명), 살았고, 썼고, 사랑했노라’ 하는 묘비명에서 보듯, 스탕달에게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특별한 곳이었다. 이후 스탕달의 작품 세계에서 이탈리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지은이
스탕달(본명 앙리 벨)은 19세기 전반부의 혁명 시기라는 격변기를 살았던 작가다. 혁명 정부, 나폴레옹 제정, 왕정복고시대, 7월 왕정 등 역사의 대변혁기 한복판에서 살았던 소설가였다. 이러한 삶의 경험은 그의 소설 작품들을 정치 사회 심리 소설로 자리매김하게 해 준다. 그는 《적과 흑》, 《파르마의 수도원》을 포함해 다섯 편의 장편소설, <바니나 바니니>를 포함해 《이탈리아 연대기》에 수록된 다수의 단편소설, 《연애론》, 《에고티즘의 회상록》, 《앙리 브뤼라르의 생애》 등 각종 에세이, 《로시니의 생애》, 《이탈리아 회화사》 등의 예술 평론, 그리고 각종 내면 일기와 서한집 등을 모은 《내면의 작품집》 등을 집필했다. 특히 이탈리아에 대한 편집광적 열정이 반영된 작품들이 소설, 에세이, 평론, 내면의 일기 등 모든 장르에 나타나는데, 그중에 《로마, 나폴리, 피렌체》는 《로마의 산책》과 더불어 《이탈리아 여행기》를 구성하는 작품이다.
옮긴이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스탕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파리3대학에서 <스탕달 소설 세계에 나타난 시간성 연구>를 통해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프랑스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논문으로는 <라신과 셰익스피어 연구>, <스탕달의 서술 전략>, <스탕달의 음악적 글쓰기> 등 다수의 스탕달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언어철학》, 《시간과 이야기 1, 2》, 《유럽 문명의 아프리카 기원》 외 다수의 역서를 출간했다.
차례
로마, 나폴리, 피렌체
해설
스탕달의 이탈리아 여행 연보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816년 9월 2일, 베를린. 나는 넉 달의 휴가를 허락하는 편지를 펼쳐 본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이가 스물여섯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얼마나 미친 듯 들떠 있는가! 드디어 그토록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보게 되다니!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사제를 피한다. 왜냐하면 성적으로 중성화된 남자들은 언제나 자유사상가들에게 화를 내기 때문이다. 예상하건대 심지어 내가 돌아오면 두 달은 ‘냉랭’해지리라. 그러나 이 여행은 내게 엄청난 기쁨을 안겨 준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3주 후에 세상의 종말이 오리라는 것을.’
-3쪽
‘아름다움’을 위해 태어난 이 고장 사람들에 있어서, 더욱이 정치를 논하는 것이 위험하거나 절망적인 고장에서는, 신축 집의 정면이 어느 정도 아름다운지 한 달 내내 관심을 갖는다. 밀라노인의 정신적 습성은 완전히 공화주의적이며, 오늘날의 이탈리아는 중세 시대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도시에 아름다운 집을 갖는 것은 지갑 속의 두둑한 돈보다 더 중요하다. 만일 그 집이 아름다움으로 눈에 띈다면, 그 집은 곧바로 주인의 이름을 갖게 된다.
-43쪽
1817년 1월 22일, 피렌체. 그제, 피렌체에 가기 위해 아펜니노 산맥을 내려오면서, 내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 얼마나 어린애 같은가! 결국 굽이진 도로에서 평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어둡고 육중한 물체와 같은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브루넬레스키의 걸작품인 그 유명한 둥근 지붕을 멀리서 목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바로 저기가 단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았던 곳이야! 이 고결한 도시, 중세 시대의 여왕이여! 바로 이 도시에서 문예가 다시 부흥되지 않았는가! 거기서 로렌초 데 메디치는 그토록 군주의 역할을 잘해서 아우구스투스 이후 처음으로 군사적 공적이 뛰어나지 않았던 궁정을 훌륭하게 꾸려 나갔어.” 결국 여러 추억들이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왔고, 나는 이성적으로 추론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곁에 있는 것처럼 격정에 빠졌던 것이다. 산 갈로 문과 그 형편없는 개선문에 다가가며, 나는 내가 만난 첫 피렌체 주민을 기꺼이 껴안았을 것이다.
-392쪽
1817년 2월 6일, 벨레트리. 우리는 로마에서 세 시간만을 보냈다. 멀리서 성 베드로의 둥근 지붕을 보았지만 결코 거기에 가지는 않았다. 일행에게 그 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내가 콜로세움을 본 것은 나폴리 도로가 아주 가까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4륜 마차가 멈춰 섰고, 우리는 10분 동안 콜로세움을 돌아다녔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보았던 숭고한 것 대여섯 가지에 드는 것이다. 우리는 로마를 그 유명한 포폴로 문을 통해 들어갔다. 아! 우리는 얼마나 속고 있는가!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대도시의 입구보다 못하다. 에투알 광장의 개선문으로 파리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 현대 로마에서 라틴어를 과시하는 기회를 찾았던 현학자들은 우리에게 그 라틴어가 아름답다고 설득했다. 거기에 영원한 ‘도시(Ville)’의 명성의 비밀이 있다. 우리의 마차는 육군성 장관이 대주교에 취임한 것을 축하하는 거대한 열병식을 하러 가고 있었던 군대의 행진 때문에 거리에 멈춰 섰다. ‘파비우스, 어디에 있는가?’ 로마 거리는 썩은 양배추 냄새로 진동한다. 코르소의 대저택들의 아름다운 창문들을 통해서는 내부의 곤궁함이 보인다.
-456~4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