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시작된 국제 금융 위기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속성과 한계를 드러낸 충격적 사건이었다. 스테파노 마시니는 이를 계기로 리먼 형제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국제적 경기 침체를 초래한 은행을 다룬 작품으로 사람들이 경제에 관심 갖게 하고 싶었다. 리먼 브러더스 사례를 연구하면서 은행의 몰락 자체는 별로 흥미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행의 역사는 곧 리먼 가족사였고, 은행의 몰락은 리먼 가문의 몰락이었다.” -스테파노 마시니
마시니는 독자가 현실적인 경제 문제의 진짜 원인, 즉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속성과 작동 원리에 근접할 수 있도록 작품을 구상했다. 독일 출신 이주민 리먼 형제가 미국에서 면화 판매상으로 시작해 은행업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는 160여 년에 걸친 장구한 이야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세계 경제를 장악하고 지배하기 위해 어떻게 발전했고, 결국 어떻게 실패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마시니는 방대한 자료 연구를 바탕으로 리먼 브러더스 가족사와 자본주의 역사를 극적인 대서사로 완성했다.
그러면서도 마시니는 리먼 가족이나 은행의 파산, 자본주의 일반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철저히 배제했다. 누가 옳고 그른지 지적하면서 반자본주의 메시지를 설교하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마시니에겐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그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게 더 중요했다.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독자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피부로 느끼게 하기 위해 마시니는 미시적인 이야기, 바로 리먼 브러더스 개인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숫자와 통계 이면에서 실제로 결정을 내리고 환경에 적응하고 내면의 욕망과 동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여 준 것이다. 이는 곧 “인간에게 유익하도록 고안된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국립극장이 영국국립극장과 제휴해 선보이고 있는 NT라이브(영국국립극장 공연 영상화 프로젝트)를 통해 2020년 한국 관객에게 처음 공개되었다. 영국국립극장은 <헤다 가블레르>,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오이디푸스 왕> 등 고전 혹은 고전 반열에 든 현대극을 엄선해 공연하고 이를 영상화하고 있는데, <리먼 트릴로지>도 그중 한 편이다. 최신 이탈리아 극작품 중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영국국립극장의 NT라이브 공연은 아카데미에서 <기생충>과 경쟁했던 <1917>의 감독 샘 멘데스 연출작으로, 2022년 토니상 5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0자평
현재 세계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탈리아 극작가 스테파노 마시니의 대표작.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초래된 국제 금융 위기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다. “인간에게 유익하도록 고안된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샘 멘데스가 연출한 영국국립극장 공연이 2022년 토니상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지은이
스테파노 마시니(Stefano Massini. 1975~)
피렌체 대학교에서 고대 문학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피콜로 테아트로 디 밀라노(Piccolo Teatro di Milano)에서 루카 론코니(Luca Ronconi)의 조수로, 마조 뮤지칼레 피오렌티노 페스티벌(Maggio Musicale Fiorentino Festival)에서 국제 감독의 조수로 일하며 연극계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L’odore Assordante del Bianco>로 이탈리아 최고 극작상인 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리상(Pier Vittorio Tondelli Award)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플라이아노상(Flaiano Prize)을 수상했고 <La Fine di Shavuoth>로 발레코르시상(Vallecorsi Prize) 후보에 올랐다. 2005−2006 시즌에는 칼렌차노(Calenzano) 만초니 극장 소속 연극 센터(Theatre Centre) 여성 극장(Theatre of Women)과 협업을 시작해 ‘우리의 삼부작(Trittico delle Gabbie)’ 프로젝트를 개발했다. 2008년 경제 위기에 뒤따른 2009년에서 2012년 사이의 사건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가장 야심찬 작품이자 성공적인 작품인 <리먼 트릴로지(The Lehman Trilogy)>를 썼다.
옮긴이
조원정
조원정은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한이탈리아대사관 등록 공인 번역사(Traduttore di riferimento)다. 번역서로 ≪비노, 아이 러브 유≫(2018, 본북스), ≪유럽의 꿈인가, 악몽인가?≫(2015, 높이깊이), ≪Il cuore dell’amore e del rispetto≫(공역, 2022, Atmosphere Libri) 등이 있고 공저서로 ≪Coreano compatto≫(2016, Zanichelli)가 있다.
차례
서문
가계도
1부 삼형제
2부 아버지와 아들
3부 영원불멸
부록 : 히브리어・이디시어 용어집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분리 독립 전쟁의 첫 번째 포탄 소리가
온통 면화 창고 생각뿐인
몽고메리의 메이어 리먼을 깨웠다.
창문을 활짝 여니
몽고메리가 미쳐 돌아간다.
깃발과 군기
사람들이 거리에서 전쟁을 축하한다.
어디서나 제퍼슨 데이비스와 함께 시위를 한다.
반란이 일어났다.
면화 생산지들이 연방에서 탈퇴한다.
노예
중간층 노예
대지주와 농장주가 있는
리먼 브러더스의 남부
대농장 지역들이다.
미국에서 나가자, 밖으로, 도망치자
독립!
“남부의 코튼, 북부에 안녕을 고하다”
분리 독립 전쟁의 첫 번째 포탄 소리가
온통 회사 고객들 생각뿐인
뉴욕의 이매뉴얼 리먼을 깨웠다.
갑자기
북부와 남부가 분리되면
리먼은 어떻게 중간에 있을 수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둥근머리 데고와
완벽한 손 사이에
벽을 세워 버리면
면을 어떻게 지폐로 바꿀 수 있을까?
창문을 활짝 여니
뉴욕이 미쳐 돌아간다.
불협화음을 내는 오르골
군기와 깃발
사람들이 거리에서 전쟁을 축하한다.
어디서나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시위를 한다.
심판의 날이 밝았다.
공업의 북부가 정의를 원한다.
노예는 그만, 특권도 그만
모두가 다 똑같다. 헌법과 권리!
함께하지 않는 자는
피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미국은 하나고
대통령도 한 명이기 때문이다!
-121-122쪽
테디는
가장 먼저 자살한
거래소 직원이다.
아침 9시 17분에
월 스트리트의 화장실에서
입에 총구를 물고 쏘았다.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이다.
테디는 도망쳤다.
어느 순간
거래소 안에서
갑자기
모두가 팔고
팔고
팔아 치운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도대체 오늘 무슨 날이야?”
팔고
팔고
“오늘 공기 중에 뭘 풀었나?”
팔고
팔고
어제까지 주식이
풀로 손에 딱 붙여 놓은 듯했다면
지금은
갑자기
다 떨어져 나가려고 한다.
다 빠져나가려 한다!
사람들이 시세에 만족 못하고
증권의 가치에 만족 못하고
돈을 손에 쥐려 한다, 진짜 돈을 손에 쥐려 한다.
그래, 돈.
그래, 돈.
돈?
-392-3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