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리처드 2세>는 1377년 즉위해 1399년 폐위된 리처드 플랜태저넷의 통치 말기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 에드워드 흑태자(Edward, the Black Prince)가 조부인 에드워드 3세보다 먼저 사망함으로써 10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리처드는 숙부이자 섭정인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John of Gaunt)을 비롯한 막강한 왕족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통치 후반기에야 강력한 경쟁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실권을 획득했으나, 실패한 원정 전쟁들로 인한 왕실 재정 파탄과 이를 메우기 위한 중과세 정책이 농민 봉기를 초래하는 등 통치 기간 내내 실정을 거듭했다. 결정적으로, 1397년 귀족들의 정쟁에 휘말린 사촌 헤리퍼드 공작 볼링브로크의 헨리를 해외로 추방했으나 1399년 귀국해 반란을 일으킨 그에 의해 폐위당하고 이듬해 감옥에서 33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리처드 2세>는 이 불운한 왕의 마지막 3년을 기록한 극이다.
200자평
1595년경 런던에서 첫 상연된 <리처드 2세(The Tragedy of King Richard the Second)>는 셰익스피어가 1595년부터 1598년에 걸쳐 발표한 제2사극 4부작의 첫머리가 되는 작품이다.
지은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르네상스 영국 연극의 대표적 극작가로서 사극, 희극, 비극, 희비극 등 연극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창작의 범위와 당대 사회의 각계각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관객층에의 호소력으로 크리스토퍼 말로, 벤 존슨, 존 웹스터 등 동시대의 탁월한 극작가 모두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었다. 특히 유럽 본토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된 영국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의 교차적 흐름 속에서 그가 그려낸 비극적 인물들은 인간 해방이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상의 가장 심오한 극적 구현으로 간주된다. 1580년대 말로의 주인공들이 중세적 가치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상승적 에너지의 영웅적 면모를 구현하고 있고, 1610년대 웹스터의 주인공들이 인문주의적 가치의 이면에 놓인 어두운 본능의 세계에 함몰되는 추락의 인간상을 대변한다면, 1590∼1600년대에 등장한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은 중세적 속박과 르네상스적 해방이 가장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과도기의 산물로서 그러한 상승과 추락의 변증법을 극명하게 체현하고 있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초시대성을 획득하는 극소수의 작가 반열에 드는 것은 특정한 시대정신의 명징한 관념적 표상이 아니라 무한한 모순의 복합체로서의 인간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화롭게 통합된 존재가 아니라 분열적으로 모순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르네상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화와 문예를 혁신하는 원동력이었다면, 그러한 인식의 비등점을 이룬 낭만주의, 모더니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활발히 탐구되고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고전임을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옮긴이
강태경은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연극학과에서 셰익스피어와 르네상스 연극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연극학회 학술이사, 한국셰익스피어 학회 공연이사, 한국영어영문학회 및 현대영미드라마학회 편집이사를 지냈으며, <Enter Above: 셰익스피어 사극에 있어서 시민들의 자리>로 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2000년)을, <누가 나비부인을 두려워하랴: 브로드웨이의 ‘엠. 나비’ 수용 연구>로 재남우수논문상(2003년)을 수상한 바 있다. 1998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두 차례에 걸쳐 강의우수교수로 선정되었다. 저서로는 ≪연출적 상상력으로 읽는 <밤으로의 긴 여로>≫, ≪<오이디푸스 왕> 풀어읽기≫, ≪현대 영어권 극작가 15인≫(공저), ≪셰익스피어/현대영미극의 지평≫(공저), 역서로는 ≪햄릿≫,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리처드 3세≫ 등이 있다. 드라마투르그 작업으로는 예술의 전당의 <꼽추 리처드>,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 명동예술극장의 <유리동물원>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리처드: 내가 갇힌 이 감옥을 세상이라 생각해 볼까? 아니야. 세상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여긴 나밖에 없잖아. 그래도 그렇게 생각해 보자. 내 영이 남자라면 내 혼은 여자가 되어 그들이 수많은 생각을 낳고 또 그 생각이 더 많은 생각들을 낳아 이 작은 세상을 가득 차게 해 보자. 저 넓은 세상을 가득 메운 각양각색의 사람들처럼 생각들도 모두 제 나름이겠지? 사람들처럼 생각도 결코 만족을 모르는 존재니까. 저세상에 고귀한 사람들이 비천한 자들과 뒤섞여 살듯이, 천국을 꿈꾸는 순수한 생각도 이 더러운 육신의 생각들과 뒤섞여 있어. 그래서 ‘연약한 자들아, 내게로 오라’는 말씀이 ‘네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려우리라’라는 말씀으로 뒤집어지고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