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약육강식’이 아닌 ‘공생’으로 생명과 지구의 진화를 설명하다
생태 위기 시대에 다시 읽는 린 마굴리스의 공생진화론
지구상에서 새로운 생물종은 어떻게 출현해 왔을까. 리처드 도킨스를 위시한 신다윈주의자들은 돌연변이 등을 통한 ‘세포 내 유전자 변이’가 점진적으로 축적되는 과정에서 생물종이 분화해 왔다는 설명을 주로 내세운다. 그러나 린 마굴리스의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생물종은 ‘종 간 세포 융합’을 통해, 즉 서로 다른 생물종이 공생 협업하는 과정에서 출현하기도 한다. 생물종의 역사를 종 간 약육강식이 아니라 종 간 공생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생물종 진화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낸 마굴리스의 사상을 열 가지 키워드로 살펴본다. 마굴리스 사상의 토대를 이루는 ‘연속세포내공생이론’의 개요부터 공생진화론과 신다윈주의 진화론의 차이점, 생물과 생물의 공생을 넘어 생물과 무생물의 공생을 설명하는 가이아 이론의 함의까지 다양한 사례와 함께 설명한다.
인간 종의 무분별한 활동이 다른 생물종의 멸종과 지구 시스템 교란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인간 종을 덮치는 재앙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마굴리스의 공생진화론에서 전 생명과 지구 차원 문제를 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8∼2011)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세포 진화에서의 공생(Symbiosis in Cell Evolution)≫(1981)에서 개체 간 합병과 융합을 통한 대규모 유전자 변이가 진화를 추동해 왔다는 공생진화론을 주장해 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생명의 역사에서 진핵생물이 등장한 메커니즘을 공생 발생으로 규정하고 이를 체계화한 연속세포내공생이론(Serial Endosymbiosis Theory, SET)을 주창했다. 진화한 개체들이 다른 생명체나 무생물적 환경의 공생적 연결망 속에서 물질과 에너지를 순환시키며 스스로의 상태를 조절한다는 가이아 개념을 지지하고 발전시켰다. 1970~2000년대 진화생물학자들 대부분이 DNA 이중나선 구조로 관심을 좁힌 것과 달리, 행성 규모의 생물권이 형성된 수억 년 이상의 딥히스토리로 시야를 돌려 연구의 지평을 넓힌 선구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00자평
공생진화론을 주창하고 가이아 이론을 발전시킨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의 사상을 요약했다. 마굴리스에 따르면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무생물은 별도 영역으로 나뉘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다. 하나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되먹임을 반복하는 통합적 유기체에 가깝다. 마굴리스의 공생진화론은 연결, 조절, 되먹임 등을 행성 규모에서 설명하는 가이아 이론과 만나 더욱 풍성해졌고, 오늘날의 정치생태학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 진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가장 앞선 시도가 여기 있다.
지은이
손향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초빙교수다.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과학기술정책학 등 메타과학에 통합적으로 접근해 생물학적·사회문화적 요인의 연결과 이에 따른 체계 구성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논문으로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가이아”(2022), “마굴리스 공생진화론과 가이아로의 확장성에 대한 소고: 유전자 중심 신다윈주의 진화론과의 비교를 중심으로”(2022), “환경교육을 위한 철학과 과학의 융합: 생물학으로 생태철학 다시 읽기”(2021) 등이 있고, 저서로 ≪인간복제의 윤리적 성찰≫(공저, 2017), 역서로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고생물학자 굴드 박사의 자연사 에세이≫(공역, 2008) 등이 있다.
차례
주류 진화생물학에 대한 반역과 딥히스토리로의 전환
01 연속세포내공생이론
02 신다윈주의와의 대립
03 자기생성
04 네오사이버네틱스 가이아
05 리좀철학의 관점
06 5계 분류
07 성의 탄생과 미래의 성
08 가이아와 지구시스템과학
09 인문학자들의 가이아 해석: 스탱게르스와 라투르
10 반역
책속으로
마굴리스의 SET(연속세포내공생이론)는 세포 내 유전자 변이에만 초점을 맞추어 진화 메커니즘을 설명하던 기존 관점과 달리 세포 간 공생의 비중과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획기적 이론으로 평가받는다. 마굴리스의 공생 이론은 생물·무생물 얽힘의 존재론이나 행성의 조절 체계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어 인간과 지구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높이는 데 기여했다.
-“01 연속세포내공생이론” 중에서
마굴리스는 진핵생물이나 다세포생물의 등장 또한 구조 접속과 섭동을 통한 자기생성의 단계적 상향으로 설명했다. 세포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 힘입어 자기 생산과 조절 능력이 새롭게 생성되었으며 세균들 사이의 구조 접속을 통해 도약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세포 생명체가 등장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마굴리스는 세포 집합체 형성에 참여한 각 세포가 섭동을 통해 구조를 재조직해 통합적 조절 능력을 새롭게 창발하고 이를 안정화하는 단계에 들어서면서 다세포 생명체가 출현한 것으로 보았다.
-“03 자기생성” 중에서
마굴리스의 자기생성 개념은 진핵생물의 등장과 진화뿐 아니라 행성 수준의 조절을 설명하는 과정에도 폭넓게 적용되었다. 이는 지구 전체를 자율적 조절 능력을 갖춘 통합적 조절 체계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이어졌다. 행성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무생물은 별도의 영역으로 구분되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되먹임을 반복하는 유기체와 같다.
-“04 네오사이버네틱 가이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