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마라/사드>는 독일 극작가 페터 바이스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페터 바이스는 이 작품에서 프랑스 극작가 사라를 통해 1793년 샤를로트 코프데에 의해 살해된 프랑스 혁명기의 급진적 언론인이자 정치 지도자 장폴 마라의 암살 사건을 재현했다.
샤랑통 정신병원에 수감된 사라는 장폴 마라의 암살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구상해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병원에서 작품을 공연한다. 마라의 삶과 죽음을 다룬 이 연극은 춤과 노래, 철학적 논쟁까지 더해지며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과 폭력을 모방한 듯 빠르고 혼란스럽게 진행된다. 사드와 수감자들은 연극을 통해 정의의 본질,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자유라는 상충하는 가치를 두고 철학적인 질문과 씨름한다. 연극에 참여했던 수감자들은 점점 자기가 맡은 역할과 현실을 혼동하게 되고, 병원은 결국 폭동의 장이 되어 버린다.
극중극의 작자 사드는 프랑스 혁명의 이상에 환멸을 느끼고 당시의 폭력과 혼돈을 자신의 욕망과 충동에 탐닉할 기회로 여기는 인물이다. 성 본능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와 악의 문제에 천착한 프랑스 소설가 사드를 극화한 이 캐릭터는 열정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혁명가 마라와 대비되어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 작품의 핵심 주제를 드러낸다.
페터 바이스는 마라에 대한 사드의 견해를 통해 정의를 내세운 정치 혁명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독자는 혁명의 당위가 민중의 광기를 어떻게 폭발시키는지, 그것이 어떻게 새로운 지배 논리에 의해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을 낳는지 보게 된다.
이 작품은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형식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적 사실과 연극적 발견이 어우러진 현대 연극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200자평
페터 바이스의 <마라 / 사드>는 1964년 초연된 작품으로 프랑스 혁명기 급진적인 언론인이자 정치 지도자인 장폴 마라의 암살 사건을 모티프로 한 극중극이다. 페터 바이스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지은이
페터 바이스(Peter Weiss, 1916∼1982)
1916년 베를린 근처 노바베스에서 출생한 화가, 영화감독, 소설가, 극작가다. 나치즘이 퍼지자 독일을 떠나 스웨덴에서 살았으나 독일어로 집필을 계속했다. 그가 만든 실험 영화들도 서방세계에 소개되었으며, 그의 소설 중에서는 ≪떠나는 점령≫이 영어로 번역되었다. <마라/사드>는 1964년 4월 베를린의 실러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수많은 비평가와 관객의 극심한 반응과 비평을 받았으나, 세계적인 수준의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 낸 것으로 평가되었고, 이후 그는 브레히트를 잇는 독일 극작가로 인정되었다. 같은 해 얼마 뒤에 영국의 로열셰익스피어극단에서 피터 브룩이 제작한 공연에서도 비슷한 반응과 찬사를 받았다.
옮긴이
박준용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교육방송국 프로듀서, 영국 BBC 연수 지구비디오 프로듀서를 지냈다. 희곡 번역가로서 닐 사이먼의 ≪희한한 한 쌍≫과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 ≪플라자 스위트≫, ≪굿 닥터≫, 조 오튼의 ≪미친 사람들≫, 페터 바이스의 ≪마라 사드≫, 숀 오케이시의 ≪주노와 공작≫, 시드니 마이클스의 ≪칭칭≫, 피터 셰퍼의 ≪태양 제국의 멸망≫, ≪요나답≫, 윌리 러셀의 ≪리타 길들이기≫, 우디 앨런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존 밀링턴 싱의 ≪서쪽 나라의 멋쟁이≫, 빌 노턴의 ≪바람둥이 알피≫, 줄스 파이퍼의 ≪폭력 시대≫ 외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며 1970∼1980년대 한국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마라 : 시몬, 시몬.
문을 두드리는 게 누구야?
사드 : 예쁜 처녀가
시골에서 찾아왔다.
생각해 봐.
마라
힘들게 일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바닥에 드러눕는 처녀들을 말야.
창밖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순진한 소녀들은
바닥에 누운 채
땀이 맺힌 가슴과 다리를 내놓지.
그러면서 상상한다네.
저 바깥세상을 누가 움직일까 하고.
네 가수가 앞으로 와서 남녀의 성행위를 흉내 낸다. 로시뇰은 가장 건장한 남자에게 달려들어 올라탄다.
음악 반주에 맞춰.
따분한 시골 생활에 진저리가 나서
새로운 사상의 물결에 몸을 던진 채
혁명에 가담한 거야.
아무나 자유롭게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혁명도 좋고
새로운 세상도 좋다 이거지.
합창 : 자유로운 사랑 없이는 혁명도 없다.
(반복하여 계속된다. 네 가수의 흉내는 끝난다.)
사드 : 마라.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바스티유 속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이 세상이 육체의 세계라는 걸
알게 되었네.
육체란 하나하나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혼자서는 외로움에 떨고 있지.
삭막한 외로움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계속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고
끊임없이 내 손과 살갗을
만지고 비비고 하는
감촉을 느낄 때
나는 굳게 잠긴 열세 개의 철문 뒤에서
두 다리를 묶인 채로
내 육체를 내던질
그런 방법을 꿈꾸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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