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마른 입술은 카퍼스카싱으로 가야 해〉는 캐나다 원주민 보호 구역을 배경으로 일곱 남성의 시선을 통해 삶과 갈등을 그린 2막 희비극이다. 원주민 여성들이 하키 팀 결성을 추진하자 남성들은 이를 남성 권위에 대한 도발로 여겨 반대하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의 동지애를 회복하며 공동체 개선을 위한 연대를 모색한다. 빅 조이는 라디오 방송국 개설을, 재커리는 빵집 운영을 통해 경제 부흥을 꾀하며, 사이먼은 사라진 전통을 되살리려 노력한다. 반면,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빅 조이와 기독교를 강요하는 스푸키처럼 문제를 안은 인물들도 있다. 작품은 희극적 요소를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며, 남성들의 갈등과 협력을 통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탐구한다.
여성 연대와 전통 회복을 주제로 한 〈레즈 시스터스〉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다. 인물은 일곱 여성에서 일곱 남성으로 바뀌었지만 원주민 보호 구역 와세이치간 힐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공통이며, 트릭스터 캐릭터인 나나부시가 등장해 극의 분위기를 고조하고 주제를 강화하는 구성 또한 비슷하다. 언뜻 남성 공동체와 권위 회복에 초점을 둔 서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디언 소녀가 백인 남성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고 살해된 일명 “자브니칸 사건”을 극적 갈등의 주요 배경으로 삼아 여성 연대의 필요와 힘을 보여 주고, 여성 하키 팀 결성에 반대하던 남성 인물들이 화합해 경기를 응원하는 결말로 나아감으로써 반전된 주제를 제시한다. 제국주의의 희생자이자 피해자였던 원주민 공동체 내에서 누군가는 그 박탈감을 폭력적으로 표출하며 다시 가해자가 된다. 이런 악의 순환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다. 하지만 톰슨 하이웨이는 이들 공동체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아기의 웃음소리와 함께 막을 닫으며 가느다란 희망의 빛줄기를 내린다.
유머와 진지함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원주민 문화와 현실을 알리고,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공감을 끌어낸다. 이 극을 통해 하이웨이는 캐나다 연극의 역사를 한 단계 격상시켰다고 평가받는다. 캐나다 최고 연극상인 ‘도라 메이버 부어 어워드’를 수상했고 영국에서 최고의 소수민족 희곡 작품 5선 중 한 편에 선정되었다.
200자평
캐나다 원주민 보호 구역을 배경으로 남성들의 갈등과 협력을 통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탐구하는 2막 희비극이다. 여성 하키 팀 결성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전통 회복과 연대를 모색하며, 제국주의의 희생자이자 피해자인 원주민들이 폭력의 악순환을 극복하고 희망을 찾는 모습을 그린다.
지은이
톰슨 하이웨이(Tomson Highway, 1951∼)
5남 7녀 12남매 중 11남인 톰슨은 생애 첫 6년을 북서부 매니토바의 호수와 숲에서 보냈다. 겨울엔 덫을 놓고 여름에는 낚시를 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유목민의 삶이었다. 크리어가 유일한 언어였으며 오늘날까지도 톰슨의 형제자매들은 크리어와 치페와어(Chipewyan)만 사용하고 영어를 쓰지 않는다. 톰슨은 6세부터 영어를 배워 10대 후반이 되어서야 자유롭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고교 졸업 후 매니토바 대학교 음악학부에 진학해 2년간 피아노를 공부했다. 온타리오주 런던의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1975년 5월 우등생으로 음악 학사 학위를 받았다. 바로 이곳에서 영어권 캐나다에서 가장 존경받는 극작가이자 시인 중 한 명인 제임스 리니를 만나 함께 작업했다. 미셸 트랑블레의 극을 처음 본 것도 바로 이때였다. 30세 이후 극을 쓰기 시작했다. 초기 작품은 보호 구역과 도심 주민 센터에서 주로 원주민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되었다. 1986년 12월 발표된 〈레즈 시스터스〉가 주류 무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토론토의 1986∼1987년 연극 시즌 최고의 신작으로 도라 메이버 무어상(Dora Mavor Moore Award)을 수상했고, 우수한 캐나다 희곡에 수여하는 플로이드 S. 차머스 상(Floyd S. Chalmers Canadian Play Award) 후보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1986). 1988년 8월에는 캐나다를 대표해 에든버러 국제 연극 축제 본무대에 올랐다. “레즈” 혹은 인디언 보호 구역을 가감 없이 그려 내고 캐나다 인디언의 참모습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창작 사명으로 삼고 있다.
옮긴이
박정만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통번역학부 교수다. 영미 드라마와 연극사를 연구하고 가르친다. 문학, 연극사, 문화 연구의 통섭을 지향하며 ‘문학 텍스트와 문화사적 컨텍스트의 간극 읽기’ 연구 방법론을 국내 영미 드라마 학계에 도입해 온 중견 학자다. 최근에는 한국의 전통 연희 및 한국 연극사를 세계 인문학계에 알리고 보급하는 일에 매진 중이다. 국내외 저널을 통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드라마에 비친 미국》, 《무대 위의 국가》, 《현실을 닮다, 세상을 담다: 연극적 재현 공간의 진화》, 《퓰리처상을 통해 본 현대 미국 연극》(공저), 《문학과 예술에서 재난을 말하다》(공저), 《질병은 문학을 만든다》(공저), 《캐나다 아동문학》(공저), 《얀 마텔》(공저) 등을 출간했다. 번역서로 《레즈 시스터스》 등이 있다. 한국영어영문학회, 한국아메리카학회, 현대영미드라마학회, 세계문학비교학회 등에서 총무이사 및 편집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현대영미드라마학회 회장이다.
차례
감사의 말
제작 노트
나나부시에 대한 노트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사이먼 : 당신들은 포기한 거예요, 그렇죠? 당신과 당신들 세대 말이에요. 당신들은 오래전에 포기했어요. 여자들이 권력을 다시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 생명을 불어넣는 힘, 그것을 유지할 힘을 가진 사람은 당신들 남자들이 아니라 언제나 그들 여자들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게 겁났던 거죠. 이제는 모든 일에 등을 돌리고 웃는 척하는 편이 더 낫겠죠, 안 그래요?
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