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세키는 ≪마음≫ 집필에 즈음한 광고문에서 ‘자신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이 작품을 권한다’라고 하여 사람의 마음에 관한 것이 잘 그려져 있다고 자부했는데, 작품 연구에서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선생님의 내면이나 선생이 남긴 교훈을 둘러싼 인간의 자아와 에고이즘 문제다.
먼저 작품의 구조를 살펴보자. ‘선생님과 나’에서는 선생님의 사상에 감화된 ‘나’가 선생의 내면에 숨겨진 그림자에 의혹을 느끼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은 상당한 교육을 받고도 사회에 나가 일을 하지 않는가 하면 매달 조시가야 묘지에 묻힌 친구의 묘를 방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결정적인 대답을 회피하거나 얼버무리는데 이것은 ‘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게 된다.
이처럼 ≪마음≫은 ‘나’가 화자가 되어 선생님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선생님과 나’에서는 가마쿠라 해변에서 만난 선생님과 가까워지면서 그에게 감도는 의혹을 계속 제시하고 ‘부모님과 나’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의 눈에 비친 부모님과 시골의 모습이 그려지다가 마지막 ‘선생님과 유서’에서 그동안 수수께끼 같았던 선생님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는 구조다. 또 제1부 마지막에서 선생님이 ‘나’에게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느냐고 확인하는 말은 ‘나’에게 유서를 남기게 되는 이유로 연결되며 제2부에서 병환 중인 ‘나’의 아버지가 메이지 천황 사망과 노기 장군의 순사를 언급하는 것은 선생님의 자살 배경과도 연관이 된다.
또한 작품에는 선생님과 ‘나’의 아버지가 메이지 천황이 서거하자 따라서 죽으려고 마음을 먹는 장면이 있다. 유서를 쓰기 전에는 현실에서 죽음을 각오하는 순간이 있어야 하는데 각오에 이르는 직접적 계기는 노기 장군의 순사였다. 소세키는 메이지 시대 시작 1년 전인 1867년 태생이므로 삶을 메이지 시대와 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는 봉건주의와 근대 사상의 갈등이 심했던 시기다. 그래서 메이지 시대와 함께 살아온 소세키가 자살의 공적인 계기를 메이지 정신에서 찾은 것은 급변하는 근대 사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일면이 있다.
소세키는 ≪마음≫을 집필하기 3년 전 ‘현대 일본의 개화’(1911. 11)라는 강연에서 메이지 45년간 일본의 개화를 설명하면서 메이지 정신은 벽에 부딪히고 생활이 어렵게 되리라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마음≫ 완결 3개월 후 ‘나의 개인주의’(1914. 11)라는 강연에서는 비슷한 내용을 말하면서도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2014년은 ≪마음≫이 출판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1세기 전의 신문소설을 지금 읽는다는 기분으로 감상한다면 현재와 다르지 않은 동시대 상황을 읽을 수 있으리라 보며, 이 책을 이런 의미에서 발견하는 독자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자평
나쓰메 소세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마음≫. 1914년 4월 20일부터 8월 11일까지 ≪아사히신문≫에 연재되었고 9월에 이와나미(岩波)에서 책으로 나왔다.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 3부로 구성되었다. 친구를 배신하고 아내를 얻은 선생님이 죄의식을 느끼고 자살한다는 내용을 통해서 인간 내면의 선과 악, 아집의 두려움, 메이지 정신의 의미 등을 그리고 있다.
지은이
나쓰메 소세키는 메이지유신 1년 전인 1867년 도쿄에서 태어나서 1916년 ≪명암≫을 집필하던 중 위궤양 내출혈로 사망하였다. 즉 메이지 시대와 함께 49년의 생을 살았다. 1893년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교사 생활을 거쳐서 1900년 문부성 장학생으로 2년간 영국 유학을 하였다. 유학 중 선진 문명에 열등감과 고독을 느낀 소세키는 ‘자기 본위’라는 명제를 안고 귀국하여 도쿄대와 제일고등학교에서 ‘문학론’을 강의하였으며, 39세인 1905년 처녀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발표로 호평을 얻은 뒤에 1907년부터 ≪아사히신문≫ 전속 작가로 본격적인 신문소설을 연재하게 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40대의 10년간 쓴 것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 ≪도련님≫(1906), ≪풀베개≫, ≪우미인초≫(1907), ≪산시로≫(1908), ≪그 후≫(1909), ≪문≫(1910), ≪피안 지나기까지≫, ≪행인≫(1912), ≪마음≫(1914), ≪한눈팔기≫(1915) 등이 있다.
옮긴이
김숙희(金淑姬)는 한국외대 일본어과 강사다. 이화여대를 나와서 한국외대 일본어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분야는 일본 근대문학이며 나쓰메 소세키를 연구했다. 최근의 작업으로는 논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문학과 힐링>(≪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제25권, 2013. 9)과 번역서 ≪피안 지나기까지≫ 등이 있다.
차례
제1부 선생님과 나
제2부 부모님과 나
제3부 선생님과 유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K로부터 들은 고백을 아주머니에게 전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아니요”라고 해 버린 뒤에,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불쾌했습니다. 나는 K에게 특별히 부탁받은 일도 없었기에 할 수 없이 K에 관한 얘기는 아니라고 고쳐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래요?” 하고는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돌연 “아주머니, 딸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내가 예상한 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 대답을 못하고 내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일단 말을 꺼낸 나는 아무리 아주머니가 빤히 쳐다보더라도 그것에 신경을 쓰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주십시오! 꼭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제발 제 아내로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연륜이 있는 만큼 나보다는 훨씬 침착하더군요. “주는 건 좋은데,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곧바로 “빨리 맞이하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생각한 것인가요?” 하고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말은 갑작스럽게 꺼냈지만 생각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어 번 문답이 오갔는데 그건 잊어버렸습니다. 아주머니는 남자처럼 화통하고 보통 여자와는 달라서 이런 경우에 기분 좋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좋아요, 딸을 드리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드리겠다고 말할 처지도 아닙니다. 부디 그렇게 해 주세요. 알고 계시는 대로 아버지 없는 불쌍한 아이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나중에는 아주머니 쪽에서 부탁을 했습니다.
이야기는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끝났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마 15분도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아주머니는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친척들과 의논해 볼 필요도 없고 나중에 알려 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본인의 의향조차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하더군요. 그런 점에서는 많이 배운 내가 오히려 형식에 구애받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내가 친척들은 그렇다 쳐도 본인에게는 미리 말해서 승낙을 받는 것이 순서일 거라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괜찮아요. 본인이 싫다고 할 사람한테 내가 딸을 보낼 리 없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