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894년 마테를링크는 “인형극”이라는 부제를 붙여 세 편의 짧은 희곡을 발표했다. 상징주의 연극론을 표방한 극작 형식이다. 실제로 인형을 등장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인물들이 마리오네트처럼 형상화되고, 배우에게도 그러한 연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인형극’이라 부른다. 서양 연극사에서도 매우 새롭고 독특한 시도로 평가된다. 함축적이면서도 시청각을 자극하는 언어로 메이예르홀트, 크레이그, 뤼네포 등 당대 전위주의 연출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초역으로 소개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의 이야기 <알라딘과 팔로미드>, 여느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가족에게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야만 하는 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그린 <내부>, 예정된 죽음으로부터 막내 동생을 지키려는 누나들의 절박함이 묘사된 <탱타질의 죽음>을 수록했다.
모두 ‘죽음’, ‘이별’을 그린다. 삶과 죽음을 동전의 양면으로 파악한 마테를링크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그만의 독특한 극작 세계를 작품과 해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0자평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죽음과 운명을 주제로한 상징파 작품들을 발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가 특별히 ‘인형극’이라 부른 짧은 희곡 세 편을 한 데 엮었다. ‘마리오네트’처럼 형상화된 인물, 말끝을 흐리는 대사와 반복되는 침묵이 독특한 극 분위기를 형성한다.
지은이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는 상징주의 대표 작가다. 벨기에 프랑스어권과 네덜란드어권의 경계 지역인 서플랑드르 겐트(Gand)에서 태어난 그는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학도였다. 부모의 권유로 법학을 전공하지만, 1883년 <등심초 속에서(Dans les Joncs)>라는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다. 1886년 파리 체류 기간에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와 빌리에 드릴라당(Villiers de L’Isle-Adam)과 교류하며 상징주의 정신에 심취한 마테를링크, 그의 작품에는 무의식, 신비로운 잠의 세계, 비합리적인 동기나 영혼 등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감춰진 영역이 그려져 있다. 마테를링크는 행위의 단순화, 말줄임표, 침묵, 부동성 등 암시의 극작술로 새로운 연극 흐름을 제시했다. 그의 극작술은 비사실적인 연출을 모색한 러시아 전위 연출가 메이예르홀트, 영국의 크레이그, 프랑스의 뤼네포 등에게 영향을 끼친다. 입센, 체호프, 스트린드베리와 더불어 19세기 말 격변하는 문학 예술의 흐름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 마테를링크는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옮긴이
권현정은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10대학에서 연극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유럽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프랑스 무대미술의 형태 미학>(2003, 2005, 2006, 한국프랑스학논집), <메테를랭크의 일상의 비극 : 내부>(2010, 한국프랑스학논집), <라가르스의 세상의 끝일 뿐 또는 소통의 실패>(2011, 불어불문학연구), <메테를랭크의 틈입자 또는 제3의 존재>(2011, 한국프랑스학논집), <Maeterlinck et le théâtre pour marionnettes>(2011, NCF저널), <Forme et sens dans Huis clos de Sartre>(2011, RHT저널)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1975년부터 2015년까지 무대미술의 변천과 의미를 다룬 ≪프랑스 시노그라퍼(Scénographes en France)≫(뤼크 부크리스, 마르셀 프레드퐁 외 공저)가 있다.
차례
알라딘과 팔로미드
내부
탱타질의 죽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아블라모르 : 이쪽으로 와라, 아스톨렌. 평소에 애비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지. 조금 열린 문틈으로 도망가려는 사람처럼, 한 손에 열쇠를 들고 영원히 네 마음의 비밀을 잠그려 하듯 말이다. 방금 네가 한 말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잖니. 영혼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말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말이다. 가까이 오려무나. 아무 말 하지 말고. (아스톨렌은 천천히 다가간다.) 영혼이 서로 닿는 순간,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모두 이해하게 되지. 가까이 와라…. 아직 영혼이 만나지 않았다. 우리를 감싸는 영혼의 빛이 희미하구나…! (아트롤렌은 멈춘다.) 더는 못 오겠니?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너도 알지? 내가 가마…. (천천히 아스톨렌에게 다가가다 멈춰 서서 한참 쳐다본다.) 네가 보이는구나, 아스톨렌….
24쪽, <알라딘과 팔로미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