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에는 1582년 마테오 리치가 중국 선교를 목표로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고 갖은 고난을 무릅쓴 끝에 북경에 입성한 뒤, 선교를 비롯해 관계 인사들과의 교류, 지도 제작, 각종 저술 등의 활동을 펼치다가 1610년 생을 마감하기에 이르는 생생한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외국과의 교류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제국에서 낯선 이방인의 선교 활동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리치의 선교는 여타 선교사와 차이가 있었다. 즉, 무력과 자문화 중심적인 교만함으로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여타 선교사들과 달리 리치는 과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수많은 천문 기기, 자명종, 항해 기구 및 세계지도 등을 만들어 당대 최고의 중국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로 대표되는 세계지도는 당시 ‘중국이 곧 세계’라는 생각에 빠져 있던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또한 리치는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식 복식을 갖춰 입으며 중국식 예절을 지키려 애쓰는 등 중국을 타자화하지 않고 그 사상과 문화를 가급적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개방적·수용적·평화적 태도는 서유럽이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선교사를 앞세워 팽창주의를 무자비하게 벌이던 시대였기 때문에 더욱 이채롭게 다가온다.
또한 이 책에서 그는 선교에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중국의 역사, 문화 및 사회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그의 시각은 매우 따뜻하며 온화하다. 서술한 내용 중에는 물론 중국 문화와 현상에 대해 서구인이 가지는 선입견이나 자료나 기술적 한계로 인한 오해와 착각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이 기록의 사실성과 함께 인간미를 배가해 주기도 한다.
특히 문화적 차이로 빚어지는 수많은 갈등 양상이나 리치의 눈에 신기하게 비친 당시 중국 문화에 대한 묘사 등은 400년 전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굳게 믿는 종교적 신념과 그것의 전파를 위해 목숨까지 초개와 같이 버리는 선교사들의 희생 앞에서는 시대와 종교를 초월한 숙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200자평
서양의 종교는 어떻게 동아시아로 전해졌는가? 서양 선교사들은 중국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는가? 서양과 중국은 무엇을 나누고 교류했는가?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펼친 선교 활동을 스스로 정리했다. 그의 기록을 통해 동서양 문명 교류의 생생한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했으며, 그중 2권은 제4부와 제5부를 수록했다.
지은이
마테오 리치는 1552년 이탈리아 교황령 마체라타에서 태어나 1571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예수회는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세운 가톨릭 수도회로서 뛰어난 지성과 건강한 육체와 함께 매력적이고 헌신적인 성품을 지닌 당대 엘리트만을 엄선해 가입시킨 조직이다. 1572년에는 예수회의 피렌체 기숙학교에서 인문과학을 공부했고, 1573년에는 로마대학교에서 철학과 기하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다. 리치가 중국 선교 활동 과정에서 탁월한 과학적 재능을 발휘했던 것은 이러한 지적 배경이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580년에는 로마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다. 로마를 떠나 외지 선교에 나선 것은 1578년이었고, 처음 도착한 곳은 인도의 고아(Goa)였다. 그곳에서 4년간 머물다가 중국 포교의 명을 받고 1582년에 중국 마카오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조경(肇慶), 소주(韶州), 남창(南昌) 및 남경 등을 거쳐 1601년에 북경에 입성했다. 신종 황제를 알현하고 천주교회 건립 허가를 받았다. 선교 외에는 1583년부터 1602년에 걸쳐 세계지도를 제작한 일이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이를 통해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 밖의 나라들은 오랑캐라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던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 주었다. 이후 상하 계층을 막론하고 선교와 문화 교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다 1610년 북경에서 생을 마쳤다.
옮긴이
신진호는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중국현대문학의 세계≫(공저, 현암사, 1997), ≪중국문학사의 이해≫(지영사, 1998), ≪민족혼으로 잠들다≫(공저, 학고재, 1999) 등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에서의 한류에 관한 고찰>, <魯迅과 郭沫若의 역사소설 비교론>, <1930년대 夏衍 극작의 경향성>, <老舍의 화극에 나타난 현실인식과 역사의식>, <陳白塵의 ‘세한도’ 재평가> 등이 있다. ≪중국현대문학비평사≫(신아사, 1994), ≪郭沫若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5), ≪田漢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老舍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夏衍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陳白塵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족발≫(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파시즘 세균≫(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찻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승관도≫(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마테오 리치 중국 선교사≫(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연세대, 한양대, 명지대, 가천대에 출강하고 있다.
전미경은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문으로는 <≪노생거 사원≫에 나타난 이중적 서술과 여주인공의 성장>, <제인 오스틴의 ≪설득≫에 나타난 변화>, <≪오만과 편견≫에 나타난 희극적 전복성>, <≪오만과 편견≫의 역설적 비전: 장자상속제의 문학적 재현>, <국어교육의 독서 활동 평가 방법과 입학사정관제 연계 방안>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제4부 남경에서 북경까지
1장 남경으로 돌아가다
2장 최초의 북상
3장 공물을 바칠 방법을 찾지 못하다
4장 다시 남경으로
5장 남경에서의 공개 강의
6장 남경의 인사들
7장 승려와 도를 논하다
8장 남경에 거처를 정하다
9장 남경 개교
10장 다시 북상하다
11장 임청에서 어려움을 만나다
12장 북경으로 들어가 공물을 바치다
13장 사이관(四夷館)에 들어가다
14장 북경에서의 교류
15장 절친한 친구 둘
16장 요서(妖書) 사건
17장 소주(韶州)의 지난 일
18장 여러 어려움
19장 남경의 선교 업무
20장 북경의 선교 업무
제5부 중국 교회의 독립과 발전
1장 마테오 리치의 지도 아래 독립적인 선교구가 되다
2장 마테오 리치의 중국어 저작
3장 문인 교우와 그들의 저작
4장 남창의 교회
5장 소주(韶州)의 선교 상황
6장 구태소가 마침내 입교하다
7장 유클리드 ≪기하원본≫의 중국어 번역 1판
8장 중국 선교구 창시자 발리냐노 신부의 죽음
9장 황명사 수사의 억울한 옥살이와 희생
10장 상상의 반란이 스스로 생겨났다 없어지고 선교사들이 누명을 벗다
11장 카타이와 중국
12장 카타이와 중국이 같은 곳임을 입증하다
13장 고이스 수사가 중국에서 잠들다
14장 소에이루 신부의 죽음과 남창의 고난
15장 박해로 인해 남창 교우들의 믿음이 공고해지다
16장 중국의 첫 성모회
17장 남경 교회의 성장
18장 상해의 카타네오 신부와 서광계 교우
19장 소주(韶州)에서 마카오까지의 어려운 여정
20장 마테오 리치의 죽음
21장 황제가 마테오 리치에게 묘원(墓園)을 하사하다
찾아보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신부들은 중국식 연말, 즉 1601년 정월 24일에 북경에 도착했다. 그날 그들은 성 밖의 태감 관사에 머물렀는데, 도착한 뒤 공물을 정리하고 목록을 만들었다. 이튿날 이 공물들과 마당의 물건들은 기세도 등등하게 황궁으로 향했다.
황제가 성상을 보고는 놀라며 “이것은 살아 있는 부처로다”라고 말했다. 이는 ‘살아 있는 천주’라는 의미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참된 도리를 말한 것이었다.
-606쪽
신부들은 북경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할 때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일부러 서서히 일을 진행했다. 무슨 새로운 일은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 거처를 세우려는 절박한 목표에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처를 세우고 사람들이 안정되기만 하면 더 이상 늦출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갖가지 방법을 써서 그들이 중국에 온 최후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이 특수한 장소에서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열성적인 교우들을 찾아냈고, 교우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다.
-7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