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만드라골라〉는 16세기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5막 풍자 희극이다. 인간의 욕망, 종교적 위선, 제도 모순을 희극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주인공 칼리마코는 빼어난 외모와 고결한 덕망으로 이탈리아에서 명성이 높은 루크레치아를 실제로 보고는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루크레치아는 나이 많은 변호사 니키아와 결혼한 상태다.
칼리마코는 루크레치아와 니키아 사이에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으며, 부부가 간절히 아이를 원한다는 사정을 이용해 교활한 사기꾼 리구리오의 도움을 받아 루크레치아를 차지할 계략을 꾸민다. 그 핵심은 ‘만드라골라’라는 약초로, 칼리마코는 프랑스 파리 출신 의사로 가장해 이 약초를 복용하면 임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니키아를 속인다. 그리고 약초의 부작용으로 ‘약초를 복용한 여성과 처음 동침한 남성은 죽을 수 있다’는 거짓말을 덧붙인다. 니키아는 후사를 얻기 위해 아내에게 약초를 먹이기로 하고, 리구리오의 계략에 따라 아내를 다른 남자와 동침시키려 한다. 칼리마코는 이를 기회 삼아 루크레치아의 몸과 마음을 차지할 계획이다. 교구 신부와 루크레치아의 모친이 칼리마코의 계략이 성공하도록 돕는다.
〈만드라골라〉는 이처럼 위선적인 종교인, 어리석은 남편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사회 질서와 인간 본성의 허위를 꼬집는 희극으로 읽히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마키아벨리의 정치 이론을 집약한 《군주론》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조국이 약육강식의 혼란과 분열로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강력한 국가, 더 나아가 통일된 이탈리아를 염원하며 고전과 역사에 대한 집요한 연구를 바탕으로 통치자가 지녀야 할 덕목을 담은 ‘새로운’ 군주의 행동 지침서인 《군주론》을 집필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 현상은 종교나 윤리와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새롭고 차별화된 관점을 기반으로 통치자는 시민과는 다른 윤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일반적 도덕규범을 넘는 선택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선함과 관용을 군주의 덕목으로 치켜세운 다른 인문주의자들과 달리 군주란 “필요한 때에는 악해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드라골라〉에는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정치 현실주의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칼리마코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거짓, 조작, 종교의 권위까지 활용하며, 주변 인물들도 저마다 이익을 위해 도덕적 기준을 포기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주장한 것과 같이 권력과 목적은 때때로 기존 윤리를 넘어설 수 있음을 극적 상황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만드라골라〉는 단순한 연애 희극을 넘어 《군주론》에서 제시된 인간 본성과 권력 작동 방식에 대한 통찰을 일상적 사회 질서 속에 배치해 보여 주는 작품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희극을 통해 정치 논리가 일상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웃음과 조롱을 통해 폭로한다.
200자평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희극 〈만드라골라〉는 인간의 욕망과 제도적 위선을 풍자하며, 《군주론》의 정치 현실주의를 극 형식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공공선의 성취라는 전제하에 권력과 목적은 때때로 윤리를 초월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지은이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정치 사상가, 외교관, 작가다. 격변의 이탈리아 정치 현실 속에서 권력의 본질과 인간 행동의 실용적 측면을 탐구했으며, 근대 정치철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마키아벨리는 1498년 피렌체 공화국의 제2서기관으로 임명되어 외교와 군사 업무를 담당했고,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 등과의 외교 교섭을 수행했다. 그러나 1512년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장악하면서 실각하고, 이후 투옥과 고문을 겪은 뒤 정계에서 물러나 농가에 은거하게 된다. 이 시기에 대표 저작인 《군주론》을 집필했다.
《군주론》은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전략과 통치자의 덕목을 분석한 책으로, 이 책에서 그는 종교적 이상주의나 도덕적 이상과 거리를 둔 채 통치자는 필요에 따라 거짓말이나 폭력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의 원리와 시민적 덕목을 강조한 《로마사 논고》, 희극 〈만드라골라〉, 역사서 《피렌체사》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썼다. 권력, 인간 본성, 정치 제도의 작동 방식에 대한 통찰로 가득한 그의 저작들은 근대 정치사상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수많은 정치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옮긴이
장지연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이탈리아어과 학사 및 석사,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서경대학교 인성교양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서로는 골도니의 《여관집 여주인》, 《한꺼번에 두 주인을》, 《커피숍》, 루이지 피란델로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엔리코 4세》, 유작 《산의 거인족》(예술신화극), 《바보》, 《항아리》,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편역) 등이 있다. 저서로는 《동시대 연출가론》(공저)과 《장면 구성과 인물 창조를 위한 희곡 읽기1, 2》(공저)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노래
프롤로그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칼리마코 : 내가 어찌해야겠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나는 무엇이든 시도해야 해, 대단하거나 위험하거나 해롭거나 악명 높거나 상관없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밤에 잘 수 있다면, 먹을 수 있다면, 대화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즐길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어. 하지만 여기 이 문제엔 해결책이 없어. 그런데 만약 어떤 방법도 희망이 없다면 여하튼 나는 죽고 말 거야. 죽어야 한다는 걸 알아도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아. 심지어 그 어떤 짐승 같고 잔인하고 악랄한 짓이라도 할 작정이라고!
-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