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만물상>은 러시아 최초의 풍속 코미디다. 러시아인, 특히 귀족 사회의 어리석음, 무지, 허영, 경솔함 등을 풍자하기도 하고, 개인(수마로코프)에 대해 풍자하기도 한다. 플롯은 희극의 전형적인 단순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만물상과 치스토세르도프, 그의 조카가 대표하는 긍정적 인물과 그에 대비되는 부정적 인물들, 즉 경박한 귀족인 님포도르, 마레미야나, 폴리도르, 위선자 프리트보로프, 하찮은 것들을 좋아하는 잡동사니 애호가 브즈도롤류보프, 타락한 법관 오비랄로프, 프랑스심취광 베르호글랴도프, 구세대 인물 스타로스베토프, 수마로코프를 패러디한 자화자찬가 사모흐발로프 등을 등장시킴으로써 긍정적인 인물들의 선행과 부정적 인물들의 악덕을 더욱 극명하게 대조하고 있다.
200자평
루킨의 희극 <만물상>은 작품과 인생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처리해 세계가 하나의 무대이며 인생은 꿈이라는 가설에 토대를 두고 있는 메타 드라마 전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지은이
블라디미르 이그나티예비치 루킨(Владимир Игнатиевич Лукин, 1737∼1794)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극작가와 번역가로 활동하다가 사망했다. 가난한 관리 집안(궁정의 시종)에서 태어나, 제정 러시아 내각의 하나인 황제관방의 고위 관료 옐라긴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근무했다. 루킨은 문학 활동의 대부분을 프랑스 극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거나 개작하는 것으로 보냈다. 그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 1756년 영국 출판업자 로버트 도즐리의 <장난감 가게(The Toy Shop)>(1732)의 프랑스어본 <액세서리 가게(Le Boutique de bijoutier)>를 개작한 <만물상>(1765)이다. 이 작품은 1750∼1760년대 러시아 귀족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했다.
루킨은 7년 전쟁(1756∼1763) 시기에 현역으로 복무했고, 러시아 군대 소속으로 프러시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1762년에 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 원장인 라주몹스키(К. G. Разумовский)의 개인 비서로도 근무했다. 이 시기에 루킨의 문학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는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프랑스 연극을 러시아 풍습과 관습에 맞게끔 자유롭게 차용했다. 1765년에 희극 작품 <사랑으로 고친 낭비자(Мот, любо-вью исправленный)>, <허풍쟁이(Пустомеля)>, <상 받은 불변(Награжденное постоянство)>, <만물상>을 출간했다.
옮긴이
조주관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OSU) 대학원 슬라브어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논문은 <데르자빈의 시학에 나타난 시간 철학(Time Philosophy in Derzhavin’s Poetics)>이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 학술 위원을 지내고, 2000년 2월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논문으로는 <데르자빈의 시학에 나타난 바로크적 세계관과 토포이 문제>(교과부장관상 수상)가 있고, 저서로 ≪러시아 시 강의≫, ≪러시아 문학의 하이퍼텍스트≫,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학≫(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죄와 벌’의 현대적 해석≫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러시아 현대비평이론≫, ≪시의 이해와 분석≫, ≪주인공 없는 서사시≫, ≪말로 표현한 사상은 거짓말이다≫, ≪자살하고픈 슬픔≫, ≪오늘은 불쾌한 날이다≫, ≪루슬란과 류드밀라≫,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검찰관≫, ≪타라스 불바≫, ≪보리스 고두노프/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아흐마둘리나 시선≫, ≪보즈네센스키 시선≫, ≪오쿠자바의 노래시≫,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중세 러시아 문학(11∼15세기)≫, ≪16세기 러시아 문학≫, ≪17세기 러시아 문학≫, ≪17세기 러시아 풍자문학≫, ≪참칭자 드미트리≫(18세기 러시아문학 시리즈1), ≪노브고로드의 바딤/마차 때문에 일어난 불행≫(18세기 러시아 문학 시리즈2) 등이 있다. 현재 18세기 러시아 문학 시리즈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차례
옐차니노프 씨에게 보내는 편지
<만물상>에 대한 서문
나오는 사람들·
만물상
해설
지은이에 대해
부록: 18세기 러시아 연극 이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치스토세르도프: 그래 우리도 갈 시간이지. 오늘 밤은 내 조카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소.
조카: (셰페틸니크에게) 맞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당신의 고견을 들은 것이 기뻤습니다. 그 의견들은 제게 무척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일 당신의 충실한 하인이 되어 당신에게 유용한 충고를 듣는다면 그것을 행운으로 여기겠습니다.
셰페틸니크: 자네에게 유용했다면 항상 자네에게 그것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네.
치스토세르도프: 안녕히 계시오, 건강하십시오. 부유한 고객들과 신만이 아는 여러 계층 사람들이 100분의 1이라도 당신을 본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추한 단점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 가르침에 따라 고쳐지기를 바라오.
셰페틸니크: 신만이 하는 일이죠! 그러나 저는 제 가르침으로 바보들을 많이 고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20명의 전형적인 젊은이들을 비웃으면서 단지 한 명만을 교화했습니다. 모두 화를 냈고, 200여 명의 적을 만든 것 같아요. 즐겁게 풍자적인 말을 하고, 이렇게 얘기하는 동안 어느새 시간은 흘러갔어요. 그들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을 때까지는 모든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과 공통점을 발견한다면, 그들은 즉시 화를 낼 뿐만 아니라 종종 금방 복수할 준비까지 마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