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영화가 잃어버린 이만희 미학의 정점, <만추>
김태용의 <만추>, 김기영의 <육체의 약속>의 사라진 원형
“읽은 적이 없는 소설, 본 적이 없는 그림, 들은 적이 없는 음악, 그리고 본 적이 없는 영화를 말해야 할 때 상상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만추>가 사라진 우리에게 남겨진 ≪만추≫. 달리 무슨 방법이 남아 있는가. 그래서 이 책이 더 고마울 따름이다. 이만희 감독님의 큰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이만희 감독의 여러 작품 중 그의 뛰어난 영상미와 연출 감각을 오롯이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만추>다. 시나리오의 절제된 대사, 영상화 감각이 탁월하다. 현재 영상이 남아있지 않아 너무나 안타깝다. 하루빨리 필름이 발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성일, 영화배우)
“서구 사람들이 잉마르 베리만을 이야기한다면 나는 이만희의 <만추>를 이야기하겠다. 만추는 가장 문학다운 문학이며 영화다운 영화다.” (이어령, 문화평론가)
이만희 미학의 정점, 영화 <만추>(1966)
모범수 특별 휴가를 얻은 혜림(문정숙 분)과 형사에게 쫓기는 위폐범 훈(신성일 분)의 짧지만 뜨거운 사랑 이야기. 헤어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혜림의 출소일 창경원 벤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수감되고 만 훈은 그곳에 갈 수 없다. 가을의 끝, 만추. 혜림만이 흩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휴일>(1968), <삼포 가는 길>(1975) 등을 통해 한국 영화의 새로운 미학을 제시한 영화감독 이만희의 대표작이다. 적은 대사와 액션으로 이만희 특유의 절제미와 모더니즘 미학을, 창경원, 송도, 서울역 등 배경을 통해 1960년대 한국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필름이 유실되었으나 여전히 그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다.
<만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책 ≪만추≫(2024)
‘영화’와 ‘책’이라는 매체의 경계를 넘어 ‘이미지’로서 <만추>를 감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김지헌의 원작에 기반한 실제 영화 각본과 <만추>의 제작자 호현찬이 보유하고 있던 스틸컷 200여점을 영화의 순서에 맞추어 편집했다. 한국 영화의 전설적 배우 신성일과 문정숙의 열연이 담긴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만추>의 흐름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편집이 주는 리듬감을 통해 독자는 사라진 영화 이미지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촬영 현장 사진, 각본 실물 사진, 당시 보도자료, 영화 해설을 담아 <만추>의 영화사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신강호를 주축으로 구성된 ‘우리영화를위한대화모임’이 기획했다. 2005년 이만희 감독 사망 30주기를 맞아 ≪만추, 사라진 영화≫라는 제목으로 처음 독자들에게 공개되었던 사진집을 2024년 ≪만추≫라는 이름으로 다시 선보인다. 더 많은 독자들이 영화 <만추>의 미학을 접할 수 있도록 새롭게 디자인했다. 사철노출제본으로 제작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초판 500부 한정으로 정성일 평론가의 해설이 담긴 리플릿을 제공한다.
200자평
필름이 유실되어 전설로 회자되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책으로 복원했다. <만추>는 김태용 <만추>, 김기영 <육체의 약속>의 원작이다. 시나리오작가 김지헌의 시나리오에 기초한 영화 각본과 제작자 호현찬이 제공한 스틸컷 200여 점을 실제 영화 순서에 맞추어 편집했다. 시대를 앞서간 이만희의 모더니즘 미학을 사진집으로 만난다.
지은이
이만희
20세기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1961년 <주마등>으로 데뷔해 1975년 유작 <삼포 가는 길>까지 15년 동안 50여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 당대 사회의 삶과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뛰어난 기술을 보여 준 장인이자 자신의 스타일과 주제의식을 추구한 작가 감독이다. 매우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다뤘으며, 특정 이념을 고집하지 않았다. 영화의 인물들은 직업, 신문, 남녀를 불문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살갑게 몸부림칠 뿐이다. 1961년 <주마등>을 시작으로, 1963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5년 <흑맥>, 1966년 <물레방아>, <군번 없는 용사>, <만추>, 1967년 <기적>, <귀로>, <싸릿골의 신화>, 1972년 <0시> 등을 발표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제3회 대종상과 제1회 청룡상을 받았으며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제3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감독상을 받은 <만추>는 한국 영화의 예술성을 한층 높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김지헌
시나리오작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1956년 미당 서정주의 격찬과 함께 ≪현대문학≫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195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종점에 피는 미소>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시나리오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작인 <자유 결혼> 이후 100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썼으며, 70편 이상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대표작으로는 <젊은 표정>(1960), <만추>(1966), <문>(1977) 등이 있다.
호현찬
영화 제작자. 대전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신문>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한국문화프로덕션 대표, 영화진흥공사 이사, KBS방송심의위원, 한국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한국영상자료원 이사장, 서울텔레콤 대표이사, 영화진흥공사 사장, 한국예술평론가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영상자료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오늘의 영상자료 기틀을 마련했다. 이만희 감독의 <만추>, <창공에 산다>, 김수용 감독의 <날개부인>, <갯마을> 등을 제작했다.
엮은이
우리영화를위한대화모임
우리 영화를 연구하는 작은 모임이다.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한국 영화사의 전설로 회자되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책으로 복원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신강호, 조혜정, 문학산, 김경, 김정선, 신양섭 등이 참여했다.
차례
만추
보도자료
촬영현장
열정과 투명함의 시나리오
이만희 감독 필모그래피
책속으로
가을이 왔다. 여자도 왔다. 여자는 남자보다 먼저 왔다.
-“만추” 중에서
혜림 왜 남의 무덤에 절을 했어요?
훈 절값을 달랜 것도 아닌데 걱정할 것 없지 않습니까?
훈 난 무덤이 무척 갖고 싶었습니다. 중학을 다닐 때 말입니다…. 추석날이면 동무들은 성묘를 간다고 법석이죠. 명절날 성묘는 산사람의 호사니까 나도 그 경사에 참견하고 싶었거든요…. 헌데 난 무덤이 없습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어떻게 죽어서 어디에 있는지 지금 모릅니다. 내가 죽으면 꼭 무덤을 가질 작정입니다.
-“만추” 중에서
훈 약속 잊어버리지 마.
혜림 알아.
훈 말해 봐.
혜림 내년 11월 1일 창경원 나무 아래 벤치에서.
훈 아! 여기 잠깐 있어.
혜림 (불안) 왜?
훈 뭐 좀 사올게.
-“만추” 중에서
列車 안에서 혜림은 훈을 만났다. 훈은 위조지폐 사건에 얽히어 쫓기는 몸이었다. 고독한 그늘에 가리워 쓸쓸한 나날을 살아오던 혜림과 불안에 쫓기어 가며 마음의 상처를 달래던 외로운 훈은 첫눈에 서로 사랑을 느꼈다. 그것은 고독한 마음과 마음의 따뜻한 해후였다. 사흘 동안 그들은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나 너무 안타까웠다. 사랑을 불사르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만추의 애상이 풍기어 오는 바닷가에서 아슴프레 들려오는 해조음.
-“보도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