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홍만종은 과거에 합격해 출사하자마자 당쟁에 휩싸여 관직을 잃고 저작으로 세월을 보낸 사람이다. 그때 그가 발견한 것이 ‘웃음’이다. 세상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웃음임을 알았던 것이다. 홍만종은 우리나라 소화(笑話) 가운데 가장 우스운 것들을 골라 《고금소총(古今笑叢)》과 《속고금소총(續古今笑叢)》을 편찬했다. 그리고 속편인 《속고금소총》에 《명엽지해(蓂葉志諧)》라는 부록을 첨부했다.
《명엽지해》의 서문에는 “내가 병으로 서호정사에 누워 두문불출하고 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마침 같은 마을에 사는 노인들이 찾아와서 문안을 할 때면 우스갯소리를 들려 달라 했었다. (…) 그중에서 가중 우스운 것들은 달력을 접어 뒷면에다가 써 두고는 했다. 날짜대로 대강 맞추어 놓으니 한 편이 되었길래 이름을 붙여 《명엽지해(蓂葉志諧)》라 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금소총》과 《속고금소총》이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선집한 것인데 반해, 《명엽지해》는 홍만종 자신이 직접 모은 이야기를 담은 소화집인 것이다. 세 작품을 함께 살펴보면 홍만종이 가지고 있었던 소화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명엽지해》에 수록된 76편의 소화는 등장인물의 지혜와 어리석음을 다룬다. 홍만종은 관료·문인·광대·여성·노비·승려와 같은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에서 웃음의 순간을 건져낸다. 이처럼 《명엽지해》의 근본은 ‘희롱’에 있다. 그러나 ‘경계’가 없지 않다. 선비의 타락과 관료의 무능, 어리석은 상전과 교활한 하인 등 17세기 조선 사회의 여러 인물 군상을 형상화함으로써 인간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 특히 관료 문인 사회에서 선비가 가져야 할 방향을 담아냈다.
* 홍만종의 소화(笑話)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책을 함께 읽어 보시면 좋습니다.
《고금소총(古今笑叢)》(홍만종 엮음, 정용수 옮김, 지만지한국문학, 2024)
《속고금소총(續古今笑叢)》(홍만종 엮음, 정용수 옮김, 지만지한국문학, 2024)
200자평
과거에 합격해 출사하자마자 당쟁에 휩싸여 관직을 잃고 저작으로 세월을 보냈던 홍만종. 그때 그가 발견한 것이 웃음이다. 《고금소총》에 이어《속고금소총》을 편찬한 그는 속편에 《명엽지해(蓂葉志諧)》라는 부록을 첨부했다. 앞의 두 책이 남의 작품을 선집한 것인데 반해, 《명엽지해》는 홍만종이 직접 모은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엮은이
이 책의 편저자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은 풍산 사람으로 자는 우해(于海), 호는 현묵자(玄默子), 몽헌(夢軒), 장주(長洲)라 했다. 부친 주세(柱世, 1612∼1661)는 자가 우문, 호가 정허당으로 생원과 문과를 거쳐 정랑에 이르고 영주군수를 지냈으며 뒤에 도승지에 증직되었다. 조부 보(靌, 1585∼1643)는 진사와 문과 장원으로 소무훈에 책봉되어 풍령군에 봉해지고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으며 뒤에 영의정 및 부원군에 증직되었다. 증조 난상(鸞祥)은 형조좌랑을 역임했으며, 고조 수(修)는 부사직을 역임했다. 선조의 장녀 정명옹주에게 장가든 부마 주원(柱元)과는 재당질간이니 고조대에서 분가되었다. 외가는 중종대 영의정을 역임한 정광필의 후손으로 외조가 이조참판 광경이며 외숙이 좌의정 지화였다.
이 같은 좋은 배경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동명 정두경의 문하에서 시를 배우며 휴와 임유후, 백곡 김득신, 만주 홍석기 등과 더불어 나이를 잊은 만년지교를 맺고 시주를 즐겼으나 이는 나중의 일이다. 그의 생애에서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20세 때의 부친상과 연이은 득병, 10년 이상의 긴 요양 이후 출사했으나 곧 이은 파직이 아니었을까 한다. 명확하지 않은 부친의 죽음이나 당쟁에 휘말려 삭탈관직되는 개인적 불행은 남자 형제도 없는 단신인 그에게 저작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 기회를 촌로나 일반 서민들과 교유하는 장으로 만들며 시간적 여유를 누렸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교서관제조 신완(申玩, 1646∼1707)의 추천으로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叢目)》의 편찬 기회를 얻었지만, 이것마저 고지식한 신료들의 “포폄여탈”, “참람되다”는 비난을 받음으로써 그의 저작이 더 이상 유포·간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쟁의 여파가 평생 그에게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 새로 발굴된 그의 친필문고 《부부고(覆瓿藁)》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청구영언(靑丘永言)》이나 《고금소총(古今笑叢)》, 《속고금소총(續古今笑叢)》 외에도 그가 수많은 기록을 남겼음이 밝혀졌다. 그 저술의 범위도 그렇거니와 내용을 봐도 그가 얼마나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하나하나 분류를 시도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앞으로 그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조사와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옮긴이
정용수는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거쳐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 전공으로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과정을 수료해, 동아대학교에서 정년을 마쳤다. 2000년부터 버클리 대학교(U.C. Berkeley) 동아시아연구소(Institute of East Asia Studies)에서 1년간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고전 번역과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역서로 《후탄선생정정주해 서상기》(국학자료원, 2006), 《전등신화구해》(푸른사상, 2003), 《고금소총 명엽지해》(국학자료원, 1998), 《국역 소문쇄록》(국학자료원, 1997)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옮긴이 서문
명엽지해(蓂葉志諧)
명엽지해 자서
기생이 관백을 장농에 감추다
팔뚝 풍악이 사또를 파직하다
송사를 거두며 사다리에서 떨어지다
방망이를 차야 촛불을 켤 수 있다
옻나무 궤짝으로 사위를 고르다
긴 이야기를 해 아내를 얻다
지아비와 아내가 거울 때문에 송사를 벌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몰래 죽을 훔쳐 먹다
개수를 고쳐 아내의 잘못을 덮다
숙모를 속여 먹을 갖다
임금께 아뢰어 투기를 멈추다
꿈 이야기로 배가 부르다
음모를 나누어 마시다
매를 들다가 메밀 면을 뒤집다
선비가 앞에 한 약속을 저버리다
재상이 아우 간에 대해서 묻다
사또가 연법주를 잡아들이다
스님이 죄인을 잡아가는 형리와 바뀌다
책망을 막으며 조롱까지 하다
가짜 조정으로 풍자하다
누이가 없는데도 부음에 곡하다
대답으로 이마를 만지다
한식날에 세배하다
소 껍데기를 뒤집어쓰다
인수를 지고 벼슬을 자랑하다
배를 그려 놓고 성을 기억하다
이름에 현혹되어 실재를 구하다
옛것을 좋아하다가 파산하다
싫은 체하며 문고리를 가리켜 주다
뀐 방귀로 상을 다투다
신부의 다리가 없다고 의심하다
낭군의 익숙한 솜씨를 칭찬하다
며느리가 옛이야기를 들려주다
할미가 몸을 돌리라고 나무라다
종에게 이빨을 찾아오라 하다
모자를 쥔 채 꿈인 줄 알다
자식들이 말이 울지 않음을 축하하다
백성이 올빼미 소리를 내다
절벽에 걸린 폭포를 천으로 알다
바둑은 마음을 뺏는다
대상 날을 잊은 종형을 부끄럽게 하다
아전에게 제문을 써 달라 청하다
첨자를 잘못하다
물속에 빠지고 관아에서 부르다
관원이 읽기를 시키다
시인은 글자 버릇이 있다
망령되이 비난하다가 비웃음을 당하다
업신여기다 부끄러움을 당하다
기생에게 부끄러워 시를 짓다
무지몽매한 학문으로 억지로 가르치다
제목을 바꿔 쓰고도 과거에 합격하다
처음으로 걸음마를 배우다
《예기》를 재산 문건으로 삼다
번거롭건 간략하건 다 통하지 않다
송덕이도 맞고 막불이도 맞소
발가벗은 여종은 감추기가 어렵군
임의 옷 벗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다
스님에게 짜게 하지 말라 하다
붉은색을 적게 쓴 화공을 나무라다
아침에는 훈도를 물리치다
네 번째 나팔임을 알리다
낭관이 본 뛰어난 경치
선비는 종의 옹벽이다
다리 밑에는 방이 나붙지 않다
세 물건을 다 잃은 셈이군
뒷간에서 헛소리를 하다
절기가 돌아오다
남자끼리 서로 껴안다
시인의 생각은 매일반이다
얼굴에서 기름과 꿀을 짜다
술과 죽으로 견주지 마라
지어낸 이야기로 곤란함을 멈추다
기생에게 아비로 부르라 부탁하다
숙부를 경시하고 장인을 중시하다
신주에게 고하고 전대 속에 넣어라
우장과 도도로 읽다
명엽지해 발
참고자료
《기문총화》의 ‘현묵자 홍만종의 시’
《시화휘성》의 ‘홍만종 시’
《시화휘성》의 ‘홍만종 시’
《기문총화》의 ‘부안기계생 시를 잘 짓다’
《시화휘성》 A본의 ‘부안기계생 시를 잘 짓다’
《시화휘성》 B본의 ‘부안기계생’
해설
엮은이에 대해
엮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한 신부가 시부모를 처음 뵙는 날이었다. 육친이 다 모여 있는데 짙은 화장에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났다. 보는 사람마다 혀를 차며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시부모 앞에 나아가 마침 술잔을 받들려는데 갑자기 방귀를 뽕 뀌었다. 친척들이 모두 웃음을 참고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유모가 너무나 부끄러워서 자신이 한 양 재빨리 일어나 여러 사람에게 사죄했다.
“소적(小的)도 나이가 드니 꽁무니가 약해져 실례를 하는군요. 너무 황공합니다.”
시부모가 착하다고 생각하며 유모에게 비단 한 필을 상으로 주었다. 신부가 그 비단을 탐내어 빼앗으려고 말했다.
“방귀 뀐 사람은 난데 유모가 어찌 상을 받소!”
모두들 입을 막고 웃어 댔다.
야사씨가 말했다.
“유모는 방귀를 뀐 허물을 자신이 감당해 주인의 실수를 덮으려고 했던 것이니 임기응변을 아주 잘한 것이라 할 만하다. 신부가 비단에 눈이 멀어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상을 다투었으니 가진 뜻이 참으로 고루하다. 사람 인품의 높낮이를 태어난 출신으로 따질 수 없음이 분명하다 하겠다.”
– 〈뀐 방귀로 상을 다투다(放屁爭賞)〉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