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집 밖에 내던져진 여성, 그 수난의 서사
《춘향전》과 《홍백화전》을 교직한 혼종적 텍스트
1913년 초판된 이래 1970년대까지 반세기 이상 사랑을 받았던 스테디셀러
1913년 9월 회동서관에서 간행된 활자본 고전소설 《비극소설 미인도》. 신소설이 문학의 주류 양식이었던 때에 신소설식 제목과 스타일로 등장해 당대의 문학 대중을 사로잡았다. 1924년까지 8판을 거듭했으며 해방 이후 《절세미인도》 등의 아류작을 남기며 1970년대까지 반세기 이상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윤경렬과의 혼인을 앞둔 절세미인 김춘영. 그녀를 빼앗아 후처로 삼겠다는 악인 박 병사의 야욕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위기에 봉착한다. 박 병사의 핍박을 이기다 못한 김춘영은 자살을 위장하고 남장을 한 채 도망 길에 오른다. 그녀가 숨어든 절에는 그림 잘 그리기로 소문 난 양 법사가 머무르고 있다. 미인의 그림을 그려 오면 천금을 주겠노라 박 병사의 약속을 받은 터. 남장으로 가려지지 않는 김춘영의 자태를, 양 법사는 기어이 그리고야 만다.
악인 박 병사가 유발한 혼사 장애 때문에 김춘영, 윤경렬 두 남녀 주인공이 겪는 고난과 이들이 그것을 극복해 혼인을 성취하는 일련의 과정을 서사화한 《미인도》. 1910년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춘향전》의 극적 결말을 기반으로 하여 아기자기한 재미를 가진 애정소설 《홍백화전》의 모티프를 교직해 새롭게 창작한 혼종적인 텍스트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김춘영의 수난담이다. 박 병사에게 혼인을 강제 당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그녀의 수난은 도망 길에 오른 이후에도 끊임이 없다. 발이 부르트도록 밤새 도망하다가 기진맥진한 그녀를 거두었던 황 소사에게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질 위험에 놓이는가 하면, 길에서 만난 불량배들은 “사내끼리 손 좀 만져 보기로 무슨 큰 허물 될 것 있나. 아마도 색시인가 보다. 음성도 천생 여성 같은데.” 하며 그녀에게 욕을 보이려 든다. 이들 각 이야기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독립적인 수난담이지만 집 바깥에 내던져진 ‘여성’이라는 존재와 여성이 직면하는 성적 위협이라는 의미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 ‘남성’이라는 기호를 걸침으로써만 ‘집 밖’이라는 공간에서 그 존재가 허용되는 김춘영. 그럼에도 쉬 정체를 의심받고 갖은 수난에 직면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과는 다른 고전 시대의 감각을 담고 있다.
200자평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미인도》의 중심에 놓인 것은 여성의 수난담이다. 악인 박 병사에게 혼인을 강제 당하자 남장을 한 채 길을 떠나는 김춘영. 남장에도 가려지지 않는 미모 탓에 쉬 정체를 의심받고 갖은 성적 위협에 직면한다. ‘집 밖’이라는 공간에서 ‘남성’이라는 기호를 걸쳐야만 비로소 용인될 수 있었던 여성에 대한 고전 시대의 감각을 담고 있다. 1913년 초판된 이래 8판을 거듭, 수많은 아류작을 남기며 1970년대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미인도》를 초역으로 소개한다.
옮긴이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대학원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BK21+ 선임연구원 및 서울대, 수원대, 서울여대, 한국외대, 국민대 강사를 거쳐 현재 선문대학교 교양학부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 《논술세대를 위한 우리고전문학 강의 : 임진록》, 《한국고소설의 전변과 위상》, 《고전문학의 향유와 교육》, 《키워드로 열어보는 고전문학교육》, 《질문으로 톺아보는 고전문학교육》, 《쉽게 읽는 고전소설 : 유충렬전》, 《고전소설과 독자 사이》 등이 있다.
차례
미인도
원문 / 슯흔 소셜 미인도(美人圖)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비록 단장은 아니하고 병중에 있으나 화용월태(花容月態)가 생생하고 아리따워 못에 가득 찬 가을의 맑은 물에 한 송이 연꽃이 반개해 맑은 향내를 토하며 흙비를 머금은 듯하고, 보름달이 밝고 바람이 없는 밤에 둥글고 밝은 달이 뜬구름에 가리어 맑은 광채를 감추는 듯하며, 복숭아꽃과 같은 두 뺨은 춘색이 무르녹고 미인의 눈썹은 열렬한 기운을 띠었으니 짐짓 천향국색이라.
– 본문_32쪽 중에서
양 산수는 미인도를 그려 벽 위에 걸고 보니 비록 자기 손으로 그려 놓았으나 붉은 치마, 푸른 저고리에 백옥패를 차고 계수나무를 의지해 한 손에는 반도(蟠桃)를 가리키고 천연히 서 있는 거동은 푸른 물속 연꽃이 맑은 향내를 토하는 듯, 가을 하늘 밝은 달이 구름을 헤치는 듯, 붉은 입술을 열고 향기로운 말을 이를 듯, 발걸음을 옮겨 향기로운 바람을 헤칠 듯, 춘영 소저와 한곳에 걸어 둘진대 어떤 미인이 사람이며 어떤 미인이 화상인지 분별치 못할 만치 되었으니 만일 그 미인도를 춘영 소저가 볼진대 자기 본색을 양 법사가 아는가 두려운 생각도 없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그 미인도를 김 진사 내외가 볼진대 자기 딸이 환생한 듯 반겨 할 것이요, 만일 그 미인도를 박 병사가 볼진대 김 진사 딸이 지금도 살아 있는가 의심도 할 것이요, 만일 그 미인도를 황 소사가 볼진대 자기 사위가 둘인 줄로 의심도 하게 할 것이며, 만일 그 미인도를 윤 공자가 볼진대 중당에서 약속하던 자기의 백년가우(百年佳偶)를 다시 만난 듯 즐겨 할 것이요, 만일 그 미인도를 장 낭자가 볼진대 내년으로 후약을 두고 문장을 화답하던 자기 남편 될 공자를 다시 본 듯 부끄러워함을 마지아니하리로다.
– 본문_52∼53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