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만화로 생명의 길을 찾는 작가 박흥용 작품론
도시빈민, 광주민주화운동, 공장의 어린 노동자,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왠지 무거운 소설이나 심오한 영화에서나 볼 듯한 이 주제를 만화에 담은 작가가 있다. 박흥용이다. 만화애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의 원작자로 이야기하면 알기 쉽겠다.
박흥용은 ‘작가주의’ 만화‘가다. 그래서 그의 만화는 가볍지 않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예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그가 말하는 선한 사람들의 내력담 속에 숨은 철학적 성찰을 만나게 된다. 1981년에 <돌개바람>으로 데뷔해 묵직한 만화를 그려온 그는 웹툰에서도 작품 활동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박흥용만화에서 만나는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내력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박흥용의 정진을 일러 “생명은 꿈꾸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살아가는 동안 멈추지 않을 꿈꾸기가 그의 만화에서 계속되는 것은 동시대 향유자로서 축복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박흥용의 작품들 중에서 초기 단편 모음집 한 권과 출간된 아홉 편의 단행본을 대상으로 한 작품론이다. 이 책에서 다룬 9편의 장편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1995), <劍>(1992), <경복궁 學校>, <내 파란 세이버>(1998), <호두나무 왼쪽 길로>(2003), <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2008), <빛Phos>(2008),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2016), <새벽 날개>(2018)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이 작품들을 다시 읽었는데, “작품은 그대로인데 더 많은 것을 읽게 되었고 그만큼 더 많은 생각을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가벼움이 판치는 시대, 이 책을 통해 묵직한 울림을 주는 박흥용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200자평
박흥용은 성장을 상처와 탐색의 결과로 보여 준다. 지독히도 약한 자들에게 눈길을 주며, 그들이 소외되고 상처받는 이유에 거칠게 분노하던 초기의 박흥용은 자아와 타자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역사와 인간의 길에 대한 탐구를 이어 왔다. 박흥용에게 만화란 삶의 그것처럼 부단한 질문이고 탐색이며, 발견한 진실에 최적화된 구현을 찾아가는 구도의 작업이다. 생명은 꿈꾸는 일이라 말하는 그의 만화를 살펴본다.
지은이
박기수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문화콘텐츠전략연구소 소장이다. 한양대학교 ERICA 창의융합교육원장과 ICᐨPBL센터장을 맡고 있다. 한양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 서사의 특성 연구”(2001)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평론을 하다가 <신세기 에반게리온>과의 운명적인 조우로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기획창작아카데미 자문위원, KBS 미디어비평 자문위원을 지냈고 캘리포니아대학교(어바인)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연구의 관심 분야는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리터러시, 향유, 팬덤, HCI 등으로 현장성 강한 실천적 학문의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전략』(2018), 『윤태호』(2018), 『강도하』(2018), 『웹툰,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구조와 가능성』(2018),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구조와 전략』(2015), 『アニメは 越境する』(공저, 2010), 『애니메이션 서사구조와 전략』(2004) 등 28권의 저서와 “웹툰의 트랜스 미디어스토리텔링 전략 연구”(2016)를 비롯한 8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차례
길을 찾는 선한 의지의 부단한 탐색
01 소외된 것들을 위한 거친 연민
02 칼 뒤에 숨은 자유의 의지
03 하늘의 검에 이르는 길
04 갇힌 자들의 구조 신호
05 꿈이 생명인 이유
06 처음 가며 혼자 걸어 만나야 할
07 착청과 환등의 느린 고백
08 당신이 찾은 여우
09 여명과 편재의 중의적 성장
10 멈추지 않을 따듯한 탐색의 여정
책속으로
박흥용의 만화는 탐색의 기록이다. 혹자는 그의 작품을 길 위의 서사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의 탐색은 이동과 정주로부터 자유롭다. 박흥용의 길은 메타포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길은 사람이 걸어서 만들어 놓은 내력으로 다져졌고 앞으로도 누군가의 내력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잉태할 길이다.
_ “길을 찾는 선한 의지의 부단한 탐색” 중에서
단편집 『박흥용 1986∼1992』(2004)은 박흥용의 탐색 기록이다. 총 열여덟 편의 단편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길을 탐색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작가의 말처럼 ‘지독히도 약한 자들’이 놓여 있다. 이런 탐색은 단순히 소외계층의 비참한 삶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분노하거나 당위적인 극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박흥용은 그 부당했던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약자들의 사연과 그들의 대응 자세에 주목한다.
_ “01 소외된 것들을 위한 거친 연민” 중에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세상을 향한 욕망과 자기를 찾는 탐구 사이에서 진동한다. 작가는 세상을 향하는 칼과 자기를 향하는 칼 중 후자를 선택하고 ‘칼 뒤에 숨어 자유하라’고 일갈한다. 상징과 메타포가 화려하게 등장하고, 역동적인 검술 동작들을 둔중한 무게로 정지시켜 향유자의 사유에 깊이를 더하도록 하는 연출은 압권이다.
_ “02 칼 뒤에 숨은 자유의 의지” 중에서
<경복궁 學校>의 이야기는 갇혀서 갇히기 전의 내력을 들려주는 것인데, 갇히기 전의 이야기 역시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로부터 갇힌 이야기다. 물리적으로는 현재 갇혀 있는데 그들은 이미 갇히기 전에도 갇혀 있었다는 발상은 암울한데,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현재와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소 경쾌하기까지 하다.
_ “04 갇힌 자들의 구조 신호” 중에서
박흥용의 <호두나무 왼쪽 길로>(2003)는 길의 서사다. 이 작품은 자아와 타자의 경계선에 선 호두나무, ‘처음 가지만 혼자 가야만 하는 삶’의 메타포로서 왼쪽 길로 걸어야 하는 홀로서기의 기록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막막함과 두려움 그리고 극복의 메타포가 ‘호두나무 왼쪽 길’이 아니던가?
_ “06 처음 가며 혼자 걸어 만나야 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