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베냐민 미디어 비판 이론의 재구성
100년 전 미디어 이론이 왜 아직도 유효한가?
서울대 강재호 교수의 영문판을 우리말로 번역한 책
베냐민은 미디어가 수신자에게 메시지 전달 장치에 불과하다는 관습적인 인식에 비판적 질문을 던진 초기 사상가 중 한 명이다. 그는 기술이 ‘생산력(productive force)’이 아닌 하나의 미디어이자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 생성의 형식이자 원리”임을 포착한 최초의 이론가다. 베냐민은 기술 혁신이 현대 시대의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이라고 본다. 베냐민은 우리와 다른 미디어 시대에 살았음에도 그의 저술은 오늘날 전 지구적 미디어 정경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에 여전히 근본적인 통찰을 던져준다.
베냐민은 미디어와 자본주의 현대성의 밀접한 관계에 관심을 기울였다. 미디어의 사회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환경과 결과를 탐구한 그의 미디어 저술에는 강력한 정치적 참여의 감각이 들어 있다. 예술과 정치에 대한 베냐민의 분석은 현대 미디어 시대의 정치 스펙터클의 복합적 차원과 새로운 공중의 형성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또한 기술 혁신과 인간의 감각 및 경험의 변형의 밀접한 관련성을 강조한 베냐민의 비판적 연구는, 그 관련성이 확연하게 강화된 오늘날 더욱 적실성을 띤다. 베냐민은 자본주의적 현대성을 지배하는 정치적·경제적 맥락에서 인간의 지각·감각 능력의 재배치와 관련하여 미디어를 논의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베냐민의 작업은 언제나 커뮤니케이션이 인간 해방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는 현대 미디어를 인간의 능력을 향상하는 도구로 보는 순진한 관점이 아니다. 미디어가 인간, 기술, 자연 간의 복잡다단한 상호작용을 규율하고 조정하는 방식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서 비롯된다. 베냐민이 우리에게 명쾌한 답을 제공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붙들고 씨름한 많은 질문과 이슈-기술의 역할, 신체 경험, 공간의 조직, 주의 집중과 산만,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등-는 디지털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여전히 사로잡는 문제다.
이 책은 베냐민의 미디어 비판에서 찾아낸 핵심 주제, 즉 커뮤니케이션 위기, 매개된 이야기, 기술복제, 미디어 도시를 다루는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각 장에서는 특정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책, 신문, 라디오, 사진과 영화)와 그에 상응하는 경험의 형식 간 관계를 베냐민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먼저 2장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위기를 부르주아 문예문화와 공공 영역의 종언이라는 측면에서 검토한다. 3장은 베냐민이 직접 참여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교육, 오락,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 등 당대의 이론적 문제를 어떻게 실험적으로 다루었는지 보여 준다. 4장에서는 베냐민의 에세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아우라의 종말, 충격, 산만, 촉각성 등 영화적 경험의 핵심 주제를 통해 살펴본다. 5장에서는 베냐민의 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대도시 정경과 현대 미디어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통찰을 밝힌다. 결론에서는 미디어와 사회를 연구하는 최근 이론가들과 간략하게 비교하며 베냐민의 미디어 비판을 평가한다.
이 책은 현대 미디어 연구에 대한 베냐민의 독창적인 기여를 보여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비판적 탐구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렌즈를 통해 베냐민의 방대한 미디어 비판 이론을 포착하고 배열하고 재구성해서 독자에게 전송하는 친절한 안내자다.
200자평
발터 베냐민은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예리한 사상가 중 하나다. 그는 기술 혁신이 현대 시대의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이라고 본다. 그의 미디어 비판은 우리가 세계를 더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데올로기와 권력의 기만을 꿰뚫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베냐민의 미디어 비판이 미디어의 발달과 미디어가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데 수많은 이론적 기여를 하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 준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렌즈를 통해 베냐민의 방대한 미디어 비판 이론을 포착하고 배열하고 재구성해서 독자에게 전송하는 친절한 안내자다.
지은이
강재호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다. 2004년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 사회조사연구소(Institut für Sozialforschung) 알렉산더 본 훔볼트 재단 연구원(2004∼2005), 미국 뉴욕 뉴스쿨(The New School) 미디어 사회학 조교수(2005∼2012), 영국 런던대학교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비판적 미디어 문화 연구 조교수 및 부교수(2012∼2018)를 지냈다. 현재 비판 이론의 전통에서 현대 미디어 이론을 발전시키며 동아시아 문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옮긴이
곽현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임연구위원이다.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디어 이벤트: 역사를 생중계하다』(2011)를 번역했으며, 『팬덤 이해하기(2016)』, 『진짜 눈물의 공포』(2004), 『세계화와 미디어 연구』(2002), 『스타덤: 욕망의 산업』(2000)을 공역했다.
차례
역자 서문
서문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약어
01 베냐민 박사 소개
그때 그곳, 지금 여기
베냐민의 모습들
베냐민의 주변 인물들
책의 구성과 개요
02 커뮤니케이션 위기와 정보 산업
서론
이야기 그리고 소설의 위기
신문과 정보 산업
대중매체 시대의 지식인
결론
03 라디오와 매개된 이야기
서론
청취자의 비판사회학을 향하여
라디오 모델
미디어교육학을 위한 몇 가지 모티프
결론
04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과 정치
서론
사진의 복제 가능성
산만(散漫)의 미디어 문화
미디어와 민주주의
결론
05 미디어 도시: 『아케이드 프로젝트』 읽기
서론
현대성의 환등상
미디어 스펙터클과 도시 공간
미디어 비평의 촉각성
결론
06 결론: 베냐민 미디어 비판의 실제
비판이론과 문화 산업
비판적 미디어 이론과 공공 영역
미디어 은하에서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
환등상, 시뮬라크라 그리고 스펙터클
미디어 비판의 현재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책속으로
베냐민은 미디어 이론가이기 이전에 미디어 실천가였다. 그는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반에는 라디오 방송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이 기간은 독일의 라디오 산업이 급속히 팽창하며 새로운 대중매체로서 라디오의 인기가 정점에 달했던 때이다. 다른 독일 지식인들이 라디오 매체의 가능성을 두고 이론적 논의에 주력했다면 베냐민은 때로는 프로듀서로, 때로는 진행자로 그리고 때로는 대본 작가로 라디오 방송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_ “01 베냐민 박사 소개” 중에서
정보 산업에 대한 베냐민의 분석은 신문 산업과 출판 산업의 발달이 어떻게 초기 문학 장의 변화를 가속시키고, 작가의 자율적 지위를 박탈하고, 문학작품을 상품 시장에 예속시키고, 천재, 창조성, 진정성 같은 전통적 범주를 낡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보여 준다. 정보 산업의 부상에 대한 베냐민의 검토는 주로 인쇄 문화와 관련된다.
_ “02 커뮤니케이션 위기와 정보 산업” 중에서
베냐민이 볼 때 전자 매체인 라디오가 문학에 미친 영향은 소설이 이야기에 미친 영향이나 책이 구술 커뮤니케이션에 미친 영향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는 라디오 방송에 대한 그의 독특한 접근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라디오극의 내용은 라디오 매체의 특수한 기술적 속성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디오의 기술적 잠재력을 온전히 이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야기의 핵심 원리가 강조된다.
_ “03 라디오와 매개된 이야기” 중에서
“예술작품” 에세이에서 베냐민은 사진의 핵심적인 측면을 설명하기 위해 ‘기술적 복제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기술적 복제 가능성이란 대상을 복제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사실 이쪽이 더 중요한데, 역사적 변화의 핵심을 설명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문학작품을 그 작품이 나온 시대의 맥락 속에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지각하는 시대, 즉 우리 시대를 문학작품이 등장한 시대 속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문학을 역사의 도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_ “04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과 정치” 중에서
아케이드, 파노라마관, 만국박람회 같은 도시 공간은 미디어 스펙터클의 미적 경험을 접할 수 있는 문화적 장소(cultural loci)다. 부르주아 공적 문화(문학 공공 영역 포함)의 붕괴는 이런 다양한 오락 산업들의 부상과 궤를 같이 한다. 내가 볼 때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탐구된 공적 공간의 등장은 세 가지 측면에서 부르주아 현대성의 환등상의 종언을 나타낸다.
_ “05 미디어 도시: 『아케이드 프로젝트』 읽기” 중에서
추천글
발터 베냐민은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미디어 이론가다. 강재호 교수의 『발터 베냐민과 미디어』는 베냐민의 전체 저작을 포괄하며 미디어 이론을 발굴하여 재구성한다. 나아가 강 교수는 20세기 초의 베냐민을 우리 시대로 끌어와 현대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베냐민에 따르면 번역의 과제는 언어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의 기억이 보증하는 “순수 언어”를 발견하는 것이다. 곽현자 박사는 이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며 이론적 빈곤에 빠진 한국의 미디어 및 문화 연구에 새로운 자원을 제공한다.
이재현(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우리가 아는 베냐민의 모습은 여럿이다. 실패한 학자, 뛰어난 저널리스트, 메시아적 작가. 그러나 우리는 ‘기계적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넘어서 미디어 이론가 베냐민에 대해 과연 잘 알고 있는가? 강재호는 여러 학문 분과를 가로지르며 베냐민을 미디어로 이끌었던 강렬하게 독창적인 지적 여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재기 넘치면서도 진지하고, 깊이 있으면서도 빛나는 강재호의 책은 베냐민의 눈부신 호기심을 나누는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다.
다니엘 다얀(파리 국립과학연구원)
베냐민의 보석 같은 텍스트는 오랜 시간 그저 먼 곳에서만 빛을 냈을 뿐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일상적 분석에 통합되지 못했다. 라디오, 이야기, 미디어 산업과 도시 문화를 다루는 베냐민의 저작들에 대한 강재호의 유려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새로운 독해는 문화 변동에 관한 이 위대한 20세기 사상가와 우리를 다시 생생하게 이어준다. 멋지게 구성된 강재호의 책은 한때 친숙했으나 오늘날 빠른 속도로 재배치되는 미디어 정경을 포착할 연장 상자를 제공한다.
닉 쿨드리(런던 정경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