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2017년 세종문학나눔도서
이 책은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들이 서양 사상이나 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작가들의 삶과 작품의 주요 내용을 인용하고 해설한 책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학교에서 숱하게 듣고 배우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고, 그들이 쓴 글을 직접 한두 페이지라도 읽어 본 사람은 더욱 드물다. 한국인들에게 서양의 고전을 저술한 사람들은 시공간적으로 너무나 멀리 있고, 언어 장벽 너머에 있으며, 대체로 기독교와 같이 낯선 관습으로 무장해 있다. 서양 고전의 번역본은 많이 나와 있지만, 충실하고 믿을 만한 번역본이 무엇인지를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그저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해설하는 수준의 이해에 머물고 만다.
대학의 인문학은 죽어 가지만, 사회 인문학은 꽤 활성화되고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독서토론 모임을 꾸리기도 하고, 무슨 특강이든 ‘인문학’이라는 말을 넣어야 장사가 더 잘된다. 삶이 팍팍해졌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인문학도인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조차, 서양 책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읽는 방법’을 알지 못해 날려 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문제는 개인에게 있지 않다. 한국어는 그 발생 배경은 물론 사용된 내력, 어휘가 발달한 부문, 용례의 수, 사전의 발달 정도에서 주요 서양어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크다. 대단히 송구스러운 이야기지만, 번역가들이 쏟은 노력과 별개로, 대부분의 한국어 번역본을 무조건 신뢰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인문학 독서를 중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쓴 책이 이 ≪배수찬의 서양 고전 읽기≫다.
이 책에서는 다음 몇 가지에 특히 유의했다.
첫째, 저자가 읽고 소화하지 않은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둘째, 입시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서양 사람들의 내면 세계와 서양의 역사적 현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며, 견고한 가치가 입증된 양질의 고전을 최대한 많이 수록하려고 했다.
셋째, 서양책의 원본 혹은 그에 준하는 문헌학적 엄밀성을 지닌 편집본을 소개하고, 그것을 직접 번역해 소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넷째, 정확하고 알기 쉬운 한국어로 내용을 설명하고 번역문을 제시하기 위해 애썼다.
200자평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서양의 문학과 철학에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던 인물 64명과 작품 73종을 꼽아 보고 평하면서, 그 인물과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의미를 풀어 준다. 국문학과 국어교육학을 전공한 저자가 직접 서양의 여러 언어를 익혀 서양 고전을 읽고 내용을 전달해 준다. 겉핥기식 해설이 아니라 직접 읽은 작품을 소개한다. 독자들을 서양 고전으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3권으로 나누어 출간했으며, 3권에서는 18세기 독일부터 20세기까지를 다룬다.
지은이
배수찬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고전문학을 연구했고, 국어교육과에서 근대 초기의 글쓰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6년 현재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로 있다. 스스로를 국문학자라고 소개하지만, 늘 국문학 자체보다 그 경계와 바깥을 살펴보기를 더 좋아했다. 주요 저서로 ≪근대적 글쓰기의 형성과정 연구≫(소명출판, 2008), ≪세계화 시대의 인문학 책읽기≫(아포리아, 2015)가 있으며, 네이버 블로그 동서고전교육연구소 람파스를 운영하고 있다.
차례
8장 과학적 엄밀성을 갖춘 독일의 인식론과 반이성주의: 18∼19세기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탁월한 말재주로 중세적 허세를 옹호하다
≪모나드론≫
이마누엘 칸트
라이프니츠의 허풍을 폭로하고 지성의 한계를 세우다
≪순수이성비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초인적 능력으로 독일 문화를 업그레이드하다
≪파우스트≫
게오르크 헤겔
절대 정신을 내세워 칸트의 한계를 넘어서다
≪정신현상학≫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유럽의 지적 전통을 뛰어넘어 세계를 새롭게 그리다
≪의지와 표상으로서 세계≫
프리드리히 니체
고전문헌학을 무기로 기독교에 맹폭을 퍼붓다
≪도덕의 계보≫
≪반그리스도≫
9장 난숙기에 접어든 프랑스 문학과 새 시대의 미국·러시아 문학: 19세기
너새니얼 호손
개신교 국가 미국의 치부를 폭로하다
≪주홍 글자≫
허먼 멜빌
거친 삶과 엄밀한 지성을 미국적으로 조화시키다
≪모비 딕≫
귀스타브 플로베르
근대 소설을 언어의 예술로 승화시키다
≪부바르와 페퀴셰≫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근대 사회의 이면을 폭로하고 예술에 헌신하다···1214
≪악의 꽃≫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문제아가 소설을 더 잘 쓸 수 있음을 증명하다
≪악령≫
레프 톨스토이
방탕한 청년에서 성스러운 노인으로 성장하다
≪부활≫
10장 영국과 독일의 정면충돌과 상처의 회복: 20세기
조지 버나드 쇼
인간과 사회의 깊이를 통찰하는 그릇을 마련하다
≪바버라 소령≫
막스 베버
기독교와 세속의 결탁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다
≪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마르셀 프루스트
자신의 온 인생을 대작 한 편과 맞바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토마스 만
양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정체성을 고민하다
≪마의 산≫
버지니아 울프
분열된 근대인의 삶을 온몸으로 살다 쓰러지다
≪댈러웨이 부인≫
데이비드 로런스
근대세계의 모순에 야생마처럼 맞서다
≪사랑하는 여인들≫
참고문헌
지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니체는 굳이 분류하자면 학자나 저술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독교와 이성주의, 그러니까 고대 이후 서양 사상의 거의 전부를 쇼펜하우어식 비합리주의와 희랍 문학에 구현된 고대의 이상에 입각해 공격한 정신의 혁명가다. 거꾸로 보면 극도의 반동 사상가이기도 한 셈이다. 목사의 아내였던 그의 홀어머니는 똘똘한 아들이 개신교 성직자가 되기를 바랐다. 니체는 처음에 신학대학을 갔지만, 신학은 공부하지 않고 고전문헌학에 빠져 기독교 신앙까지 내버렸다. 지도교수의 인정을 받아 20대 초반에 학위도 없이 교수가 되었지만 그는 특정한 사회적 직무를 평생 수행하며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11년간 교수직에 있으면서 과감하고 위험해 보이는 비합리주의 철학의 전망을 제시한 니체는, 점잖은 것이 본성인 학계에서 매장되었다. 이후 10년 동안 유럽을 방랑하며, 유대교와 기독교라는 서양 일신교에 깔린 전제들을 역사적·심리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놀라운 저술을 했다. 이성보다 용맹이 강조되던 희랍을 숭상한 그는, 인간 내면의 이성을 절대시하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이나, 거짓된 평화를 주는 대가로 내면의 노예화를 초래하는 기독교 사상을 인류의 타락이라고 평가했다. 만년의 니체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죽기 전까지 11년간이나 병석에 누워 있었고, 그의 시신은 고향에 묻혔다. 오늘날 그는 독창적 사상가라는 명예를 회복했지만,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과 이성 숭배자들은 그의 이름을 불편해하거나, 심지어 그에 대한 증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132~1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