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국 서민들을 대변하는 이야기
<백토기(白?記)>는 당말 오대 시기 유지원(劉知遠)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개인사를 다룬 남희(南戱) 작품이다. 당이 망하고 분열 시기로 접어들어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의 다섯 나라가 이어지는 시기를 오대 시기(907∼960)라 하는데, 그중 후한(後漢)을 세운 것이 바로 유지원이다. 작품 속 유지원은 영웅의 면모를 보이며 그로 인해 높은 지위에 오르고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지만, 아내를 버리고 떠나 16년 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인물이다. 남희는 민간에서 발생한 것이니만큼 서민들이 좋아하던 소재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소재가 의리를 저버린 남자 이야기였다. 당 대 과거 제도의 정착으로 많은 선비들이 과거에 매달리고, 급제 후 더 큰 보장된 미래를 위해 기성 권력과 결탁하면서 혼인을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시골에서 부모님을 봉양하는 조강지처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낯설지 않은 이러한 소재는 당시에도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해 주는 이야기로 사랑받았다.
가장 완성된 형태의 판본의 핵심 단락을 발췌
이후 향유층의 요구에 의해, 시대의 요구에 의해 작품이 개작되면서 주인공 유지원이 의리남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작품의 제목으로 삼을 만큼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백토(흰 토끼)가 사라지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다양한 판본 가운데 이른 시기의 판본을 잇는 완성본이자 가장 널리 읽힌 최대 유통본이라 할 수 있는 급고각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이다. 전체 33단락 중 시작 단락과 전체의 맥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곱 단락을 골라 옮겼다. 이 단락들은 실제로 중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단락들이다. 대체로 편폭이 긴 중국의 전통극들은 전작을 한꺼번에 공연하는 전본희(全本戱) 방식으로 무대에 올리기도 하지만, 볼만한 단락을 골라 공연하는 절자희(折子戱) 공연 방식이 더 일반적이다.
200자평
시, 노래, 연기가 어우러진 중국 남방계 고전극인 남희는 조선 후기 서민들이 즐겼던 판소리처럼 민간에서 발생하여 서민들의 생활상을 대변하는 소재와 그들이 향유하던 악곡으로 이루어져 그들의 일상과 애환을 엿볼 수 있다. 그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재의 <백토기>를 가장 완성된 판본에서 발췌해 소개한다. 유지원이 16년 만에 삼랑에게 돌아오도록 한 흰 토끼를 따라 천 년 전 중국의 저잣거리로 가보자.
옮긴이
오수경은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으며, 대만에 유학하여 국립 타이완 대학 중국문학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서울대학교에서 <송원 남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하버드 대학 동아언어문명학과 방문학자, 1998∼1999년 하버드 옌칭연구소 방문학자, 2008∼2009년 중국 칭화 대학 고급방문학자로 연구를 수행했다.
논문으로 <≪오륜전비기(五倫全備記)≫ 연구?민간 남희 연출본의 특색>, <나희 연구가 중국 연극사 인식의 변화에 끼친 영향>, <20세기 중국 연극사 연구의 성과와 한계>, <중국의 축제와 공연문화>, <‘白?記’ 텍스트를 통해 본 중국 희곡의 아속(雅俗)의 변주>, <중국 호랑이 연희 연구>, <중국 고대 호랑이 신앙 연구>, <중국 전통극의 현대화 작업에 관한 연구> 등 60여 편과 중문 논문 <试探南戏音乐体制中曲破的运用>, <奎章阁本 ≪五伦全备记≫ 初考>, <≪五伦全备记≫ 新探>, <南戏 ‘荊钗记’的流传与小说本的出现>, <明洪武时期対民政策対民间戯剧演出的影响>, <明初民间戏剧环境研究>, <从“文本”问题看中国戏剧研究的本质回归>, <‘白兔记’在近代地方戏中的流传与演变> 등이 있다.
편저로 ≪삼인삼색−2008 한국 희극 무대 현장≫ 등이 있고, 역서로는 ≪중국희곡 선집≫, ≪찻집≫(라오서), ≪버스정류장−가오싱젠 희곡집≫(독백, 야인 포함), ≪피안−가오싱젠 희곡집≫(명성, 생사계, 팔월설 포함), ≪중국 고대 극장의 역사≫와 ≪한국 연극사≫(중역)가 있다.
차례
제1단락 연극을 시작하다
제4단락 마을 제사를 올리다
제12단락 수박 밭을 지키다
제13단락 부부 이별하다
제18단락 심문을 당하다
제19단락 방아를 돌리다
제30단락 사냥 길에 삼랑의 사연을 듣다
제32단락 몰래 상봉하다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제 보니, 당신은 박정한 사람이로군요.
당신은 신혼의 단꿈에 빠져, 날 외로움에 울게 했소.
난 온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렸는데,
당신은 영화를 누리고, 난 박대를 받았지요.
하늘이시여, 이 여인의 고통을 살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