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표현주의 시기의 탁월한 정거장식 드라마
“한 인간의 투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드라마는 인간 공동체 생활의 정신적 내용을 개혁하려는 작가의 의도에 충실하고 있다. 톨러에게 표현주의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 준 이 드라마는 주요한 표현주의적 요소들을 포괄하는 이 시기의 본보기적 작품이다. 표현주의 드라마의 핵심적 표제어들인, ‘변화’, ‘인간의 개혁’, ‘새로운 인간’, ‘인간 중심의 문학’, ‘주역극’, ‘이념극’, ‘고지극’ ‘정거장식 드라마’ 등이 이 한 편의 드라마에 모두 내포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줄거리상의 갈등이나 상대역이 없는 스트린드베리의 정거장식 드라마 형식을 정확히 따르고 있으며, 주인공이 변화 과정에서 통과하게 되는 여섯 개의 정거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섯 개의 정거장들은 다시 열세 개의 장면들로 구성되어 주인공인 젊은 조각가 프리드리히가 겪는 체험과 변화의 과정을 보여 준다.
한 인간의 ‘변화’
민족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참전을 결심하던 프리드리히의 맹목적 애국주의는 극이 진행됨에 따라 평화주의로 바뀐다. 민족적 영웅에서 세계 평화를 부르짖는 투사로 거듭난 프리드리히는 군중들을 흔들어 깨우며, 그들의 인권과 자유를 상기시킨다. 민중들은 예언자 프리드리히의 호소로 새로운 인간으로의 변화에 대한 충동을 느낀다. 프리드리히가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동안, 민중 사이에서 점점 더 강한 동요가 나타난다. 마침내 한 젊은이가 “우리는 잊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하고 외치며 뛰어든다. 그리고 “우리들은 인간들이다!”라는 모두의 함성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프리드리히 개인의 변화가 미래의 이상 사회를 위한 혁명에의 촉구로 이어진 것이다. 변화란 인간의 참된 본성을 다시 획득하는 것을 의미하며, 혁명은 이 같은 변화가 민중에게로 널리 파급되는 것을 뜻한다. 형제애와 인도주의에 입각한 평화주의적 혁명을 외치는 그의 연설에는 인류를 위한 이상주의적 격정과 정치적 행동주의가 함께 울려 퍼진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모두의 변화가 있은 후에 프리드리히는 이제부터 그의 형제들인 인간들에게 행동을 촉구한다.
200자평
유대인인 프리드리히는 민족 공동체로의 편입을 약속하는 조국을 위한 애국 전쟁에 뛰어든다. 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에게 훈장과 시민권이 수여되지만 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야 민족의 일원이 될 수 있음에 전쟁에 대한 회의가 찾아온다.
지은이
톨러(Ernst Toller, 1893∼1939)는 독일과 폴란드 국경 지대에 있는 포즈난(Poznań) 지방의 사모친(Samotschin)이라는 한 소도시의 독일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1914년 프랑스의 그르노블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일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톨러는 독일로 돌아가, 갑자기 모든 인종과 계급의 차이를 부정하는 조국을 위해 싸우고자 뮌헨에서 자원입대한다. 1915년 톨러는 프랑스 전선에 지원한 후, 참호전에 투입되어 집중포화 속에서 정찰 근무를 수행한다. 이때의 체험이 톨러를 작가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참혹한 전쟁의 현실은 애국자의 고상한 꿈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참호 앞에서 사흘 밤낮을 철조망에 매달려 끊임없이 도움을 절규하던 한 부상병의 모습과 우연히 발견한 참호 속의 시신이 톨러가 전쟁에 열광했던 국수주의자에서 반전 및 평화주의자로 변화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년여를 전선에서 머무른 후 톨러는 심한 위장 장애 및 심장병으로 군 복무를 면제받는다. 제대 후 그는 학술 및 예술 활동에 전념함으로써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톨러는 항상 “우리는 보다 정의로운 세계를 위해 투쟁한다. 우리는 인간성을 요구하고, 우리는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어떠한 폭력도 용인하지 않는다. 1933년 톨러는 히틀러의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려 했지만, 그곳 사회에서 작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좌절감, 연하의 여배우와의 결혼 실패 등으로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며 유랑자 생활을 계속한다. 결국 창작의 불씨마저 꺼져 가는 데 절망한 나머지 1939년 뉴욕의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목을 매 자살함으로써 영욕에 찬 생을 마감한다.
옮긴이
김충남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수학했으며, 뷔르츠부르크대학 및 마르부르크대학교 방문교수, 체코 카렐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다.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외국문학연구소장, 사범대학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시문학≫(공저), ≪민족문학과 민족국가 1≫(공저), ≪추와 문학≫(공저), ≪프란츠 카프카. 인간· 도시·작품≫, ≪표현주의 문학≫이 있고, 역서로는 게오르크 카이저의 ≪메두사의 뗏목≫, ≪아침부터 자정까지≫, 페터 슈나이더의 ≪짝짓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헤르만 전쟁≫, 에른스트 톨러의 ≪변화≫, 프란츠 베르펠의 ≪거울인간≫, ≪야코보프스키와 대령≫, 프리드리히 헤벨의 ≪니벨룽겐≫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응용미학으로서의 드라마-실러의 ‘빌헬름 텔’ 연구], [신화의 구도 속에 나타난 현재의 정치적 상황-보토 슈트라우스의 드라마 ‘균형’과 ‘이타카’를 중심으로], [최근 독일문학의 한 동향: 페터 슈나이더의 경우], [베스트셀러의 조건-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경우] 외에 독일 표현주의 문학과 카프카에 관한 논문이 다수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로 ‘독일 명작 산책’과 ‘독일 작가론’을 강의하고 있다.
차례
격문·····················5
나오는 사람들·················7
죽은 자들의 병영···············11
첫 번째 정거장················21
두 번째 정거장················37
세 번째 정거장················51
네 번째 정거장················69
다섯 번째 정거장···············85
여섯 번째 정거장···············115
해설····················137
지은이에 대해················162
옮긴이에 대해················170
책속으로
자, 형제들이여, 여러분을 향해 외칩니다! 행진하시오! 이 밝은 낮에 행진하시오. 이제 권력자들에게로 가서 장엄한 오르간 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그들의 권력이 하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시오. 군인들에게로 가서 그들의 칼을 쟁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