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부대 간 사격 시합에서 소속 부대를 승리로 이끈 다나카는 동료들과 포상 휴가를 얻어 근처 유곽을 찾았다. 거기서 빚 때문에 팔려온 누이 요시코를 본다.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듣는 사이 부대 하사관이 유곽에 찾아온다. 요시코가 그를 접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다나카는 누이를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이어 하사관을 살해한다. 결국 다나카는 누이와 상관을 총검으로 살해한 이중 살해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선다. 법정은 누이 살해는 무죄로, 상관 살해는 유죄로 판결한다. 상관 살해는 군인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를 속죄하는 길은 죽음뿐이다. 하지만 법정은 다나카에게 천황의 사면을 구하라고 권고한다. 다나카는 오히려 비극의 책임을 천황에게 묻는다. 그는 법정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엄청난 요구를 한다. “천황이 나에게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이 발언이 바로 드라마의 핵심이다.
카이저는 이 작품으로 1920년대 일본 제국주의를 예로 들어 모든 독재 체제와 민중 착취에 항의한다. 망명지 스위스에서 이 작품을 쓸 당시 반파시즘 입장을 천명했던 카이저는 드라마를 구상하면서 독일 나치즘과 파시즘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독일 동맹국이자 전제군주국가였던 일본을 배경으로 이용한 것이다. 아륵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카이저가 이 작품으로 말하고자 한 바를 짐작할 수 있다.
“자유가 없이는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때문에 나는 감옥 국가인 독일을 떠났다. 그러나 집단적 광기는 전 지구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고 점점 더 증대되고 있다. 미친 자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끔찍하고 비참한 일이다. 현재가 끝장났다면 미래라도 건지련다. (…) 전쟁, 그건 삶과의 이별이다. 병사 다나카가 고발의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린다. 무엇에 대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 제복을 입은 자의 비겁함에 대해, 군국주의로 추락하는 것에 대해. (…) 이제 병사 다나카가 온 세계를 향해 흔드는 횃불에 불을 붙여야 할 때다.”
200자평
<병사 다나카>는 군국주의의 경제적 착취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군국주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카이저가 스위스 망명 기간 중에 쓴 가장 뛰어난 평화주의 반전극으로 꼽힌다.
지은이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 는 1878년 11월 25일 마그데부르크에서 상인 프리드리히 카이저와 부인 안토니 안톤의 여섯 아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교사와 교육과정에 대한 불만으로 김나지움을 중퇴한 후 3년간 상업 수업을 받았다. 서점과 수출입상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면서도 항상 플라톤과 니체를 읽고,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을 듣기를 좋아했다. 1898년에 카이저는 석탄 운반 인부로서 화물선을 타고 남아메리카로 가서 3년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에게(AEG) 지사의 경리 사원으로 일한다. 그러나 말라리아에 걸려 스페인, 이탈리아를 거쳐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는 주로 마그데부르크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25세에 첫 작품으로 희비극 <클라이스트 교장>을 발표했다. 1908년 10월에 카이저는 부유한 상인 가문 출신의 마르가레테 하베니히트(Margarethe Habenicht)와 결혼해 제하임 안 데어 베르크슈트라세로 이사했으며, 1911년에는 바이마르에도 겨울을 날 별장을 갖게 되었다. 1915년에 처음으로 그의 작품 <학생 페게자크 사건>이 빈에서 공연되었다. 1917년 <칼레의 시민들>과 <아침부터 자정까지>의 초연으로 카이저는 극작가로서 최초의 성공과 명성을 얻는다. 이후 카이저의 작품 중 40편 이상이 세계 각국에서 초연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적 극작가로 부상한다. 1944년에 세 편의 그리스 희곡들 중 마지막 작품인 <벨레로폰>을 끝내고 소설 ≪아르트≫를 집필하던 중 1945년 6월 4일에 혈관이 막히는 색전증으로 아스코나에서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김충남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수학했으며, 뷔르츠부르크대학 및 마르부르크대학교 방문교수, 체코 카렐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다.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외국문학연구소장, 사범대학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시문학≫(공저), ≪민족문학과 민족국가 1≫(공저), ≪추와 문학≫(공저), ≪프란츠 카프카. 인간· 도시·작품≫, ≪표현주의 문학≫이 있고, 역서로는 게오르크 카이저의 ≪메두사의 뗏목≫, ≪아침부터 자정까지≫, 페터 슈나이더의 ≪짝짓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헤르만 전쟁≫, 에른스트 톨러의 ≪변화≫, 프란츠 베르펠의 ≪거울인간≫, ≪야코보프스키와 대령≫, 프리드리히 헤벨의 ≪니벨룽겐≫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응용미학으로서의 드라마-실러의 ‘빌헬름 텔’ 연구], [신화의 구도 속에 나타난 현재의 정치적 상황-보토 슈트라우스의 드라마 ‘균형’과 ‘이타카’를 중심으로], [최근 독일문학의 한 동향: 페터 슈나이더의 경우], [베스트셀러의 조건-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경우] 외에 독일 표현주의 문학과 카프카에 관한 논문이 다수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로 ‘독일 명작 산책’과 ‘독일 작가론’을 강의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다나카: (중략) 천황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신호가 울려 퍼집니다. 연대들은 명령에 따라 부동자세를 취하지요. 악대가 선율을 가다듬는가 싶더니 우렁찬 음향이 연병장 위로 퍼져 나갑니다. 그러나 갑자기 음악 소리가 멎습니다. 천황이 손을 들어 올린 거지요. 천황은 손을 들어 올려 음악을 멈추게 할 정도로 대단한 분입니다. 연병장에는 얼어붙은 것처럼 무거운 정적이 감돌지요. 모든 생명체가 영원히 꺼져 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오직 천황의 음성만이 그 정적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중략) 다나카, 천황이 말씀하십니다, 이 연대들을 위해 지불하는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제 알겠느냐? 그리고 이 나라 방방곡곡에 있는 또 다른 연대들을 위해 지불하는 돈이? 이제 너는 알겠지. 그건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아니다. 이자를 갚기 위해 누이들이 몸을 팔아야 할 정도로 극심한 궁핍을 겪고 있는 너희에게서 나온 돈이다. 그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난 이 말안장에서 뛰어내려 네 앞에 무릎을 꿇고 네가 서 있는 그곳 흙에 입을 맞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네 용서가 아직 남아 있다. 지금껏 너에 앞서 누구도 나를 고발한 적이 없었다. 넌 일찍이 없었던, 다른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는 인간이다. 난 그저 일개 천황일 뿐. 난 이 나라에 더 이상 군대가 주둔하지 못하도록 명령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군대 덕분에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러나 난 너와 그런 누이를 둔 모든 오빠들이 더 이상 치욕을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중략) 이제 만족했느냐. 내가 충분히 사죄했는가? 다나카, 너에게 용서를 빈다. 네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난 더 이상 천황일 수 없다. (아주 강한 어조로) 천황이 열병식장에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빈다면, 전 천황의 죄를 용서하겠습니다.
재판장: (다나카에게) 자넨 사형을 선고받아 마땅하다. 곧 판결이 집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