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러시아의 소설가 도블라토프의 ≪보존지구(Заповедник)≫를 완역한 책이다. 현대 러시아 소설은 우리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도블라토프는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주로 자전적인 일화를 바탕으로 단편 소설들을 많이 썼는데, 재치와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돋보이며, 문체에 있어 “푸시킨의 계승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책의 역자인 김현정은 도블라토프를 전공한 젊은 학자로, 도블라토프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갖고 있으며 특히 그의 문체를 우리말로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이미 ‘지만지’시리즈에서 도블라토프의 ≪우리들의(Наши)≫를 번역한 바 있다.
소설은 주인공인 보리스 알리하노프의 시선에서 전개되는데, 전반부에는 특별한 갈등 없이 ‘푸시킨 보존지구’에 도착해서 가이드 일을 하는 이야기가 주로 서술되고 있다. 주인공은 일종의 도피, 혹은 유배로서 가족을 떠나 가이드 일을 하게 되는데, 새로운 직업과 보존지구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후반부에서는 아내가 등장하며, 선택의 기로에서 본격적인 갈등을 하게 된다. 주인공은 전망 없는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는 아내를 남겨두고 떠났던 것이다. 작가의 표현 수단, 그러니까 모국어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간다면 작가의 삶을 포기해야 할 것이고, 작가로 살고자 한다면 아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내의 출국이 임박해지고 그는 내적 갈등을 겪으며 술로 시간을 보낸다. 술집,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 대화에서 소비에트러시아의 면면을 엿보는 일도 재미있다.
도블라토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따뜻한 유머와 인간애는 솔제니친처럼 반정부인사들이 연상되는 소비에트 문인들로부터 그를 차별화 시킨다. 조지프 브로드스키는 도블라토프를 두고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 유일한 러시아 작가다. 결정적인 원인은 그의 어조인데, 민주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인물이 희생자의 역할을 자신에게 부여하려고 하거나, 자신을 차별화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존지구≫에도 체카, 즉 소비에트 공안당국의 모습도 나타나는데, 그들은 억압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목소리를 낸다.
200자평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의 작가 도블라토프가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전망 없는 작가의 삶을 살던 주인공은 그러한 삶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아내가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떠나겠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런 상황으로부터 도망쳐 ‘푸시킨 보존지구’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다시금 다짐한다. 또한 그 힘이 아내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 도블라토프가 자신과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 격인 소설이다.
지은이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는 러시아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는 보기 드문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소비에트 체호프’라고도 불리는 단편 작가 도블라토프는 특유의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로 푸시킨의 언어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소비에트 사회에서 한 편의 출판물도 없었던 ‘작가 아닌 작가’ 도블라토프는 미국으로 이민한 후, 1980년대 초반에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중 단편 열 편은 권위 있는 ≪뉴요커≫지에도 실렸다. 러시아 작가로 이 잡지에 이름을 올린 경우는 ≪롤리타≫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에 이어 두 번째다. 작가라는 신분으로 고국에 가고 싶어 했던 도블라토프의 생전의 바람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산되었지만, 1993년 그의 첫 번째 전집이 조국인 러시아에서 발간된 이후 현재까지 매년 재발행이 이루어지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판매 부수를 자랑하고 있다.
옮긴이
김현정은 경남 마산에서 출생했다. 1996년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 입학했고, 2003년 러시아 정부 장학생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 노어노문 및 교육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으며, 2005년 도블라토프의 작품 세계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대한민국 관정 이종환 재단 국외 장학생으로 동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2009년 도블라토프의 작품과 가족소설 전통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보존지구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 뭐가 당신을 붙드는데? 예르미타시, 네바 강, 자작나무?”
“자작나무 같은 건 전혀 상관없어.”
“그럼 뭔데?”
“언어. 남의 언어로는 개성을 80퍼센트는 잃어버려. 농담하고 말을 꼬고
하는 능력을 상실한다고. 난 이게 너무나 끔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