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네르발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불의 딸들≫ 전체를 번역·소개했다. 이 작품에는 <알렉상드르 뒤마에게>, <앙젤리크>, <실비, 발루아의 추억>과 그 부록으로 붙어 있는 <발루아 지방의 민요와 전설>, <제미>, <옥타비>, <이시스>, <코리야>, <에밀리>, <몽상의 시> 등 10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불의 딸들≫에는 ‘중편소설’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집에는 <앙젤리크>와 같은 서간체 탐방기가 있는가 하면, <코리야>와 같은 대화체의 드라마와 12편의 소네로 이루어진 <몽상의 시>도 포함되어 있다. <이시스>는 독일 고고학자의 연구서를 네르발 자신의 취향대로 개작하여 이시스 여신의 제례와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어 재편한 작품이다. <제미>는 오스트리아 작가 찰스 실즈필드의 중편소설을 번안한 것이다. 그리고 <에밀리>는 1839년 ≪르 메사제≫에 <빗슈 요새, 프랑스 대혁명의 추억>이라는 제명으로 발표한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이름 없는 작가 오귀스트 마케와 합작한 작품으로 네르발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 이외에는 역할이 거의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이시스>와 <제미>, <에밀리>는 순수하게 네르발의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네르발의 정신적 계통을 벗어난 작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옥타비>, <이시스>, <코리야>에서는 이탈리아 여행의 추억과 관련된 화산 폭발, 이교(異敎), 동방의 신비주의와 제니 콜롱에 대한 사랑 같은 주제가 연결되어 있다. 네르발은 <제미>와 <에밀리>라는 두 편의 중편소설을 삽입함으로써 단권으로 부피를 채우고 가장 깊은 그의 신화의 구조, 그의 꿈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이 불꽃은 마지막 <몽상의 시>에서 연금술적 개화에 이르기까지 점증한다. 전체 구조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19세기 위대한 작품 중 하나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실비>와 <몽상의 시>는 최고의 작품이다. <앙젤리크>에서 <실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시스>에서 <옥타비>에 이르기까지 네르발 신화의 점증하는 발전 단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몽상의 시>에서 그 결정적 단계에 다다른다.
<몽상의 시>에 포함된 시편들의 창작 시기는 둘로 나눌 수 있다. 1843∼1845년 사이에 창작된 작품은 동방과 이탈리아 여행 경험을 반영한 신비주의에 입문을, 1852∼1854년에 쓴 작품에서는 추억과 시인 자신의 존재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시편들은 시간의 극복을 위한 노력의 승리이며, 이 시적 승리의 순간은 <아르테미스>에서 말하고 있는 “유일한 순간”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18세기의 유럽의 내면에 흐르던 온갖 기원의 신비주의가 있고, 괴테의 ≪파우스트≫, 실러의 ≪군도≫, 호프만의 ≪악마의 정수≫,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 하이네의 ≪아타 트롤≫ 같은 독일의 낭만주의가 배어 있고, 보들레르와 파르나스 시파와 상징주의의 싹이 있으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축소판이 있다.
200자평
제라르 드 네르발 소설. 제라르 드 네르발은 죽기 4년 전부터 기존 발표작을 모아 몇 권의 책으로 엮고자 서둘렀다. 두 번째 정신병을 겪고 나서 죽음이 가까웠음을 감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나온 여러 단행본 중 하나가 <불의 딸들>이다.
지은이
제라르 드 네르발의 본명 제라르 라브뤼니. 1808년 파리에서 태어나, 로망주의가 격동했던 프랑스에서 독특한 문제의식과 서정성 가득한 문체를 완성했다. 19세의 젊은 나이에 괴테의 <파우스트>를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번역 소개하였고, 그 유려한 번역에 괴테가 깊이 감동했음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은 그는 로망주의의 총아(위고, 고띠에, 보렐)들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군의관인 부친의 희망이었던 의사로서의 길을 포기하여 평생 부친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다양한 독일 문학작품 번역, 문학잡지 창간, 극작품 창작, 신문 기고 등의 다양한 문학 활동을 했다. 33세인 1841년에 첫 정신병 발작을 겪었고, 10년의 잠복기가 지난 뒤 다시 정신적 위기로 입원과 퇴원이 이어진다. 1842년에 행해진 장기간의 동방여행과 기회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떠돌아다녔던 그의 편력은 <동방여행기>와 여러 산문에서 주옥같은 이야기로 나타난다. 1852년 초, 두 번째 정신병 발작 이후, 필생의 작품들을 책으로 엮는 동시에 걸작들을 새롭게 발표하였고, <불의 딸들>에 이르러 그의 문학 절정을 이루었다. 1855년 1월의 새벽에 비에이유-랑테른가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신비주의와 제교 통합주의(諸敎 統合主義 syncretisme)’로 일컬어지는 그의 작품 세계는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인해 한동안 편견과 망각 속에 놓여 있다가 20세기 이후 앙드레 브르똥, 프루스트, 앙토넹 아르토에 의해 새롭게 발굴되었다. 오늘날에는 루소, 스탕달, 프루스트와 함께 프랑스 최고의 산문가 중의 한 작가로 손꼽힌다. 주요 작품으로 <몬테네그로 사람들>, <라마잔의 밤>, <동방 기행>, <실비>, <오렐리아>, <불의 딸>, <보헤미아의 작은 성들>, <콩트와 해학>, <환상 시편> 등이 있다.
옮긴이
이준섭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한 후 파리 소르본(파리4대학)에서 프랑스 낭만주의와 제라르 드 네르발 연구로 문학 석사 및 박사 학위(1980년)를 취득했다. 1981년부터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7년에 정년퇴임한 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2002년에는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프랑스 문학사(I)≫(세손출판사, 1993), ≪제라르 드 네르발의 삶과 죽음의 강박관념≫(고려대출판부, 1994), ≪프랑스 문학사(II)≫(세손출판사, 2002), ≪고대 신화와 프랑스 문학≫(고려대출판부, 2004) ≪프랑스 문학과 신비주의 세계≫(고려대출판부, 2005) 등이 있고, 역서로는 ≪불의 딸들≫(아르테, 2007), ≪실비 / 산책과 추억≫(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오렐리아≫(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18세기 프랑스 신비주의와 G. de Nerval>, <테오필 고티에와 환상문학> 외 다수가 있다.
차례
알렉상드르 뒤마에게
앙젤리크
실비
제미
옥타비
이시스
코리야
에밀리
몽상의 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황금 시(Vers dorés)
그렇다! 만물은 지각한다!
-피타고라스
인간이여, 자유사색가여! 생명이 온갖 형태로 작렬하는
이 세계에서, 그대 혼자만 생각한다고 믿고 있는가?
그대가 소유하고 있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그대의 자유,
그러나 우주는 그대의 모든 결정과 무관하다.
짐승 속에 꿈틀거리는 영령을 존중하라.
‘자연’에 피어 있는 꽃은 각자 하나의 영혼이로다.
금속에도 사랑의 신비가 내재하고,
“만물은 지각한다!” 만물은 또한 그대 존재에 강렬하게 작용한다.
눈 먼 벽 속에 그대를 지켜보는 어떤 시선을 두려워하라.
물질에조차 어떤 언어가 부여되어 있으니…
불경한 어떤 용도에 그것을 사용하지 말라!
미미한 존재 속에도 흔히 어떤 ‘신’이 숨어 살고 있나니.
눈꺼풀에 덮여 있다가 살며시 뜨는 눈처럼,
돌들의 표면 아래 순수한 영령이 자라고 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