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지할 수 없는 0.5초에 담긴 마주침의 비밀
디지털 사회를 새롭게 이해하는 브라이언 마수미의 정동 이론
캐나다의 철학자 브라이언 마수미는 바뤼흐 스피노자, 질 들뢰즈의 철학적 유산인 ‘정동’ 개념을 21세기에 걸맞게 확장하고 발전시켰다. 마수미에 따르면 정동은 사건을 만들고 사건과 존재가 마주치게 하는 일종의 움직임이다. 정동은 특정 기억과 감각을 구체화한 표현인 ‘정서’와 달리 유동적이다. 이 때문에 정동은 예측 불가능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정동은 권력에 저항하는 힘이 될 수도, 미디어를 통한 권력의 통제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동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발현하려면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 정동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인간이 대상을 인지하기 0.5초 전 발생하는 신체의 반응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마수미의 가상 개념은 ‘아날로그 = 실재’, ‘디지털 = 가상’이라는 통상적 이분법을 넘어 디지털 사회를 정동적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한다. 이 책은 ‘가상’, ‘사건’, ‘마주침’, ‘아날로그’ 등 열 가지 키워드를 통해 마수미의 정동 이론을 살펴본다. 인공지능, 가상현실을 비롯한 21세기 기술이 탄생시킨 여러 현상을 정동 이론을 통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 1956∼ )
캐나다의 철학자. 1979년 브라운대학교에서 비교문학 학사 학위를 받고 1987년 예일대학교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Universite de Montreal)에서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생활하다 은퇴했다. 마수미는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작품을 영어권에 소개하면서 정동과 활동주의 철학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주저로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론을 설명한 A User’s Guide to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Deviations from Deleuze and Guattari(1992)와 단독 저서인 Parables for the Virtual(2002), Semblance and Event(2011), Politics of Affect(2015), Ontopower(2015) 등이 있다. 정동을 중심으로 가상, 디지털, 아날로그, 권력, 통제 개념을 설명하고 정동을 사회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해 분석해 왔다. 마수미는 스피노자와 들뢰즈의 영향을 받아 정동과 가상 개념에 대한 새로운 자장을 열고 있다.
200자평
브라이언 마수미는 ‘정동’ 개념을 통해 신체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설명한다. 정동은 일종의 움직임으로서 사건을 생성하고 사건과 존재를 마주치게 한다. 정동은 인간의 인식을 넘어서기 때문에 모호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정동은 권력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권력에 저항하기도 한다. 이 책은 마수미의 정동 이론을 열 가지 키워드로 소개하고 마수미의 이론이 오늘날 디지털 사회를 이해하는 데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아본다.
지은이
김민지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 강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양학부 강사로 재직 중이며, 글쓰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정동의 잉여적 사유들: 브라이언 마수미 논의를 중심으로”(2020), “카타르시스와 정동의 시론적(試論的) 고찰”(2020), 질 들뢰즈와 브라이언 마수미의 정동 개념을 바탕으로 시대와 문학 작품을 분석한 박사 논문 “1920년대 한국 현대시의 정동 시학”(2022)이 있다.
차례
브라이언 마수미의 철학
01 정동
02 선택과 시간
03 상상과 가상
04 사건
05 마주침
06 통제와 바코드
07 공포와 위협
08 아날로그와 잉여
09 웃음
10 정동의 역설
책속으로
선수들에게 골문이 충동을 일으키는 촉매제라면, 공은 선수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촉발제다. 놀라운 사실은 공이 곧 욕망의 대상이자 경기의 주인공이 되면서 선수 개개인을 압도하는 하나의 주체로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체로서 공은 선수들이 뛰고 몸싸움을 하게 만들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공이 움직이는 곳에 선수가 있고 선수가 움직이는 곳에 공이 있기에 공의 움직임은 어느새 하나의 사건이 된다.
-“브라이언 마수미의 철학” 중에서
0.5초는 지각 가능한 최소 시간이다. 이 시간의 자극은 몸과 의식 사이에서 공명한다. 자극은 내부로 들어갈 수 없으며, 들어가기 전 이미 신체가 파동을 흡수한다. 주목할 것은 0.5초 동안 벌어진 사건이다. 0.5초 동안 우리는 다양한 가능성에 노출된다. 따라서 0.5초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가득 차 있는 시간으로, 이 시간 덕분에 행위가 무한한 가능성을 얻고 무의식 또한 당위성을 얻는다.
-“02 선택과 시간” 중에서
가상은 공간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가상이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오해하지만 가상은 공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간 없이 공간을 구성하는 구성체라는 역설적 성질만을 띤다. 대표적으로 도넛의 예를 들 수 있다. 도넛의 구멍은 비어 있지만 구멍이 없으면 도넛이 아니게 된다. 구멍의 유무가 도넛을 확정한다. 구멍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지만, 도넛에서 구멍은 그 자체로 공간적 성질을 지닌다는 점에서 가상적이다.
-“03 상상과 가상” 중에서
삶과 사회가 코드화될수록 개인은 사회에서 통제된다. 주체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일이 줄어든다면 삶의 예외나 이변을 목격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마수미는 인공지능과 같은 혁신적 변화에도 아날로그적 경험과 사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날로그는 단순한 모방과 재현이 아닌 변화와 이행의 과정을 거쳐 ‘차이’를 만든다. 마수미는 인간이 꾸준히 생각하면서 반복하는 흔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자기ᐨ변화를 구축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08 아날로그와 잉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