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송길한은 한국 현대 영화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나리오 작가다.
엄혹하고 열악했던 1980년대 이후 작업한 <짝코>, <만다라>, <비구니>, <길소뜸>, <티켓> 등의 작품은 분단의 역사, 인간의 구원, 사회적 타락 등의 소재를 폭넓게 관통하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깊이를 이뤄 냈다. 그 밖에도 <우상의 눈물>, <안개마을>, <씨받이>, <나비 품에서 울었다> 등 당시 한국 영화의 의무제작 시스템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통해서도 인간과 사회를 미시·거시적으로 동시에 포착하는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 줬다.
이 작품들은 당대의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생명력을 보장받을 수 있는 예술로서의 격을 갖추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만들어지기 힘든 대담한 창의력의 산물들이다. 임권택 연출, 송길한 각본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지금도 한국 영화사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이 바로 2017년, 국내 처음으로 전주국제영화제가 송길한 특별전 ‘작가 송길한, 영화의 영혼을 쓰다’를 마련한 이유다. 특히 특별전에 상영된 대표작 12편 중에 1984년에 제작에 들어갔으나 내용이 외설적이라는 불교계의 반발로 촬영이 중단됐던 <비구니>를 전주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굴·복원해 상영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비구니>는 전작 <만다라>와는 달리 대승적 차원에서 비구니가 된 한 여인의 해탈을 향한 치열한 몸부림과 영혼의 투쟁사를 그린 작품으로 1984년 태흥영화사의 창립작이다.
제작자 이태원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규모로 <비구니>를 제작하기로 하고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 송길한 각본, 김지미 주연 등 호화 라인업을 구성했다. 모두 170여 장면으로 짜인 송길한의 각본 가운데 1/5 분량의 장면을 촬영했을 무렵 불교계의 거듭되는 반발로 제작이 중단되고 말았다.
2014년 태흥영화사의 창고에서 발견된 <비구니>의 러쉬 필름(편집용 필름)은 한국 영화사에 등재될 또 한 편의 걸작이 나왔으리라는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하나의 화면으로 두세 개의 화면이 표현하는 것을 응축함으로써 이 미완성 필름은 사운드 없이 대해도 미적 긴장을 압도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간간이 배치되는 김지미의 클로즈업은 왜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영화에서 독인지, 클로즈업이 제대로 구사될 때의 압도적 감흥은 무엇인지, 무엇보다도 클로즈업의 기운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배우의 자질은 무엇인지 웅변한다.
미완성본 <비구니>는 어떤 걸작의 출현이 좌절된 기록으로서뿐만 아니라 33년이 지난 현재의 한국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응축과 절제의 미적 태도를 시사해 준다는 점에서 귀중한 지표로 남을 것이다.
특히 한국 현대사와 삶의 절실성이 새겨진 송길한의 시나리오는 영화 <비구니>의 살아남은 유일한 실체로 미완성본의 빈 행간을 밀도 있게 채워 이 영화의 박해자들이 영원히 땅에 파묻지 못한 그 무엇인가를 가감 없이 보여 줄 것이다.
_김영진(영화평론가, 전주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200자평
<비구니>는 대승적 차원에서 비구니가 된 한 여인의 해탈을 향한 치열한 몸부림과 영혼의 투쟁사를 그린 작품으로 1984년 태흥영화사의 창립작이다. 모두 170여 장면으로 짜인 송길한의 각본 가운데 1/5 분량의 장면을 촬영했을 무렵 불교계의 거듭되는 반발로 제작이 중단되고 말았다. 미완성본 <비구니>는 응축과 절제의 미적 태도를 시사해 준다는 점에서 귀중한 지표로 남을 것이다.
지은이
송길한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 <흑조(黑潮)>가 당선된 후 전업 작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