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음악과 낭만의 도시 빈의 또 다른 모습
‘빈 숲 속의 이야기’라는 제목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곡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페레타와 왈츠의 본고장인 음악의 도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변이 펼쳐지는 낭만적인 고도 빈을 배경으로 내세운 호르바트의 <빈 숲속의 이야기>는 어떨까.
호르바트가 그려낸 빈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에 이어 경제공황의 위기를 맞은 1930년대의 빈이다. 전통적인 가치가 급속히 무너지고 생산과 노동은 종래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계속된 정권 교체와 나치의 득세로 정치 상황까지 불안했다. 빈의 소시민들은 시대 격변 가운데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음악과 낭만의 도시 빈의 이면은 이렇듯 불안과 혼란으로 가득했다.
사랑을 택한 마리아네, 그녀의 운명은?
마술왕은 인형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하나뿐인 딸 마리아네를 정육점 주인 오스카와 결혼시키고 그 덕을 볼 생각이다. 그러나 마리아네는 오스카와의 약혼식 날 알프레트와 사랑에 빠져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약혼자를 떠난다. 마리아네는 알프레트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알프레트는 사랑을 미끼로 여성에게서 돈을 뜯어내고 그 돈으로 경마를 즐기는 건달이었다. 마리아네가 약혼을 깬 일로 아버지와 의절하자 알프레트는 더 이상 마리아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극도의 빈곤 속에서 두 사람이 아이까지 건사하는 것은 무리였다. 알프레트는 아이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마리아네를 통해 돈 벌 궁리를 한다. 그로부터 마리아네의 불행은 계속된다. 그녀의 비극적인 말로는 행복한 결말로 나아가는 통상적인 민중극 형식에서 크게 벗어난다. 이런 마리아네의 불행은 1930년대 빈이 처한 사회 경제 상황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오늘날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이용해야만” 한다는 알프레트의 현실 인식은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현대의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빈의 이야기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생해 살아가는 알프레트, 자립에 실패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와 폭력적인 약혼자에게 다시 의탁해야 할 처지에 놓이는 마리아네, 이들의 불행을 부추기거나 안타까워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은 현대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호르바트는 1930년대 빈의 사회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에 보편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알프레트와 마리아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또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읽히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이 현대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다.
200자평
브레히트와 동시대에 활약한 호르바트가 독일어권 연극에서 중요한 작가로 부상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의 사회 비판적 민중극 작품들은 20세기 후반에야 재조명되었다. 그리고 이른바 ‘호르바트 르네상스’를 맞았다. 이제 호르바트는 현대의 고전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빈 숲속의 이야기>는 그의 대표작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약혼자를 떠나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연인과 가정을 꾸리지만 그로부터 버려진 뒤 비극적 말로에 이르는 마리아네를 통해 세계대전 패전 이후 오스트리아 빈의 사회상을 보여 준다.
지은이
외된 폰 호르바트(Ödön von Horváth, 1901∼1938)
독일어로 작품을 쓴 헝가리계 작가다. 전후 독일에서 호르바트는 완전히 잊혀진 작가가 되었다. 그러다가 1960∼1970년대에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1946∼1982),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1946∼), 마르틴 슈페어(1944∼) 등 일련의 극작가들이 사회 비판적인 새로운 민중극을 발표해 독일 연극계를 휩쓸었다. 20세기 후반 민중극의 화려한 부활과 함께 1930년대의 비판적 민중극 작가들인 호르바트와 플라이서가 재발견되어 소위 ‘호르바트 르네상스’를 이루었다. 1960년대의 민중극 작가들은 호르바트나 플라이서를 중요한 모범으로 삼았다.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재발견된 호르바트의 극작품들은 활발히 공연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작품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때맞춰서 전집도 출간되었다. 이로써 호르바트는 비로소 비판적 민중극의 작가로서 20세기 독일 문학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기의 전성기를 거친 후 호르바트는 이제 독일어권 무대에서 현대의 고전 작가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옮긴이
이원양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독일 괴테인스티투트디플롬을 받았고 쾰른 및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연구했으며 뮌헨 대학교 연극학연구소에서 연극학을 연구했다. 한국브레히트학회 회장, 한국독일어교육학회 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그리고 한양대학교 문과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독일연방공화국 정부로부터 1등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는 ≪브레히트 연구≫(1984), ≪독일어 기초과정≫(1995), ≪우리 시대의 독일연극≫(1997), ≪독일 연극사≫(2002), ≪만나본 사람들, 나눈 이야기≫(2006), ≪이원양 연극에세이≫(2010)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한국의 봉함인≫(2005), ≪베르톨트 브레히트≫(2007) 등이 있다. 번역 희곡으로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2006), <서푼짜리 오페라>(2006),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2008), 크뢰츠의 <거세된 남자>(1987), <수족관>(1988), 슈트라우스의 <재회의 3부작>(1997), 브라운의 <베를린 개똥이>(2007), 실러의 <간계와 사랑>(2008), <빌헬름 텔>(2009), <발렌슈타인>(2012), <메리 스튜어트>(2015), 폰 호르바트의 <빈 숲 속의 이야기>(2009), 클라이스트의 <펜테질레아>(2011), 폰 마이엔부르크의 <못생긴 남자>(공역, 2011), 롤란트 시멜페니히의 <황금 용/과거의 여인>(2012) 등이 있다.
2010년 7월 밀양연극촌에서 <햄릿> 공연 사진전 <햄릿과 마주보다>, 2013년 3월 12일부터 24일까지 주오사카 독일문화원 및 오사카 시 에노코지마 문화센터에서 공연 사진전 <한국 무대에 오른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가졌다.
차례
나오는사람들
제1부
제2부
제3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알프레트 : 나는 공무원 체질이 아냐. 발전 가능성이 없거든. 낡은 의미의 근로란 이젠 소용이 없어졌어요. 오늘날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이용해야만 되거든. 나 독립했어요. 자금 조달 사업 같은 거죠…
-10쪽
마리아네 : 사랑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를 어찌하실 겁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8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제 말 들리시나요? 저를 어찌하실 겁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138쪽
마리아네 : 이제 한마디만 하겠어요. 결국은 모든 게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요… 그리고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아직 이 일에 책임이 없는 꼬마 레오폴트를 위해서예요…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