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노부와 마시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 2세로 20대에 만나 결혼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별거 중이다. 두 딸이 장성해서 독립하고, 1년 전 어느 날 마시마저 노부를 떠나면서 낡고 오래된 집에는 노부만 남게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노부의 가부장적인 태도가 마시와 딸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는 일본식을 고집하면서 딸과 아내에게도 자신의 방식을 강요했다. 둘째 딸이 흑인과 결혼했을 때는 딸도, 사위도, 손주도 보지 않겠다며 절연을 선언했다. 한결같은 무시와 냉대에 질린 마시가 떠나 버리자 노부는 오래된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질 않는다. 언젠가 아내도, 딸도 용서를 빌며 돌아오리라, 빈집에 홀로 남은 뒤에도 노부는 그렇게 생각했다.
별거 1년째, 노부에게는 기요코라는 여자 친구가, 마시에게는 사다오라는 연인이 생겼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부부다. 마시는 매주 노부에게 들러 밀린 빨래를 해 주고, 노부 역시 빨래만큼은 기요코에게 맡기지 않는다. 그런데 마시가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다오 곁에서 진정한 행복에 눈뜬 것이다. 마시는 이제야 노부를 떠날 용기가 생겼다며 이혼을 결심한다.
필립 고탄다는 데이빗 헨리 황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 주고 있는 아시아계 작가다. 주로 일본계 이민자들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한 이주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재현한 가족극 <빨래>에서 필립 고탄다의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200자평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미국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타운을 형성해 살아가는 이주자들의 이야기다. 60대 부부가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면서 이주자들이 겪는 인종차별, 문화 충돌로 인한 갈등과 의사소통의 한계 문제 또한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필립 고탄다는 아시아계 미국 작가로는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지은이
필립 칸 고탄다(Philip Kan Gotanda)는 극작가일 뿐만 아니라 필름 작업을 겸하고 있는 독립영화 감독이기도 하다. 1951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탁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하와이에서 태어난 일본 이민 2세이고 어머니 역시 미국에서 출생한 이민 2세다. 고탄다는 이민 3세대(산세이)로 그곳에서 성장한다. 헤이스팅스대학 법대에 진학하지만 공부 대신 일본 민담을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에 몰두해 <아보카도 키드(Avocado Kid)>라는 작품을 완성한다. 이 작품을 마코의 이스트웨스트플레이어스 극단에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연극에 입문한다. 이스트웨스트플레이어스는 1970년대에 등장한 아시아인들의 극단으로 데이빗 헨리 황도 이 극단 출신이다. 고탄다는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 연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겐하임재단, 퓨재단, 록펠러재단, 미연방예술기금 등이 수여하는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현재 버클리대학 연극춤공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이
이지훈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캠퍼스에서 연극학 석사, 동아대학교에서 <King Lear와 Lear의 비교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희곡집 ≪기우제≫(평민사, 2006), ≪셰익스피어와 사랑에 빠지다≫(북스힐, 2001, 편저), 역서로는 ≪카릴 처칠 희곡집: 비네가 탐/클라우드 나인≫(평민사, 1997), ≪꾀뜨미네의 사흘≫(일월서각, 1985), ≪벨 자≫(고려원, 1983), 논문에는 <King Lear의 모성 부재>, <‘베니스의 상인’의 시간과 공간>, <죽음과 성의 위장: 마크 트웨인의 발굴 희곡 ‘Is He Dead?’> 등이 있다. 미국 UCLA대학, 브라운대학, 일본 동지사대학에서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창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우제>로 1994년 여성신문사에서 수여하는 희곡 부문 여성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영미 여성주의 극의 번역과 무대화에 주력해 왔다. 카릴 처칠의 <비네가 탐>, 팸 젬스의 <두자, 피시, 스타스 그리고 비>, 마리아 아이린 포네스의 <진흙>, 자작극 <그 많던 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나?>, 웬디 케슬먼의 <빠뺑 자매는 왜?>를 연출했고 그 외 부조리극으로 해럴드 핀터의 <방>, 베케트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아라발의 <장엄한 예식>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온라인 웹진 ≪이프≫에 “오토바이를 탄 여교수”라는 필명으로 연극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으며, 극단 TNT레퍼토리(1982년 창단) 대표로 있다. 2012년 극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폴라 보글의 <운전 배우기>를 국내 초연으로 연출한 바 있으며, 2015년 한국여성연극인협회에서 수여하는 올빛상(극작)을 수상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무대장치
제1막
제2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작품 목록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마시: 네 아빠하고… 난, 우린 잠자리를… 안 했단다. 매번 네 아빠가 날 밀어냈어. 10년, 15년, 날 원하지 않았다. (사이) 늘상 하는 언쟁에 그 문제도 있었어. 언제나. 그런데 아빤 늘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내 잘못이라고 이야기했어. 난 또 변명을 늘어놓았고. 그러면 그는 내게 몸을 돌리고, “입 닥쳐, 네가 뭘 알아. 바보 멍청이”라고 소리 지르지. 바보 멍청이. 이게 42년간 한결같이 그 사람이 옳다고 해 준 대가로 내가 들은 말이야. 그래, 난 알았어. 이제 네 아빤 자기가 옳다고 해 줄 나조차 필요 없어진 거야. 그 사람, 나를 바보 멍청이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필요했던 게지. 난 피곤해. 지쳤어.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어. 네 아빠가 이겼다. 마침내 나를 쓰레기로 느끼게 만들고 말았어. 그날 밤, 난 집을 나왔고 여기 이곳으로 왔단다. 주디 집으로.
1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