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오만한 사제 바실리 피베이스키 이야기는 안드레예프가 고리키와 함께 확고한 믿음을 추구하는 구도자들에 대해 얘기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하게 되었다. 고리키의 회상에 따르면, 안드레예프는 고리키에게 다음 날 당장 집필을 시작해서 사제에 대한 이야기를 멋지게 쓸 것이며, 위대한 비밀과 접촉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외톨이였던 사제에 대한 첫 구절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다음 날 안드레예프는 모스크바로 떠났고, 일주일 뒤쯤 고리키에게 자신은 사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작업이 아주 잘되고 있다고 알렸다. 그 과정에서 안드레예프는 고리키와의 언쟁으로 인해 작업이 잠시 중단되었다가 서로 화해하고 다시 집필을 시작했다. 고리키는 《사제 바실리 피베이스키의 삶》이 안드레예프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하고 심오하며 진지한 작품이라고 했다. 고리키는 눈물을 흘릴 만큼 이 작품을 극찬했다. 1904년 4월 16일 이 작품이 출판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신에 저항해 봉기하는 시골 사제의 형상에 특히 관심을 집중했다. 교회 언론 매체는 안드레예프를 공격하며 사제 바실리의 형상이 비전형적임을 증명하려 애썼다. 벨럅스키는 논문 〈믿음인가 불신인가?〉에서 작품의 주인공이 기독교적 신앙의 인내심과 융합할 수 없는 독불장군 같은 지성의 소유자임을 비난했다. 정교회 전도사 보골류보프는 안드레예프의 데카당스를 비난하고, 사제 바실리를 정신병자라고 비난했다. 성직자 콜로소프는 모스크바의 러시아정교 감독관구에서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사제 바실리 피베이스키의 삶’에 나타난 거짓 신앙의 붕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스타로둠도 교회 측 언론에 동조하며 《사제 바실리 피베이스키의 삶》이 성직자와 성직, 그의 가정생활, 그의 슬픔과 의심, 그의 뜨거운 믿음과 일반적 신앙에 대한 심한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적, 민주적 비평에서는 다르게 평가했다. 게케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그나토프는 작가가 보편적 인간의 고통을 묘사했다고 언급하며, 작품의 탁월한 언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르고롯스키는 안드레예프를 에드거 앨런 포와 보들레르에 비교하며, 《사제 바실리 피베이스키의 삶》은 아주 가혹하게 쓰여졌지만, 심리적 섬세함과 예술적 필치가 넘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코롤렌코는 “이 작품에는 이미 그의 작품 《사고》에서 나타난 기법이 최고의 긴장감과 힘을 얻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테마가 된 모티브는 이전 모티브보다 보편적이고 심오하다. 이것은 크게는 무한함, 사소하게는 무한한 정의와 자신의 연관성을 추구하는 인간 영혼의 영원한 문제다. 그 테마는 일반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사고가 관심을 돌리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상징주의자들도 관심을 돌리며, 같은 작품집에 실린 작품 중에서 이 작품 외에는 흥미로운 것이 없고, 이 작품은 어느 정도 상징으로까지 고양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뱌체슬라프 이바노프는 안드레예프의 재능은 사람들의 성격 폭로나 경험적 성격이 아니라 이성으로 이해되는 성격 폭로에 있다고 지적했다. 브류소프 역시 이 작품을 같은 작품집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안드레예프에게는 신비주의적 감정이 없고, 사물의 표피 너머를 투시하는 능력이 없으며, 물질적 세계관이 안드레예프의 재능을 억압하고 있고, 그의 작품에서 진실성을 빼앗고 있음을 단점으로 지적했다. 블로크는 《사제 바실리 피베이스키의 삶》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고, 파국이 가까이 있으며, 문 옆에 공포가 있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는데 이 작품이 그런 그의 마음에 즉각적으로 응답해 줬음을 지적했다.
평생 동안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음울한 인생과 고통 속에서 믿음을 추구하는 음침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묘사하는 이 작품은 시종일관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길고 복잡한 문장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 간의 대화가 거의 없고, 표정과 목소리, 외면 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이 작품은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에 있어 신과 종교가 무엇인지, 한 사제의 삶을 통해 보편적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200자평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 종교계와 비종교계는 상반된 반응을 내놓았다. 고리키는 안드레예프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하고 심오하며 진지한 작품이라며 눈물을 흘리며 극찬했다. 수수께끼 같은 가혹한 운명으로 얼룩진 사제 바실리 피베이스키의 삶을 통해 저자는 신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의심과 믿음을 보여 준다. 신을 믿는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독자들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지은이
레오니트 안드레예프는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가난한 빈민촌에서 보냈는데 이때의 인상을 자신의 작품들에서 묘사하고 있다. 1891년, 페테르부르크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한 안드레예프는 생활고로 인한 호구지책으로 문학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892년 그는 잡지 <별>에 굶고 있는 학생을 묘사한 최초의 단편소설 <가난과 부>를 발표했다. 1893년, 학비를 못내 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 제적된 후 그는 모스크바대학교 법학부에 편입했다. 1894년, 또다시 사랑에 실패한 안드레예프는 자살을 시도해 그 결과 만성 심장병을 얻게 되었다.
1897년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모스크바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그는 잠시 변호사로 일하다가 <모스크바 통보>의 법정 통신원으로 근무했다. 같은 해 말 그는 신문 <파발꾼>에 법정 관련 기사를 쓰고, 체계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단편들에서 안드레예프는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가난에 시달리며 기쁨을 잃어버린 아이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 하층 관리들, 기술자, 부랑자, 거지, 도둑, 창녀, 아이, 어른 등 부르주아 도시의 무산자들과 이들에게 가중된 삶의 무게, 괴로운 노동, 계속되는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와 더불어 안드레예프는 인간의 개성을 억압하고 인간의 정신적 독자성을 획일화하는 사회체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 고립된 인간과 단절된 인간관계를 그리고 있기도 하다.
안드레예프는 혁명과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독자적인 문학, 비정치적 예술을 추구했다. 1919년 9월 12일 뇌출혈로 핀란드의 시골 마을 네이볼에서 사망했다. 스탈린 시대에 안드레예프는 판금 작가로 분류되며, 1930년 이후 그의 작품은 소련에서 출판되지 않았다. 스탈린 사후 1956년 복권되어 재평가되며, 그의 유해는 레닌그라드(현재 페테르부르크)로 이장되었다.
옮긴이
이수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하고 제1호 러시아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막심 고리키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이후 건국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동화·한국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관심 분야는 러시아 문학, 아동 판타지와 영화, 그림책 등이다. 막심 고리키, 아동 문학, 그림책 등에 관한 논문이 있으며, 저서로 《판타지여행 : 존 버닝햄의 그림책 읽기》, 《20세기 현대 러시아 문학사》, 《판타지 문학의 비밀》, 《러시아 문학 감상》, 역서로 《시의적절치 않은 생각들 : 혁명과 문화. 1917년 소고》, 《시의적절치 않은 생각들 : 혁명과 문화에 대한 소고》, 《카시탄카》, 《어둠》, 《마부》, 《곱사등이 망아지》, 《가룟 유다》, 《붉은 웃음》, 《인간의 삶》, 《사제 바실리 피베이스키의 삶》, 《러시아 현대 소설 선집 1》 등이 있다.
차례
사제 바실리 피베이스키의 삶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그렇다면 대체 왜 내가 당신을 믿은 겁니까? 왜 당신은 나에게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을 주었소,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였소? 왜 당신은 나를 당신의 포로로, 노예로, 속박하면서 평생 동안 붙잡고 있었소? 자유로운 사고도 없소! 감정도 없소! 한탄도 없소! 모든 것은 당신에 의해,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었소. 오로지 당신만을! 그러니 나타나시오, 내가 기다리고 있소!
2.
사제 바실리가 추도식에 갔을 때였다. 분명치 않은 괴로운 생각에 빠져 창백하지만 명랑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그에게 사람들은 넓게 길을 내주었다. 그리고 무겁고 커다란 발자국 흔적이 보이지 않게 불타고 있는, 그가 지나간 자리에 서는 것을 오랫동안 망설였다. 사람들은 화재를 회상하고 오랫동안 얘기했다. 불에 탄 사제 아내와 발 없는 바보인 그녀의 아들을 회상했다.
3.
“그렇다면 대체 왜 내가 당신을 믿은 겁니까? 왜 당신은 나에게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을 주었소,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였소? 왜 당신은 나를 당신의 포로로, 노예로, 속박하면서 평생 동안 붙잡고 있었소? 자유로운 사고도 없소! 감정도 없소! 한탄도 없소! 모든 것은 당신에 의해,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었소. 오로지 당신만을! 그러니 나타나시오, 내가 기다리고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