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서산대사전》은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이자 승군장(僧軍將)으로서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서산 대사 휴정(休靜)을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 전기 소설이다. 서산 대사뿐만 아니라 당대를 살았던 여러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항복(李恒福, 1556~1618), 유성룡(柳成龍, 1542, 1607), 이덕형(李德馨, 1561~1613), 김응서(金應瑞, 1564~1624), 논개(論介, 1574~1593) 등을 비롯해,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600),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1568~1623),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1562~1611) 등의 일본 장수들, 이여송(李如松, 1549~1598), 심유경(沈惟敬, 1537~1597), 유정(劉綎, 1558~1619)과 같은 명나라 장수들이 그들이다.
무엇보다 《서산대사전》은 역사적 기록과 관련 문헌을 참고해 사실 부분을 채우면서 서사성을 확보해 나가는 작품이다. 전체적인 서사구조와 사건의 배열,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에 대한 서술도 실제 역사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그렇다고 《서산대사전》이 단순히 시간 순서에 따라 역사적 사실만을 기술한 작품은 아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주소재로 삼고 있으나 설화, 야담 등에 나타나는 모티브를 곳곳에 삽입해 놓음으로써 사실과 허구의 영역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사실 같은 허구를 통해 객관적 리얼리티를 확보해 내는 한편,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서사 장치로써 주관적 리얼리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서산대사전》이 현대의 역사소설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치밀한 고증과, 사실적인 서술이 특징인 현대의 역사소설과 달리 《서산대사전》은 역사적 실증과 사실적 묘사에 구애되지 않고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 창작해 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인물과 배경을 ‘역사적’인 것에서 찾지만, 그 사건 전개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지극히 흥미 위주라는 점은 《서산대사전》의 한계로 지적된다. 당대의 시대적 문제나 사회 현실의 모습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고소설적 취향이 “현실에서 도피하여 몽환에 도취하게 하며 미신을 길러 주며 노예근성을 붇돋아 주며 지배자에 대한 봉사의 정신과 숙명론적 사상과 봉건적 퇴영적 취미를 배양”한다는 김기진(1903~1985)의 비판과 맞닿아 있다. 김기진의 관점은 형태를 달리하며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식민지 시기 수많은 대중 독자를 매료했던 신작고소설은 근대 소설의 미달태로 평가 절하 되거나, 없었던 일처럼 우리 문학사의 논의에서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신작구소설은 엄연히 우리 소설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한 양식이다. 신작고소설은 고소설에서 무엇을 계승했는가. 그것이 근대 문학에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서산대사전》은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줄 것이다.
* 실존 인물 서산 대사 휴정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그의 불교 사상을 저술한 《선가귀감》(휴정 지음, 배규범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과 그의 선시들을 모은 《청허당집》(휴정 지음, 배규범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을 함께 읽어 보시면 좋습니다.
200자평
1920년대 신작고소설 창작의 원동력은 역사 소재였다. ‘조선의 역사’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면서 기존 고소설의 형식을 빌린 역사전기물이 대거 창작된 것이다.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이자 승군장(僧軍將)으로 유명한 서산 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을 주인공으로 하는 《서산대사전》은 다양한 역사 문헌과 민간에 전해 오던 설화를 교묘히 엮어 만든 한 편의 서사다. 일제의 출판 검열이 본격화하던 1920년대, ‘임진왜란’ 소재를 다루는 일련의 역사전기소설은 어떻게 인기를 누릴 수 있었는가? 《서산대사전》은 역설적인 1920년대의 독서 시장을 살필 수 있는 텍스트 가운데 하나다.
옮긴이
이민희(李民熙)는 강화도에서 태어나 자랐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고전문학 비교 연구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바르샤바 대에서 수년간 폴란드 학생들을 가르쳤고, 현재는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전소설 연구를 중심으로 하면서 근대문학, 문학사, 구비문학, 비교문학, 민속학, 서지학, 문화예술학, 문학교육학을 또 다른 거점으로 삼아 분과 학문적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공부를 계속해 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 《파란·폴란드·뽈스까!-100여 년 전 한국과 폴란드의 만남, 그 의미의 지평을 찾아서》(소명출판, 2005,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16∼19세기 서적중개상과 소설ㆍ서적 유통관계 연구》(역락, 2007,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조선의 베스트셀러-조선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프로네시스, 2007),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글항아리, 2008), 《마지막 서적중개상 송신용 연구》(보고사, 2009,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역사영웅서사문학의 세계》(서울대 출판부, 2009), 《백두용과 한남서림 연구》(역락, 2013,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얼굴나라》(계수나무, 2013,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 《쾌족, 뒷담화의 탄생-살아있는 고소설》(푸른지식, 2014, 세종도서 교양나눔 우수도서), 《세책, 도서 대여의 역사》(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박지원 읽기》(세창미디어, 2018), 《비엔나는 천재다》(글누림, 2019), 《강원도와 금강산, 근대로의 초대-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 여행기를 읽다》(강원학연구센터, 2021), 《근대의 금강산과 강원도, 그 기록의 지평》(소명출판, 2022) 등이 있다.
역서로는 《여용국전/어득강전/조충의전》(지식을만드는지식, 2010), 《낙천등운》(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임치균·이민희·이지영 공역), 《춘풍천리》(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옹고집전》(휴머니스트, 2016), 《방한림전》(휴머니스트, 2016) 등이 있다.
차례
서산대사전
원문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각설, 명나라 신종(神宗) 황제 시절이자 조선 선조대왕(宣祖大王) 즉위 8년, 지금으로부터 335년 전인 임진년(壬辰年)에 일본의 관백(關伯), 지금으로 말하면 내각 총리대신인 풍신수길(豐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일본 본주(本州, 혼슈)로부터 구주(九州, 규슈)와 사국(四國, 시코쿠)을 연합한 후 서쪽으로 중원(中原, 중국)을 통일코자 하여 조선 정부에 사신을 보내 중국에 갈 길을 열어 달라는 요구를 해 왔다.
(…)
“내 모친이 태양이 품 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를 낳았다 하시니, 해가 비치는 곳을 모두 다 내 땅으로 삼을 것이다. 만일 조선이 길을 내지 않는다면 초잠식지(稍蠶食之)하듯 조선부터 먼저 멸하고 중국을 칠 것이다.”
(…)
“이전 영의정 이준경이 십년 유배를 당했으나 그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고 지감(知鑑)이 뛰어났던 것은 성상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영상(領相)이 임종할 때에 소신에게 부탁하기를 난세(亂世)가 급하거든 묘향산 삼인봉 아래 서산(西山)이라 하는 중을 찾아보라 하였으니 준경의 말을 쫓음이 어떠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