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소오(小梧) 설의식(薛義植, 1901. 1. 27∼1954. 7. 24)은 1920∼1930년대 일제 강점하의 암울한 시대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비판적 글쓰기를 감행한 양심적 언론인의 한 사람이다. 동시에 그는 해방 공간과 한국 전쟁을 거치는 기간 동안 이 땅의 파편화된 역사를 특유의 날 선 감각으로 치열하게 포착해 낸 사회 비평가이자, 촌철살인의 문장을 시시각각으로 구사한 강직한 문장가이며, 품격 있는 수필가이기도 하다.
설의식의 문필 활동은 1922년 5월, ≪동아일보≫ 입사를 계기로 본격화된다. 정치/경제부의 ‘내근 기자’로 시작한 그는 이듬해에 사회부 기자, 1925년에는 사회부장의 직책에 이르게 되며, 1927년에는 도쿄 특파원으로 파견된다. 이 기간 중에 그는 현장성을 담보한 취재/보도 기사는 물론, 논설, 사회 만평, 기행문 등 주제와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양식의 글쓰기를 시도한다. 1947년에 간행된 그의 첫 번째 저서 ≪화동 시대(花洞 時代)≫는 주로 이 무렵에 발표된 글들을 추려 놓은 것이다.
사실 ≪화동 시대≫에 수록된 대부분의 글들은 수필과 같은 특정 장르의 범주에서 일괄적으로 논의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 책에 실려 있는 상당수의 글들이 애초에 ‘수필 문학 창작’을 목적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거니와, 실제의 내용에 있어서도 사회 만평, 시론(時論), 논평(論評), 수록(隨錄) 등으로 다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번 ≪설의식 수필선집≫이 장르적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설의식의 “무어가 무언지 모를 문(文)과 체(體)”를 상당 부분(보도문, 선전문, 소개문, 기록문 논박문, 축사 등은 제외) 끌어안은 이유는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서언>) 쓴 그의 “문(文)과 체(體)”가 ‘무형식이 형식’, 다시 말해 고도의 형식적 구속력을 거부하는 수필 문학의 특성과 각별한 친밀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김광섭의 말마따나 ‘무형식이 형식’이야말로 “수필의 운명이고 그 내용”(<수필 문학 소고>)이 아닐 것인가. 더욱이 시종일관 수견(隨見)·수문(隨聞)·수상(隨想)을 강조하며 촌철살인의 함축성과 포괄성을 획득한 문장력을 선보이고 있음에야. 여기에 일제 식민주의 시대의 일상적 삶에 대한 냉철한 분석력과 비판적 사유를 동반하고 있다면 무엇을 마다할 것인가.
200자평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공간을 거쳐 1950년대로 진입하는 동안 설의식의 수필은 역사와 민족, 이념과 제도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뿐만 아니라 함축성과 포용성과 재치를 겸비한 그의 강직한 문장들은 우리 사회의 모순적 정황들을 적시적소에서 견인해 낸다. “영원한 언론인’이었던 소오에게 수필은, 논평과 시론과 만평의 연장 선상에서 쓴 또 다른 유형의 글쓰기였다.
지은이
소오(小梧) 설의식(薛義植)은 1901년 1월 27일(음) 함경남도 단천(端川)에서 한학자 오촌(梧村) 설태희의 5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났다. 바로 아래 남동생이 해방 직후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가로 활동하다가 남로당에 가입한 후, 1953년 임화와 함께 숙청당한 오원(梧園) 설정식이다.
단천에서 공립보통학교와 협성실업학교를 마치고, 1917년 10월 서울 중앙중학교에 입학했다. 이 무렵 고하(古下) 송진우의 지우(知遇)를 받은 후, 그가 작고할 때까지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한 평생의 인연을 이어 간다. 1922년 니혼(日本)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년 5월 동아일보사에 입사했다. 1925년 사회부장, 1927년 도쿄 특파원을 역임하고 1935년 편집국장으로 취임했다. 편집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1936년 8월, 베를린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이른바 ‘일장기 말소 사건’이 문제가 되어 동아일보사를 퇴사했다. 당시 신문사의 사장은 고하 송진우였으며, 정치부장은 빙허 현진건이었다.
8·15 광복을 맞아 우익 진영의 ‘국민대회준비위’ 정부부장으로 일시적으로 활동하다가, 같은 해 12월 1일 ≪동아일보≫가 속간되자 주간 겸 편집인으로 복귀했다. 1947년 2월 퇴사한 후, “신문적 잡지, 잡지적 신문”을 표방한 순간지(旬刊紙) ≪새한민보≫를 창간했다.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민족주의 계열의 언론인이자, 시사·문화 평론가였던 설의식은 1930년대 중반까지 운주산인(雲住山人) 금봉학인(錦峰學人) 임천(林泉, 숲샘) 삼성거사(三省居士) 계산도인(桂山道人) 백옥석(白玉石) 무고자(撫古子) 호고생(好古生) 만각탑(晩覺塔) 망중한인(忙中閑人) 잠물 소목오(小木吾) 등 다양한 필명(筆名)을 차용했다. 그러나 부친[오촌(梧村)]은 물론, 고조부[오산(梧山)], 증조부[오석(梧石)], 조부[삼오(三梧)] 등이 이명(異名)에 ‘오(梧)’ 자를 공유함에 따라 이후의 발표 글에서는 소오(小梧)를 주로 사용했다.
주요 저서로는, 종로구 ‘화동’에 자리 잡은 동아일보사 재직 시절에 발표한 글들이 집중적으로 수록된 ≪화동 시대(花洞 時代)≫(1947)를 비롯해, ≪해방 이전(解放 以前)≫(1947) ≪통일 조국≫(1948) ≪금단(禁斷)의 자유(自由)≫(1948) ≪해방 이후(解放 以後)≫(1949) ≪민족의 태양≫(1950) ≪난중일기≫(1952) 등이 있으며 선집으로 ≪소오문장선(小悟文章選)≫(1954)을 남겼다. 2006년에는 나남출판사에서 유고집 ≪소오문선(小悟文選)≫이 간행되었다.
1954년 7월 21일 명륜동에서 향년 54세의 나이로 안타까운 삶을 마감했다.
엮은이
이성천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알리바바의 서사, 혹은 소설의 알리바이>가 당선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 말의 부도≫(2007), ≪한국 현대 소설의 숨결≫(2009), ≪위반의 시대와 글쓰기≫(2012), ≪현대시의 존재론적 해명≫(2015) 등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계간 ≪시와시학≫, ≪시에≫의 부주간 및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10회 젊은평론가상, ≪시와시학≫ 평론상, 경희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우리집 梧桐
病窓月
謠言과 民情
白日夢
漢江의 順流
횡설수설
水穿石頭
八十五 錢
三 字 풀이
片片相
“가막소”와 刑務所
헐려 짓는 光化門
四溟堂 神道碑
城壁을 사이 둔 봄
빛갈 좋은 개살구
한 껍질 벗은 人間
유행되는 “특”
찌는 더위와 땀
金·尹 兩人의 情死
두부나 비지 드렁
新秋 二 題
장마에 젖은 斷想
年頭頌
嶺南路 여기저기
楊洲ㅅ길 三八線
慶北 紀行
光州로 가는 길
마라손 制覇頌
太極旗
原書·眞書
뒤집힌 朝鮮
俊才의 糾合
들고·나고
노리개집
우리의 자랑
出版 洪水
三次 戰爭
三次 戰爭 / 쌀·쌀·쌀
美蘇? 蘇美?
僞幣 事件
合作觀 (上)
八·一五
美軍 專用
春川 點景
脫黨風
選擧戰
三重 過歲
紀年是非
令監 大監
兩頭 朝鮮
丁亥辯
花洞 時代−序言 삼아 卷頭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당나귀[驢]와 말[馬]이 관계를 하면 당나귀도 아니고 말도 아닌 노새[騾]가 생긴다. 이것을 가르되 ‘특’이라고 한다. 짐승뿐만 아니라, 사람도 딴 民族 사이에 생긴 자식을 일본 말로 ‘아이노꼬’라고 한다. 그래서 나귀와 말이 관계를 하거나, 黑人種과 白人種이 결혼하는 것과 방사한 사실은 모두 ‘특’이요 ‘아이노꼬’라고 別名을 짓게 되는 것이다.
‘약밥’에 ‘다꾸앙’을 섞어 먹으면 이것은 ‘특음식’이다. ‘구두’ 신은 채 ‘장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이것은 분명히 ‘아이노꼬 生活’이다. ‘양복’을 입고, ‘갓’을 쓰고, ‘게다’를 신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하면 이는 ‘특’ 중에서도 上‘특’이고 ‘아이노꼬’ 중에서도 奇怪한 ‘아이노꼬’라고 할 것이다.
“여보, 당신 먹을 수 있겠소?” “내 마음, 대단히, 기뻐함이, 있소” 하고, 서양 사람들의 본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제 딴에는 서양 사람과 교제가 많은 체, 서양 사람과 형제간이나 되는 체한다. 이런 것들은 실상 ‘특’도 못 되는 ‘특’이다. 이런 ‘특’은 ‘특’ 중에는 제일 덜 익은 징글징글한 ‘특’이다.
<유행되는 “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