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은 17세기 성체극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인생을 연극에 빗댄 세계관은 당시로선 특별한 게 아니었다. 칼데론 데 라 바르카는 연극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삶에서 인간이 수행하게 되는 다양한 역할을 표현한다. 이 연극은 먼저 창조주(신)를 연출가로 등장시킨다. 창조주는 각자에게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맡게 될 특정한 역할을 부여한다. 부자, 농부, 왕, 거지, 지혜, 미인 등 우화적 캐릭터는 인간 조건의 다양한 측면과 지상의 삶에서 개인이 직면하게 될 시련을 나타낸다. 이로써 작품은 인간 삶의 덧없는 본질, 신의 설계에 따르는 삶의 중요성을 성찰하며 관객이 세상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행동과 결정이 궁극적인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한다.
인간의 역할과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은 얼핏 인간의 운명은 예정되어 있다는 운명예정론의 입장을 견지하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이 맡은 역할은 운명으로 주어지더라도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느냐는 개인 의지에 달렸다는 주장을 분명히 한다. 결국 인간은 맡은 역할을 어떻게 수행했느냐에 따라 사후 도덕적 가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주는 세상에서의 연극을 끝내고 소도구와 의상까지 반납한 채 세상에 나서기 이전 모습 그대로 다시 문 앞에 선 인물들을 하나하나 평가한다. 창조주의 평가에 따라 어떤 이는 천국에 어떤 이는 지옥에 자리한다. 평가 자체가 불가한 경우도 있다. 이들을 위한 중간계 역시 존재한다. 칼데론 데 라 바르카는 신학자로서 식견과 통찰로 비유와 은유, 상징을 사용해 삶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극의 목적은 분명하다. 대중 관객에게 도덕적, 종교적 교훈을 전하는 것이다. 선행하라는 도덕적인 결론 이면에는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며 체제 순응을 유도하려는 의도도 다분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고릿적 구태에서 비껴 있는 듯 보이는 이유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서정성, 극적 감동, 보편적 가치인 휴머니즘과 도덕성이라는 주제를 현대적 설정으로 풀어낸 데 있을 것이다.
200자평
스페인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 주는 대표작.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인간은 특정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일 뿐이지만, 연극이 끝난 뒤 주어질 상벌은 맡은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달렸다는 교훈을 전한다.
지은이
칼데론 데 라 바르카(Pedro Calderó́n de la Barca, 1600∼1681)
1600년 1월 17일 하급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이었으며 펠리페 2세와 펠리페 3세의 재정고문관의 비서였다. 어머니는 플랑드르 귀족 출신의 후손이었다. 그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부유하지는 않았다. 1608년 마드리드의 예수회 제단 학교에 입학해 1613년까지 철학, 수학, 역사, 라틴어, 그리스어 등을 배웠고, 훗날 그의 작품에 깊이 각인될 예수회 정신을 체득한다. 1614년 알칼라 데 에나레스 대학에서 논리학과 수사학을 공부했으며, 1615년부터 살라망카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 지리, 정치 등을 공부하고 교회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 공부한 것이 훗날 칼데론이 극작 활동을 하면서 작품 세계를 심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1610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계모 후아나 프레일레(Juana Freyle)의 모진 구박을 견뎌야만 했는데, 1615년에는 아버지마저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문학과 연극에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로 무대에서 공연된 작품은 《사랑, 명예, 권력(Amor, honor y poder)》으로, 1623년 6월 29일 마드리드에서 후안 아카시오 베르날(Juan Acasio Bernal) 극단에 의해 공연되었다. 군 복무 중이던 1625년 《위대한 세노비아(La gran Cenobia)》가 공연되고 이어서 《브레다 포위》, 《시장 스스로가(El alcade de sí mismo)》, 《선과 악에 대해 알기(Saber del mal y del bien)》 등이 공연되면서 극작가로서 칼데론의 명성은 높아졌다. 1630년 칼데론은 본격적으로 성공적인 극작가의 길을 걷게 되는데, 특히 《아폴로의 월계관(El laurel de Apolo)》으로 로페 데 베가의 인정을 받게 된다. 이후 1650년까지 칼데론은 전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세속극을 많이 썼다. 이 시기에 쓰인 대표적인 작품들로 《요정 부인(La dama duende)》, 《문이 두 개인 집은 지키기 어려워(Casa con dos puertas, mala es de guardar)》, 《사랑을 조롱해서는 안 돼(No hay burlas con el amor)》, 《지조 깊은 왕자(El príncipe constante)》, 《경이로운 마법사(El mágico prodigioso)》, 《자신의 명예를 고치는 의사(El médico de su honra)》, 《살라메아 시장(El alcalde de Zalamea)》, 《세 가지 불가사의(Los tres mayores prodigiosos)》, 《은밀한 모욕에는 은밀한 복수를(A secreto agravio, secreta venganza)》 등이 있으며, 칼데론의 가장 훌륭한 작품인 《인생은 꿈(La vida es sueño)》도 1630년대에 쓰인다.
칼데론은 성찬신비극(El Auto Sacramental)이라는 종교극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El gran teatro del mundo)》, 《인생은 꿈》(성찬신비극), 《성스러운 오르페오(El divino Orfeo)》 등의 대표적인 성찬신비극을 썼다. 1640년대부터 칼데론의 극작 활동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1680년에는 마지막 희곡 《레오니도와 마르피사의 운명과 명찰(Hado y divisa de Leonido y Marfisa)》을 쓴다. 궁정 기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왕궁에서 먼저 상연된 뒤 대중을 위한 코랄에서의 공연이 21일이나 지속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썼다. 1681년 성체절을 위한 성찬신비극 《이사야의 양(El cordero de Isaias)》을 쓰고, 《신성한 필로테아(La divina Filotea)》를 절반만 완성한 채, 유언을 써 놓은 지 닷새 만인 1681년 5월 25일 사망한다.
옮긴이
김선욱
김선욱은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국립대학교(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에서 스페인 연극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 초빙교수로 재직중이며, 스페인과 중남미 연극에 관한 연구와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의 연극을 번역하고 무대에 올리는 한편 드라마투르그(문학 감독)와 연극 평론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공연 예술》(공저), 《작품으로 읽는 스페인 문학사》(공저) 등과 역서로 《누만시아》, 《살라메아 시장》, 《푸엔테오베후나》, 《죽음 혹은 아님》 등 다수가 있다. 논문으로는 〈연극사 각 시대별 연기 양식 비교 연구 : 음악적 대사의 연극적 재현의 역사〉, 〈르네상스와 바로크 과도기 시기 스페인 연극의 관객 : 또레스 나아로를 중심으로〉,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연극과 연극 축제〉 등과 평론으로 〈젊은 작가와 극단의 재기발랄한 놀이 : 극단 이상한 앨리스의 변기 속 세상〉, 〈사회적 폭력에서 잉태된 개인의 폭력, 그리고 그 치유에 대한 희망 : ‘주인이 오셨다’의 텍스트 구조와 의미〉, 〈‘마호로바’의 미덕 : 그 구조와 연기 앙상블〉 등 다수가 있다. 이외에도 〈번역극의 드라마투르그 임무와 역할〉과 같은 연극과 관련한 많은 문화 칼럼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창조주 : 인간의 인생이
오늘의 연극이며,
하늘이 너의 연극을 볼 것이로다.
내가 작가이며, 이 연극은 나의 것이다.
극단을 만들면서
먼저 인간을 만들었고,
그들이 단원이 될 것이다.
4대륙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는 연극에서, 그들은
자기 역에 어울리는
연기를 할 것이고, 나는 그들 각자에게
적당한 역할을 줄 것이니라.
이 연극에서 각자는
아름다운 의상과
멋진 장신구를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기쁘고, 자유롭고,
즐겁게 지내고 싶노라.
혼돈의 상태에 있는 무대 장식의 모습을
확실하게 드러낼지어다.
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