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속고금소총(續古今笑叢)》의 제목은 《고금소총》에 이어 편찬했다는 뜻이다. 그간 편찬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으나 근래에 발굴된 홍만종의 문고 《부부고(覆瓿藁)》에서 《속고금소총》의 서문 〈속고금소총서(續古今笑叢序)〉가 발견되며 홍만종이 《고금소총》에 이어 《속고금소총》까지 편찬했음이 밝혀졌다. 이 서문은 일본 동양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판본에서만 확인되는데 그 책의 표제가 《속고금소총》이 아닌 《고금소총》으로 되어 있어 혼동을 불러일으켜 왔다.
그러나 《고금소총》과 《속고금소총》은 엄연히 다른 책이다. 《고금소총》이 강희맹의 《촌담해이(村談解頤)》, 송세림의 《어면순(禦眠楯)》, 성여학의 《속어면순(續禦眠楯)》 3종에서 58편의 소화를 취해 편찬한 것이라면 《속고금소총》은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 김시양의 《고담기문(古談記聞)》, 김육의 《잠곡필담(潛谷筆談)》, 김득신의 《종남총지(終南叢志)》, 임방의 《천예록(天倪錄)》까지 5종에서 54편의 소화를 가려 뽑아 편찬한 책이다.
내용 면에서도 전편과 후편의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음담패설의 축소가 그 하나다. 《속고금소총》에도 ‘성(性)’에 관한 내용과 표현이 없지는 않지만 전편 《고금소총》에 비하면 미약하며 표현 방식 또한 정제되었다. 거칠고 속된 언어로 남녀의 성관계나 성기를 묘사했던 《고금소총》과 달리 《속고금소총》은 성관계를 ‘부부지락(夫婦之樂)’ 정도로 부드럽게 표현하고, 성기에 대한 지칭 또한 ‘구멍, 음부’ 외에 나타나지 않는다.
외설은 축소됐으나 다양성 면에서는 속편의 폭이 훨씬 넓다. 특히 실존했던 인물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속고금소총》의 편찬자 홍만종은 17세기 관료 문인들과 그들의 일상생활에 담겨 있는 웃음에 주목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지 않는 예법이 풍미한 17세기 조선 사회. 《속고금소총》의 성취는 경직된 관인 사회에 필요한 것이 웃음이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 홍만종의 소화(笑話)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책을 함께 읽어 보시면 좋습니다.
《고금소총(古今笑叢)》(홍만종 엮음, 정용수 옮김, 지만지한국문학, 2024)
《명엽지해(蓂葉志諧)》(홍만종 엮음, 정용수 옮김, 지만지한국문학, 2024)
200자평
《속고금소총(續古今笑叢)》은 《고금소총》에 이어 편찬한 책이다. 그간 편찬자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근래에 발굴된 홍만종의 문고 《부부고(覆瓿藁)》에서 《속고금소총》의 서문이 발견되며 홍만종이 《고금소총》에 이어 《속고금소총》까지 편찬했음이 밝혀졌다. 전편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외설적인 내용이 축소되고 17세기 관인의 일상생활에 내재된 웃음의 순간을 포착하려 했다. 해학을 즐겼던 이항복이나 조원범 등 다양한 소화 인물의 발굴을 시도한 《속고금소총》은 우리 소화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작품집이다.
엮은이
이 책의 편저자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은 풍산 사람으로 자는 우해(于海), 호는 현묵자(玄默子), 몽헌(夢軒), 장주(長洲)라 했다. 부친 주세(柱世, 1612∼1661)는 자가 우문, 호가 정허당으로 생원과 문과를 거쳐 정랑에 이르고 영주군수를 지냈으며 뒤에 도승지에 증직되었다. 조부 보(靌, 1585∼1643)는 진사와 문과 장원으로 소무훈에 책봉되어 풍령군에 봉해지고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으며 뒤에 영의정 및 부원군에 증직되었다. 증조 난상(鸞祥)은 형조좌랑을 역임했으며, 고조 수(修)는 부사직을 역임했다. 선조의 장녀 정명옹주에게 장가든 부마 주원(柱元)과는 재당질간이니 고조대에서 분가되었다. 외가는 중종대 영의정을 역임한 정광필의 후손으로 외조가 이조참판 광경이며 외숙이 좌의정 지화였다.
이 같은 좋은 배경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동명 정두경의 문하에서 시를 배우며 휴와 임유후, 백곡 김득신, 만주 홍석기 등과 더불어 나이를 잊은 만년지교를 맺고 시주를 즐겼으나 이는 나중의 일이다. 그의 생애에서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20세 때의 부친상과 연이은 득병, 10년 이상의 긴 요양 이후 출사했으나 곧 이은 파직이 아니었을까 한다. 명확하지 않은 부친의 죽음이나 당쟁에 휘말려 삭탈관직되는 개인적 불행은 남자 형제도 없는 단신인 그에게 저작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 기회를 촌로나 일반 서민들과 교유하는 장으로 만들며 시간적 여유를 누렸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교서관제조 신완(申玩, 1646∼1707)의 추천으로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叢目)》의 편찬 기회를 얻었지만, 이것마저 고지식한 신료들의 “포폄여탈”, “참람되다”는 비난을 받음으로써 그의 저작이 더 이상 유포·간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쟁의 여파가 평생 그에게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 새로 발굴된 그의 친필문고 《부부고(覆瓿藁)》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청구영언(靑丘永言)》이나 《고금소총(古今笑叢)》, 《속고금소총(續古今笑叢)》 외에도 그가 수많은 기록을 남겼음이 밝혀졌다. 그 저술의 범위도 그렇거니와 내용을 봐도 그가 얼마나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하나하나 분류를 시도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앞으로 그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조사와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옮긴이
정용수는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거쳐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 전공으로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과정을 수료해, 동아대학교에서 정년을 마쳤다. 2000년부터 버클리 대학교(U.C. Berkeley) 동아시아연구소(Institute of East Asia Studies)에서 1년간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고전 번역과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역서로 《후탄선생정정주해 서상기》(국학자료원, 2006), 《전등신화구해》(푸른사상, 2003), 《고금소총 명엽지해》(국학자료원, 1998), 《국역 소문쇄록》(국학자료원, 1997)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옮긴이 서문
속고금소총 서문
어우야담(於于野談)
복을 구하려다 웃음거리가 되다
이익을 계산하다가 옹기만 깨뜨리다
보통사람을 기이한 사람으로 알다
옥대와 두꺼비를 기막히게 맞추다
주문을 외우며 기녀를 거절하다
되로 덮어 놓고 생선 비늘을 치다
폭쇄별감의 눈물꼬리
나귀 등에 맨발로 오르다
청천강을 아홉 번 건너다
병마절도사가 기생을 울리다
대머리가 부끄러워 기생을 속이다
혼자 푸른 깃발 아래에 서다
유의 삿갓과 박의 갓
짠 음식 먹은 것을 알려 주지 않다
전공이세요, 후공이세요?
교생이 노래로 응답하다
재치있는 기생의 명답
밀가루 그릇에 얼굴 도장을 찍어 두다
가지와 굴젓을 찾아 먹다
고담기문(古談記聞)
유 씨와 백 씨가 서로 비웃다
한나라 법을 이용해서 뽑다
과삼중으로 붙기를 원하다
잠곡필담(潛谷筆談)
말머리를 돌리라 하다
주인아내 자랑을 잘못하다
종남총지(終南叢志)
세 사람 말이 다 옳소
우산으로 덮어서 새는 비를 막다
장기(瘴氣)와 장기(將棋)
금씨의 말은 개구리 근심이다
책을 뒤적이며 놀라는 척하다
액운을 당해도 오히려 농담을 하다
벼슬은 청요직이나 시어가 속되다
시를 보고 이름으로 여기다
광대가 상소를 올리다
재상과 기생이 서로 비웃다
시구로 묻자 말고삐를 멈추다
가사를 잘 바꾸다
흔적을 숨기고 병을 치료하다
헌원씨에게 제사로 보답하다
조카로 욕보이려다 도리어 곤욕을 치르다
논평을 듣고 군색해 달아나다
기생이 재행을 의심하다
아들이 장수할 시구를 기뻐하다
자기 자랑을 피하려 하다
음식을 두루 다 좋아하다
아내에게 소리쳐서 욕을 그치게 하다
등을 갖다 대며 가난을 즐거워하다
천예록(天倪錄)
집요하게 꽃을 거절하다
잔꾀를 부려 옥을 꺾다
두룽다리 쓴 어사
궤짝 속에서 나온 제독
허풍에는 천자
망발장이
음부의 간교함
어리석은 남편의 어리석음
해설
엮은이에 대해
엮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예로부터 변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부인들이다. 배짱 좋다는 남자치고 부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옛날에 어떤 장군이 살았는데 아내를 매우 두려워했다. 10만 병사를 거느리고 넓은 사막 한가운데서 진을 쳤는데,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큰 깃발을 세워 놓았다. 한쪽은 푸른색이고 다른 한쪽은 붉은색이었다.
마침내 군사들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내가 두려운 자는 붉은 깃발 아래 서고, 두렵지 않은 자는 푸른 깃발 아래 서라.”
10만 군사가 모두 붉은 깃발 아래 섰는데, 한 군졸만이 혼자 푸른 깃발 아래 서 있었다. 장군이 장하게 생각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네가 진짜 대장부다. 사람들에게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의 풍조처럼 되어 버렸다. 나도 한 나라의 장수가 되어 10만 병사를 거느리고, 적을 만나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때면 화살이며 돌멩이가 비 오듯이 쏟아져도 간담은 도리어 더 매서워지고 공포심이란 아예 없는 사람인데, 아내 방 이부자리에만 들어가면 사랑한다는 소리를 이기지 못해 결국 부인에게 제압당하고 마는데. 대체 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할 수가 있더냐?”
“제 처가 항상 저에게 경계하기를, ‘남자란 셋만 모이면 반드시 여색을 논하는 법이니, 셋이 모여 있는 곳에 당신은 절대 가지 마세요’라고 했사옵니다. 하물며 오늘 10만이나 되는 사내가 모여 있는데 더할 나위 있나요? 그래서 혼자 푸른 깃발 아래 서 있는 것이옵니다.”
장군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내 두려워하기로는 네가 내 위에 있군.”
– 〈혼자 푸른 깃발 아래에 서다(獨立靑旗)〉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