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수촌만록≫은 수촌 임방의 시화집이다. 제목 ‘만록’은 일정한 형식이나 체계 없이 느끼거나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을 가리킨다. 하지만 ≪수촌만록≫에는 다른 잡기는 보이지 않고 시와 관련된 이야기, 즉 시화만 55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와 시화의 주인공은 자신의 고조부와 아버지, 스승(송시열) 등 가까운 사람부터 김수항 김득신 기만중 홍만종 등 이름난 서인계 문인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성, 승려와 같은 소수 계층까지 다양하다. 그는 이들의 시와 시화에 다른 사람의 평을 인용하기도 하고 자신이 쓴 평을 붙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직계존속과 같은 지친(至親)에 대해서는 기휘(忌諱)를 하여 자신의 저술 속에서 평론은 물론 언급조차 삼가던 일반적인 추세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고조, 아버지, 종숙, 그리고 스승 송시열의 글을 상당수 수록했다. 스승에 대해서는 “금석문자가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세상에서는 대개 부족하다고 여겼다”라고 평한다.
수촌이 높이 평가한 김득신의 시를 한 수 살펴보자. 그는 이 시를 두고 “어찌 당나라 시인들의 작품보다 뒤떨어지랴?”라고 했다.
지는 해는 평평한 모래사장을 비추고,
잘 새는 먼 나무로 찾아든다.
귀가하는 사람 노새에 오르며,
앞산에 비 올까 걱정하네.
저녁 햇살 강가에 비치니,
가을 소리가 나무에서 들린다.
목동은 소를 몰아 돌아오는데,
앞산의 비에 옷이 함빡 젖었네.
사대부 집안 인물들의 글은 어떻게든 전해 내려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 한 수 남겨도 이름자를 옆에 붙이기 쉽지 않은 인물들이 있으니 그들의 시편을 실은 덕에 이 책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시화집에는 황진이를 비롯하여 부안 기생 매창 같은 기녀와 안동 권 아무개의 계집종 얼현(孼玄) 같은 여성들의 시가 소개되어 있다. 그중 얼현의 시로는 <추사시(秋思詩)>와 <방석전고거(訪石田故居)>를 소개했는데 그는 이렇게 밝힌다. “이 두 시는 모두 ≪기아≫에 실려 있다. 그런데 <추사시>는 취선(翠仙)이라는 기생의 작품으로 잘못 실려 있고, <방석전고거>라는 시도 역시 무명씨의 것으로 잘못되어 있어, 세상에는 취죽이라는 이름이 전하지 아니하니 애석하도다”라고 했다. 이밖에도 처묵(處黙)과 묘정(妙靜)과 같은 승려, 신두병(申斗柄)과 같은 기인 및 풍류 가객의 일화도 다수 실어 당대 비주류 인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00자평
임방의 만록(漫錄) 주제는 시다. 고조부와 아버지, 스승(송시열)과 같은 가까운 사람의 시부터 여성, 승려와 같은 소수 계층의 시까지 다양한 시의 시화(詩話)와 그만의 평이 담겨 있다. 특히, 황진이의 시 연구에 필수 텍스트로 꼽힐 만큼 그가 아니면 전해지지 않았을 기생이나 여종의 시를 시 자체로 평하며 기록으로 전한다. 그의 감상을 통해 한시 감상의 폭을 넓혀 보자.
지은이
임방(任埅)은 자(字)가 대중(大仲)이고, 호(號)는 수촌(水村)이며, 또 다른 호는 우졸옹(愚拙翁)이다. 1640년(인조 18)에 태어나서 1724년(경종 4)에 돌아갔다.
백씨에게 글을 배워 약관에 대유(大儒)가 되었으며, 또한 우암(尤庵) 송시열과 동춘(同春) 송준길 두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추장을 받았다. 1663년에 진사시에 합격했고, 성균관에 유학했다. 1671년에 창릉 참봉(昌陵參奉)에 임명되었다가 주부(主簿), 감찰(監察)로 승진했다. 1687년(숙종 13)에 형조 정랑, 이듬해 호조의 정랑이 되었고, 1689년에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고 스승 송시열이 귀양을 가게 되자 사직했다. 6년간 벼슬에 나가지 않고 향촌에서 지내다가 1694년에 의금부 도사, 군자감 주부를 거쳐 단양 군수로 나갔다. 사복시정(司僕寺正), 장악원정(掌樂院正), 사간(司諫), 동부승지, 판결사(判決事), 대사성(大司成), 가선대부(嘉善大夫), 가의대부(嘉義大夫), 한성좌우윤(漢城左右尹), 도승지(都承旨), 공조판서(工曹判書), 우참찬(右參贊) 등을 지냈다. 1721년 겨울에 건저(建儲)에 얽힌 사건으로 노론 대신들이 모두 귀양을 가면서 그도 삭출되었고, 이후 김천(金川)으로 귀양을 갔다가 그곳에서 85세를 일기로 죽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신원(伸冤)되었다.
옮긴이
윤호진(尹浩鎭)은 1957년 경기 남양주에서 출생했다. 국민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설 한국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민대 강사, 성균관대 강사 등을 거쳐, 현재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한문학과 교수로 있다. 중국 무한대학 방문학자, 영국 셰필드 대학 방문교수 등을 지냈다. 논문으로는 <한계(寒溪) 하대명(河大明)의 생애(生涯)와 문학(文學)>(2018), <연민의 <동도편(東都篇)>과 <동도유기(東都遊記)>에 보이는 경주 유람의 내용과 특징>(2019), <추범(秋帆) 권도용(權道溶)의 우국한시(憂國漢詩)에 나타난 작가의식(作家意識)의 지향(志向)>(2019) 외 다수가 있다. 역서로는 ≪만사(挽詞)와 제문(祭文)≫(민속원, 2015), ≪문혈록(抆血錄)≫(민속원, 2016), ≪국역 무하당집(無何堂集)≫元·亨·利·貞(민속원, 2017) 등이 있다. 저서로는 ≪한시(漢詩)와 사계(四季)의 화목(花木)≫(교학사, 1997), ≪남명의 인간관계≫(경인문화사, 1996) 등이 있다.
차례
수촌만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우재 송시열(宋時烈) 선생은 비단 도학만이 당시의 종주일 뿐만 아니라, 문장도 동방 제일의 대가였다. …내가 책상자를 지고 화양(華陽)에 가서 선생을 모시고 십여 일을 잤는데, 밤마다 ≪주역≫, ≪맹자≫의 대전(大傳)을 반복해서 읽고서, 끝까지 읽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이나 책을 읽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세상에서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도 나만큼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노수신이 많이 읽었다고 하나, 읽은 것이 귀양 가 있던 19년 동안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하루도 책을 읽지 않은 날이 지금까지 없으니, 옛사람이나 요즈음 사람을 막론하고 나만큼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