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철학자’ 보부아르의 온전한 초상
어떻게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되, 자신처럼 자유를 실현하려는 타인과도 공존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개개인은 ‘우리’ 같은 집단에 용해되어 개별성을 잃지 않으면서 저마다 자유를 구현할 수 있을까. 시몬 드 보부아르가 20세기 전반기 양차 세계대전과 기존의 인간관 붕괴를 목도하며 거듭 되물은 질문이다. 보부아르는 절망감에 지배되는 당대의 흐름에 대항해 인간을 윤리적 주체로 다시금 세우려 분투했고, 일견 딜레마 같은 이들 문제를 깊이 사유하며 그 실마리를 여러 작품에 남겼다.
이 책은 윤리적 실존주의의 주춧돌을 세운 보부아르의 철학을 해설한다. 사르트르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보부아르 사상의 독자성을 ‘애매성’과 ‘자기기만’ 등의 개념으로 재조명하고, ≪제2의 성≫이 페미니즘 관점으로만 독해되는 와중에 간과되어 온 보부아르의 평생 화두인 ‘실존주의 윤리’를 그의 여러 글을 참조하며 고찰한다. 그 자신이 실존의 딜레마를 직접 경험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실존을 사유했으며, 그렇게 세운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상생 가능성을 치열히 탐구한 윤리적 실존주의자의 초상을 담았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이자 철학가. 20세기 페미니즘 사상과 운동의 물꼬를 틔운 ≪제2의 성≫(1949)의 저자로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 1929년 당시로서는 최연소로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몇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철학 교사를 지내다가 1940년대 초부터 집필 활동에 전념한 후 1943년에 첫 번째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를 출간하면서 작가로 등단한다. 철학 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소르본대학교에서 철학 수업을 듣던 중 당시 고등사범학교에 다니던 장폴 사르트르를 만났다. 1929년 10월부터 사르트르와 본격적으로 연애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이후 그가 죽음에 이른 1980년까지 5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지적 동반자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면서 프랑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사상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다수의 철학 에세이와 소설, 자서전, 희곡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1965년 한 인터뷰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을 천명한 이후부터는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참여 지식인으로서 행보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1986년 4월 14일 7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사르트르와 함께 안장된다.
200자평
윤리적 실존주의의 주춧돌을 세운 시몬 드 보부아르의 철학을 해설한다. 사르트르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보부아르 사상의 독자성을 재조명하고, ≪제2의 성≫의 대대적 성공 탓에 오히려 간과되어 온 보부아르의 평생 화두인 ‘실존주의 윤리’를 고찰한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보부아르 철학의 진면모를 만날 수 있다.
지은이
강초롱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파리 7대학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자서전 문학에 관한 논문으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있다. 보부아르의 사상과 문학을 분석한 논문으로는 “윤리적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본 타인의 살해 의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초대받은 여자≫를 중심으로”(2011), “시몬 드 보부아르의 ≪피뤼스와 시네아스≫: 윤리적 실존주의의 밑그림”(2013),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육체에 대한 윤리적 성찰: ≪제2의 성≫을 향한 비판에 대한 재고찰”(2015), “시몬 드 보부아르의 성적 경험 재해석: 존재의 욕망에서 상호적 드러냄의 추구로”(2021), ““사드를 화형에 처해야 하는가?”: 사드적 주체를 위한 보부아르의 항변”(2023) 등이 있다. 공저로는 ≪카페 사르트르≫(2014)와 ≪철학, 혁명을 말하다≫(2018)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아주 편안한 죽음≫(2021)과 ≪초대받은 여자≫(2024)가 있다.
차례
“난 우선적으로, 그리고 단연코 작가입니다!”
01 프랑스 실존주의
02 애매성
03 자기기만
04 윤리적 자유
05 하급인간
06 윤리적 실존의 원리
07 몸
08 체험
09 철학과 문학
10 철학과 현실
책속으로
보부아르에 따르면 실존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은 ‘애매성’에서 찾을 수 있다. 애매성이란 수많은 딜레마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의 실존 조건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인간은 의식인 동시에 육체이고, 의식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의식이 지향하는 대상이기도 하며,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인간 존재는 한 가지 의미로 결코 고정할 수 없으며, 심지어 모순적이기까지 한 상태에서 실존을 영위한다. 즉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의 자유로운 초월적 움직임으로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이나 타인의 존재 등 외부에서 주어진 조건들로 이루어진 ‘상황’ 탓에 자유로서 한계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_ “02 애매성” 중에서
보부아르는 자유를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의해 주어지는 자연발생적 자유와, 스스로 자유롭길 원하면서 자기 삶을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으로 정당화하려는 노력에 의해 쟁취할 수 있는 능동적 자유로 구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후자의 자유야말로 참된 수준에 도달한 자유의 모습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가리켜 윤리적 자유라 칭한다.
_ “04 윤리적 자유” 중에서
인간은 주어진 조건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초월적 움직임 속에서 매번 새롭게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는 존재다. 따라서 인간이 처한 상황 또한 소여의 산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존 조건에 따라 변화하고 새롭게 생성되는 가변적 결과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부아르는 몸이란 사물이 아니라 상황이며, 세상에 대한 한 개인의 입장 표명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러한 몸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아 체험적 몸, 상황 속에 놓인 몸에 관한 논의를 전개한다.
_ “07 몸” 중에서
보부아르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자기만의 관점에서 형이상학적 현실을 이해하고 있다. 즉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모든 인간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형이상학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형이상학적 진실은 그 자체로 애매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진실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방식은 오히려 문학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사유 내에서 철학과 문학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며, 형이상학 문학이야말로 실존의 진실을 가장 실존주의적으로 그릴 수 있는 이상적인 표현 방식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_ “09 철학과 문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