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국내 최초로 정본을 확립했다
신재효가 우리나라 판소리에 세운 업적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간 <춘향가>를 비롯한 판소리 여섯 바탕만이 소개되었을 뿐,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자주, 다양한 자리에서 서민들에게 사랑을 받은 가사들은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신재효의 자료를 모아 정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판소리 및 고전 가사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판소리에 대해 오래 연구해 온 정병헌 교수가 여러 필사본을 대조, 교감해 정본을 만들어 냈다.
내용은 ‘읽는 문학’이라기보다 ‘외워 부르는 문학’이라는 특성을 살려, 원문의 리듬감과 어휘를 그대로 살리고 대신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조선 후기에 가장 널리 불렸던 가사들을 통해 당시의 문화와 어휘, 표기법 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골계와 해학으로 가득 찬 노랫말을 통해 당시 서민들의 사상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소리꾼들에게 정확한 가사집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조선 시대 서민 문화와 우리 판소리의 실체를 맛볼 수 있게 한다. 신재효의 사설 개작과 가사 창작에 대한 부록도 함께 실어 판소리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31편의 노래 문학 ‘가사’가 실렸다
이 책에 실린 가사는 총 18편이다. 그러나 <허두가>라는 이름 아래 14편의 작품이 들어 있으므로 이를 각각 한 편의 가사로 본다면 모두 31편이다. <허두가> 외에 <호남가>, <광대가>, <치산가>, <도리화가>, <권유가>, <갈 처사 십보가>, <방아타령>, <단잡가>, <명당 축원>, <구구가>, <비단가>, <성조가>, <오섬가>, <명기타령>, <춘향 이별 사설>, <어부사>, <추풍감별곡>이 실려 있다.
‘가사’는 단가, 가사, 잡가, 민요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신재효의 가사를 ‘우리말로 할 수 있는 모든 유형들을 실험할 수 있었던 노래 문화’로 정의한다.
조선의 낙천적인 미래를 꿈꾸다
‘허두가’는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 풀이 노래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짧은 노래를 말하는 것으로, 영산, 초두가, 허두가, 단가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신재효는 각각 따로 존재하던 열세 편의 작품을 개작 정리해 <허두가>라는 이름으로 재탄생시켰다. 신재효는 <허두가>를 만들기 위해 주도면밀한 노력을 기울였다. <허두가>의 맨 처음에 들어간 작품은 <대관강산>이다. 일명 <풍월강산>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설은 중국의 명승지와 조선의 명승지를 구경하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현재적 시각으로 볼 때 중국의 찬란한 명승고적은 모두 부질없는 허망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이에 비해 고종이 등극하고 새로운 정치가 개막하던 조선의 상황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다. 신재효의 이러한 시작은 <허두가> 전편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개작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역대가>나 <역려가>, <고고천변>, <달거리> 등도 마찬가지다. 가필과 정정을 통해 신재효가 드러내고자 한 의도는 이 열세 작품을 <허두가>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개정판에는 새로 발굴된 청계본 ≪흥보가≫ 권2에 <단가>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별도의 <역려가>와 <단가>를 추가 수록했다.
노래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하다
이 외에도 신재효는 기존의 여러 작품을 개작, 조합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자신의 창작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냄으로써 ‘노래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했다. <오섬가>는 까마귀와 두꺼비의 대화를 통해 사랑과 슬픔의 진수를 보여 주는데, 이야기는 중국과 한국의 것으로 구별하고 있으며, 중국의 것을 앞에 배치하고 한국의 것은 뒤에 두었다. 이처럼 신재효의 단가는 일반적인 단가와 달리 중국과 조선을 대비하는 형식이 중요한 특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오섬가>는 그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랑 애 자 슬플 애 자’와 관련한 이야기를 병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병렬은 까마귀와 두꺼비의 시각에 의해 연결되고 있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는 삽화를 진술자의 시각에 의해 병렬하는 방식의 전개는 기존의 판소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섬가>의 전개 방식에서 우리는 이른바 ‘옴니버스(Omnibus) 형태’를 연상할 수 있다.
신재효는 새로운 조선을 꿈꾸었다
지속적으로 신재효는 아국(我國)과 대립되는 타국(他國)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었다. 타국은 <갈 처사 십보가>나 <단잡가>에 나오는 ‘괘씸한 서양 되놈’에 나타나는 서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허두가>에서처럼 중국 또한 조선과 비교의 대상이다. 중국의 과거는 현란했지만 현재는 그 영화가 사라져 허망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조선은 희망찬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땅으로 그려지고 있다. 신재효는 그런 조선의 모습을 꿈꾸었다. 신재효는 기존의 화이론적(華夷論的) 시각에서 벗어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자존적(自存的) 의식에서 바라보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다.
200자평
조선의 최고 인기 예능, 이것이었다!
조선 후기 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예능은 <춘향가>도 <흥보가>도 아니었다. 너무 길기 때문이다. 장터에서, 잔칫집에서, 일터에서 모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 것은 단가, 잡가, 시조 등으로 불리던 노래들이다. ‘가사’라는 이름 아래 신재효가 남긴 노래들을 모두 엮어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소리꾼들도 정확한 단가의 연창을 위해 정본에 해당하는 이 책이 필요하다. <허두가>, <단잡가>, <어부사>, <방아타령> 등 장르를 넘어선 이 노래들을 통해 조선 시대 서민 문화와 우리 판소리의 실체를 맛볼 수 있다. 정확한 교감, 상세한 주석과 해설뿐 아니라, 신재효의 사설 개작과 가사 창작에 대한 부록도 함께 실어 판소리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2019년에 출간해 2020년 세종도서 학술 부문 도서로 선정된 ≪신재효의 가사≫에 2020년 새로 발견된 ‘청계본(淸溪本)’의 내용을 추가하고 대조해 개정했다.
지은이
신재효는 본관이 평산(平山)이요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가 동리(桐里)로, 순조 11년(1812) 11월 6일 신광흡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73세 되던 고종 21년(1884) 태어난 날과 같은 11월 6일, 그 삶을 마감하기까지 격동적인 시대 변화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치성을 드려 신재효를 얻었다고 한다. 부모는 나이 들어 얻었으니 효도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재효라고 지었는데, 부모의 이러한 뜻에 어긋나지 않게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신재효는 고창현의 이방에 이어 호장까지 오른 뒤 오랜 공무에서 벗어났는데, 치산(治産)의 지혜와 근면성, 성실성을 기반으로 40대 전후에 이미 곡식 1000석을 추수하고 50가구가 넘는 세대를 거느린 부호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은 재산을 쓸 줄 모르는 졸부가 아니었다. 병자년(1876)의 대흉년에는 아끼면서 모은 재산을 굶주린 재해민을 돕는 데 아낌없이 썼다. 또한 자신이 근무하던 관아인 형방청의 건물을 중수하는 데에 돈을 시주했고, 경복궁의 복원 사업에 원납전으로 500냥을 헌납했다. 특히 광대의 양성과 후원에는 전 재산을 기울였다. 그는 굶주린 백성을 구휼한 공으로 가선대부의 포상을 받았고, 경복궁 재건을 위한 원납전 희사의 공으로 고종 15년(1878)에는 통정대부라는 품계와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이라는 명예직을 받기도 했다.
신재효는 축적된 부와 투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판소리를 애호하고, 풍류를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판소리와 관련한 신재효의 활동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기존의 판소리 사설을 개작해 우리에게 전했다는 점이다. 판소리 열두 작품 중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여섯 작품을 정리 개작했는데, <춘향가>의 경우는 남창(男唱)과 동창(童唱)의 두 가지를 남겨 주었다. 또한 <오섬가>의 창작을 통해 판소리에 ‘옴니버스(omnibus) 형태’를 도입함으로써 그 외연을 넓히기도 했다. 엮어질 것 같지 않은 춘향의 이야기, 배 비장의 이야기, 그리고 강릉 매화의 이야기 등을 한 주제에 의해 통합함으로써 판소리의 한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신재효는 <허두가>, <호남가>, <광대가>, <치산가>와 같은 많은 가사도 지었다. 신재효가 지은 가사는 그의 기질과 사업, 그리고 지향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재효나 그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 후기의 문화 실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판소리에 관련한 신재효의 활동 중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은 판소리 연창자에 대한 지원이 대단히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그는 판소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안목으로 지속적이고도 계획적인 판소리 지원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최초의 여성 명창인 진채선이 나타남으로써 판소리사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기도 했다.
옮긴이
교주자인 정병헌은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전남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2000년에는 1년 동안 미국의 듀크대학교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쳤다. 2016년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정년을 했고, 이를 계기로 오랫동안 미뤄 두었던 ‘판소리의 역사’를 집필하기 위해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에서는 문과대학장, 기초교양대학장, 한국어문화연구소장, 의사소통센터장 등의 보직을 담당했고, 외부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출제위원장, 국어국문학회 대표 이사, 판소리학회 회장과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 등을 맡았다.
연구서로 ≪신재효 판소리 사설의 연구≫, ≪판소리 문학론≫, ≪판소리와 한국 문화≫, ≪한국 고전 문학의 교육적 성찰≫, ≪한국 문학의 만남과 성찰≫, ≪판소리와 사람들≫, ≪교주 조선 창극사≫, ≪신재효 연구≫(공저), ≪문학 교육 원론≫(공저), ≪판소리사의 재인식≫(공저) 등을 썼고, 해설 및 교양서로 ≪고전과 함께 떠나는 문학 여행≫, ≪문학 작품 이렇게 읽는다≫(공저), ≪고전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공저), ≪한국 고전 소설의 이해≫(공저), ≪한국의 여성 영웅 소설≫(공저), ≪쉽게 풀어 쓴 판소리 열두 바탕≫(공저), ≪한국 시조 감상≫(공저), ≪고등학교 문학≫(공저), ≪고등학교 국어≫(공저), ≪고등학교 독서≫(공저), ≪우리 고전 문선≫(공편), ≪한국의 고전 문학≫(공편), ≪선비의 소리를 엿듣다≫(공편)가 있다. ≪단호함에 대하여≫, ≪우정의 길 예지의 창≫(공저), ≪사계의 전설≫(공저), ≪지나고 보니 보이는 꽃≫(공저)과 같은 수필집도 발간했다.
차례
1. 허두가(虛頭歌)
대관강산(大觀江山)
역대가(歷代歌)
궁장가(宮墻歌)
역려가(逆旅歌) 1
역려가(逆旅歌) 2
소상팔경(蕭湘八景)
고고천변(皐皐天邊)
새타령
달거리
금화사가(金華寺歌)
숭유가(崇儒歌)
태평가(太平歌)
효도가(孝道歌)
북정가(北征歌)
2. 호남가(湖南歌)
3. 광대가(廣大歌)
4. 치산가(治産歌)
5. 도리화가(桃李花歌)
6. 권유가(勸誘歌)
7. 갈 처사 십보가(葛處士十步歌)
8. 방아타령(打令)
9. 단잡가(短雜歌)
10. 명당 축원(明堂祝願)
11. 구구가(九九歌)
12. 비단가
13. 성조가(成造歌)
14. 오섬가(烏蟾歌)
15. 명기타령(名妓打令)
16. 춘향 이별 사설
17. 어부사(漁父詞)
18.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해설
부록−신재효의 사설 개작과 가사 창작의 의미
옮긴이 후기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광대라 하는 것이 제일(第一)은 인물(人物)치레
둘째는 사설(辭說)치레 그 직차 득음(得音)이요 그 직차 너름새라
너름새라 하는 것이 귀성 끼고 맵시 있고
경각(頃刻)의 천태만상(千態萬象) 위선위귀(爲仙爲鬼) 천변만화(千變萬化)
좌상(座上)의 풍류호걸(風流豪傑) 구경하는 노소남녀(老少男女)
울게 하고 웃게 하는 이 귀성 이 맵시가 어찌 아니 어려우며
득음(得音)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률(六律)을 변화(變化)하여 오장(五臟)에서 나는 소리
농락(籠絡)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광대가(廣大歌)> 부분
어화 가소롭다 저 집 치산 가소롭다
인사(人事) 다 버리고 욕심으로 전주하니
내 몸의 이할 성정 남의 말 저러할 제
연고 없이 궐제(闕祭)하고 인정 없이 축객(逐客)하네
한 되 것 아끼다가 열 섬 것 해재(害財)하네
당당한 일 안 하다가 남의 입을 뉘 막을꼬
자식 노릇 못하면서 제 자식만 예뻐하고
손자 노릇 못하면서 제 손자만 중히 아네
<치산가(治産歌)> 부분
아홉 걸음 걸어 서서 구구(九九)를 하여 보세
구구(九九)는 팔십일 구차 막심(苟且莫甚) 이 세상에
구천 통곡(九天痛哭) 하여 볼까 구곡 원장(九曲寃腸) 꺾어 볼까
구구(區區)한 이 사정을 귀신인들 알아줄까
구성없는 저 사람들 구할 것이 무엇인가
<갈 처사 십보가(葛處士十步歌)> 부분
∞ 못할네라, 못할네라, 오입(誤入)장이, 계집 노릇, 세상(世上)에는, 못할네라,
밤낮으로, 나다녀도, 한 푼 반(半) 푼, 못 벌면서,
무슨 비위, 계집다려, 잘 먹이고, 잘 입히랴,
꾸어다, 하여 논 밥, 얼른 하면, 상 부시고,
여러 날, 굶은 계집, 깐닥하면 뚜드리기,
속것 뜯어, 해 준 보선, 술주정의, 슈랑 밥고,
밤사이로, 또 하라고, 애등애등, 졸라 낸다,
∞ 중매장이, 다니던 놈, 날과 백 년(百年), 원수(怨讐)로다
<방아타령(打令)> 부분
동방화촉(洞房火燭) 깊은 밤에 금금요석(錦錦褥席) 펼쳐 놓고
저희 둘이 훨씬 벗고 말롱질도 하여 보며
택견질도 하여 보며 다리씨름하여 보며
이 도령(李道令)이 춘향(春香) 안고 왼 방 안을 그대면서
손채질 톡톡 치며 이랴이랴 이 말 새끼
춘향이는 외발 내쳐 외용외용 하는 작란(作亂)
두 손목 서로 잡고 받고 차고 택견질
다리씨름 어우러져 춘향을 감아 뉘고
주장군을 투기 씌워 옥문관을 돌입하여
좌충우돌 덤벙이며 춘향 목을 담쑥 안고
주홍 같은 혀를 물고 바드득 떨어 보며
백옥(白玉) 같은 젖퉁이를 만질만질 문지르며 사랑가로 농창인다
<오섬가(烏蟾歌)>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