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국 ‘율시(律詩)’의 격률과 체제를 완비하다
심전기(沈佺期, 656?∼716?)와 송지문(宋之問, 656?∼712?)은 역대로 심·송(沈宋)으로 병칭(竝稱)되어 온 초당 후기의 대표적인 두 시인이다. 이 두 시인은 같은 해에 태어나서 동일한 시기에 과거에 급제하며, 똑같은 이유로 폄적을 당하는 등 비슷한 인생 역정을 보인다. 또 시가 창작 역시 그 내용이 상당 부분 비슷하다.
이들은 역대로 중국 ‘율시(律詩)’의 격률과 체제를 완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율시는 초당(初唐)부터 청 말(淸末)에 이르기까지 중국 문인들이 가장 애호했던 시가 형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과거 시험에서 공식적인 형식으로 채택되었으며, 중국 시가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따라서 당시의 시단에서 가장 많은 율시를 창작했고, 또한 율시의 격식을 골고루 사용한 수준 높은 심·송의 작품은 중국 시가사(詩歌史)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할 수 있다.
시가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성당(盛唐) 시가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다
이 밖에도 심·송의 작품은 시가의 제재와 형식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정경 융합의 예술적 기교를 본격적으로 구사했으며, 언어를 정련(精鍊)해 후세 시가 창작의 전범이 되는 등 중요한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두 시인의 작품이 중국 시가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연구와 논의가 활발하지 못했던 것은, 이들이 궁정의 시인으로 아부를 일삼다가 결국에 폄적당한 인물로 평가받는 데서 기인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음이 학계에서 속속 고증되고 있으며, 문여기인(文如其人)의 논리에만 의지해 작품을 무차별적으로 폄하하는 태도는 온당한 문학비평이라 할 수 없다.
이들이 구현한 시가 예술의 성취는 당시(唐詩)의 꽃인 성당(盛唐) 시가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었으니, 심·송의 시가는 곧 성당의 시가로 들어가는 주요한 관문(關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0자평
현재 전해지는 심전기·송지문의 시 350수 중 49수의 작품을 선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했다. 심전기, 송지문은 ‘심·송(沈宋)’으로 병칭되어 온 초당 후기의 대표적인 시인. 두 시인은 ‘율시(律詩)’의 격률과 체제를 완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들의 작품은 시가의 제재와 형식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후세 시가 창작의 좋은 전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唐詩)의 꽃인 성당(盛唐) 시가의 형성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은이
심전기(沈佺期, 656?∼716?)
자(字)가 운경(雲卿)으로, 상주내황(相州內黃), 즉 현재의 허난성(河南省) 네이황현(內黃縣) 사람이다. 14세 무렵에 무협(巫峽)과 형양(荊襄)을 유람했던 것으로 전해질 뿐이다. 약관의 나이에 진사에 급제했으며, 이후 협률랑(協律郞)의 벼슬을 거쳐 통사사인(通事舍人)을 지내게 되는데, 이때 그는 ≪삼교주영(三敎珠英)≫의 편찬 사업에 참여해 장안(長安) 원년(701)에 완성했다. 또한 같은 해에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으로 전직했다가, 2년 뒤인 703년에 급사중(給事中)으로 승진하게 된다. 그러나 이듬해 뜻하지 않게 뇌물수수죄로 탄핵을 받게 되어 환주[驩州: 현재의 베트남(越南) 북부의 빈(Vinh)]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49세였다. 그러나 유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년 뒤 그는 사면을 받았고, 조정으로 복귀해 수문관학사(修文館學士), 중서사인(中書舍人), 태부소경(太府少卿) 등을 역임하는 등 비교적 순탄한 관직 생활을 영위하다가 그의 나이 61세인 716년경에 세상을 뜬다.
송지문(宋之問, 656?∼712?)
자(字)가 연청(延淸)이고 일명 소련(少連)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괵주홍농(虢州弘農), 즉 현재의 허난성(河南省) 링바오현(靈寶縣) 사람이다. 상원(上元) 2년(675)에 송지문은 심전기와 나란히 약관의 나이로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이때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그 후 35세까지 습예관학사(習藝館學士) 등의 벼슬을 지내며 비교적 순탄한 관직 생활을 유지하다가, 약 36세에 병이 들어 40세까지 육혼산장(陸渾山莊)에서 칩거한다. 이후 다시 관직의 세계로 돌아와 낙주참군(洛州參軍) 등을 지냈고, 심전기 등과 더불어 ≪삼교주영≫의 편찬 사업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의 나이 약 42세부터는 봉환령(奉宦令)의 신분으로 당시의 권력자인 장역지(張易之), 장창종(張昌宗) 두 형제를 섬기는 데 전념하게 되었다. 후일 신룡(神龍) 원년(705)에 장간지(張柬之), 경휘(敬暉) 등이 장역지 형제를 척살하고 동시에 무후(武后)를 강제로 폐위시키며 중종(中宗)을 옹립하는 정변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송지문 역시 이에 연루되어 농주(瀧州)로 폄적을 당한다. 그러나 이듬해에 황제의 사면을 받는다.
조정에 돌아온 송지문은 그해 바로 홍려주부(鴻臚主簿)가 되어 정치에 복귀하게 되는데, 이후로는 특히 위후(韋后), 무삼사(武三思)와 안락공주(安樂公主) 등의 정치 세력과 가깝게 지낸다. 그런데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태평공주(太平公主)가 송지문이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으로서 지공거(知貢擧)를 지낼 때 뇌물을 받았다고 고발해 월주(越州), 흠주(欽州) 등으로 유배를 돌다가 끝내 현종(玄宗) 원년(712)에 사약을 받아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옮긴이
최우석(崔宇錫)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학교에서 2000년에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에는 고려대학교에서 이동향 은사님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하이 푸단대학과 베이징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머물며 연구를 한 바 있다. 우송대학교 중국학부의 부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국립안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전시가를 전공했으며, 시가 연구와 문화 및 문학 비평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는 ≪위진 사언시 연구(魏晉四言詩硏究)≫[중국파촉서사(中國巴蜀書社)], ≪중국 고전시가 알기≫(공저, 시사중국어사) ≪중국 문학사 알기≫(공저, 시사중국어사)이 있으며, 연구 논문으로는 〈심전기, 송지문의 시가 연구〉(박사 학위논문), 〈고대 사언시(四言詩)와 율시 속의 아정(雅正) 심미관(審美觀)〉, 〈당대(唐代) 시격론(詩格論)과 선(禪)〉, 〈「懷思」篇으로 바라본 이백의 그리움〉, 〈李白의 「登覽」篇 고찰〉 등이 있다.
차례
1. 궁정에서의 멋
흥경지 연회에서 / 심전기
봄날 망춘궁에서 / 심전기
용의 연못 / 심전기
용문산(龍門山)의 연회 / 송지문
2. 그대에게 전하는 마음
먼 길 떠나는 그대에게 바침 / 심전기
숙직을 하다 써 내려간 편지 / 심전기
옛 뜻으로 드러내는 그리움 / 심전기
넘어가는 산 고개에서 답함 / 심전기
두심언을 떠나보내며 / 송지문
육씨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 / 송지문
한식날 최융(崔融)에게 보내는 글 / 송지문
3. 산수를 벗 삼아
창락군(昌樂郡)에서 백석령(白石嶺)으로 거슬러 올랐다 다시 침주(郴州)로 가는 길에서 / 심전기
이른 아침에 해남도로 떠나며 / 심전기
사천(四川)의 용문산(龍門山)을 지나며 / 심전기
경호(鏡湖)에 배 띄우고 / 송지문
오주(梧州)를 지나며 / 송지문
상원(湘源)에서 담주(潭州)의 형산현(衡山縣)에 이르다 / 송지문
항주(杭州)의 천축사(天竺寺)에서 / 송지문
한밤에 동쪽 정자에서 술을 마시며 / 송지문
4. 탈속과 은일의 여유
유배 가는 길에서 북쪽 소탐산을 바라보다 / 심전기
낚시를 하며 / 심전기
형양(衡陽)에서 소주(韶州)로 돌아와 혜능 선사(慧能禪師)를 배알하다 / 송지문
청원현(淸遠縣)의 협산사(峽山寺)에 머물며 / 송지문
처음으로 육혼산장(陸渾山莊)에 가다 / 송지문
봄날의 산가 / 송지문
구령(緱嶺)을 넘어가며 / 송지문
가을날 늦게 보요사(普耀寺)를 노닐며 / 송지문
육혼산장 / 송지문
동정호(洞庭湖)에서 / 송지문
5. 유배지에서의 상념
귀문관에 들어가다 / 심전기
처음으로 환주(驩州)로 가며 / 심전기
안해(安海)를 건너 용편(龍編)으로 들어가다 / 심전기
단주역(端州驛)에서 두심언, 심전기, 염조은, 왕무경이 벽에 써놓은 시를 보고서 / 송지문
밤에 상강(湘江)에 머물며 / 송지문
등주(藤州)를 떠나며 / 송지문
단주(端州)를 떠나 처음으로 서강(西江)에 들어가다 / 송지문
대유령(大庾嶺)을 넘어가며 / 송지문
6. 고향의 그리움
환주(驩州)의 남쪽 정자에서 꾼 한밤중의 꿈 / 심전기
칠반령(七盤嶺)에서 야숙하며 / 심전기
이른 아침 시흥(始興)의 강구(江口)에서 출발해 허씨(虛氏)의 마을에 도착해 짓다 / 송지문
하늘가의 향수 / 송지문
7. 변방의 노래
북쪽 변방에서 / 심전기
농두수(隴頭水)의 노래 / 심전기
변새로 나아감 / 심전기
변방으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 송지문
임 그리며 / 송지문
8. 아! 이별
오래된 이별 / 심전기
동생과 이별한 후 홀로 남전산장(藍田山莊)에 머물며 / 송지문
옛 벗의 집을 찾다 / 송지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병으로 누워 세상사 끊었는데
아! 그대 만 리 길 떠나는가!
강 다리에서 전송 못하니
강가 나무는 멀리 슬픔을 머금네
이별의 길에서 손초를 추억하고
배 묶으며 굴원을 조문하리
애석하도다! 용천의 보검이
풍성을 떠도는구나
–<두심언을 떠나보내며> 중에서, 심전기
2.
향기로운 산봉우리엔 사찰 깃발 걸려 있고
폭포수는 돌문을 경계로 했다
텅 빈 산에선 고요함에 익숙하고
한밤중엔 적막으로 조용하구나
설법을 처음으로 듣는 것은 새니
마음을 보며 원숭이를 안정시키려 하네
조용히 속세와 떨어져 있으니
어찌 무릉도원과 다르겠는가?
–<청원현의 협산사에 머물며> 중에서, 송지문
3.
깊은 구름 부여잡고 험준한 봉우리 오르니
끝없이 긴 이 길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물 한 굽이에 애간장 한 마디
산 한 겹에 슬픔은 한층 더하네
소나무 개오동나무 무덤은 이미 아득히 머니
형제들은 언제 만날 수 있으리오
하물며 어린아이들 꽉 찬 집안은…
여러 걱정이 마음속에 모이네
하늘은 높아 아뢰기 어려워도 밝은 덕 멀리서 입었건만
도리어 장안 바라보며 축축한 눈물 날리네
–<하늘가의 향수> 중에서, 송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