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7막 19장으로 구성된 1936년 <沈 봉사>에서 심청은 인당수에 빠진 뒤 환생하지 못하고, 대신 장 승상 부인에게 심청의 효성을 전해 들은 왕후가 맹인 잔치를 연다. 심 봉사가 잔치에 오자 왕후는 궁녀에게 심청 행세를 하도록 시키는데, 심 봉사는 딸을 만났다는 기쁨에 눈을 뜨지만 곧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고 자신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이 딸을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 눈을 찌른다.
3막 6장으로 구성된 1947년 <沈 봉사>는 심 봉사가 ≪맹자≫를 읽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가 지닌 출세에 대한 욕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맹자≫에 등장하는 ‘조장’의 우화를 통해 그의 어리석음을 풍자했다. 이 작품에서는 ≪심청전≫에는 등장하지 않는 심청을 사랑하는 송달과 송달을 짝사랑하는 주모 홍녀가 등장하는데, 심청이 죽은 뒤 심 봉사를 위로하고자 두 사람이 꾸민 거짓 연극에 눈뜬 심 봉사가 다시 스스로 눈을 찌르는 결말이다.
심청이 되살아나지 못하는 <沈 봉사>의 현실적인 세계관에서 심청은 효의 상징이 아니라 희생양으로 탈바꿈하며, 그녀의 효성보다 심 봉사의 욕심과 어리석음이 강조된다. 또한 눈을 뜨게 된 심 봉사가 자신의 이기심을 깨닫고 다시 스스로 눈을 찔러 맹인이 된다는 아이러니와 심청이 죽은 뒤 심 봉사 주변 인물들이 그를 돕기 위해 심청 행세를 하지만 그 거짓이 더 큰 비극을 초래하는 상황은 이 작품의 비극성을 강화한다.
1936년 <沈 봉사>에는 <제향날> 등 앞선 작품에서 시도했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장면을 사용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왕후가 선인 중 한 사람이었던 장 봉사에게 심청을 인당수에 빠뜨린 이야기를 듣는 장면에서 무대는 과거로 이동, 극 중 현재와 과거 장면이 교차하는데, 이를 위해 이중무대를 사용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채만식이 무대에서 어떻게 영화적 기법을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200자평
고전소설 ≪심청전≫을 각색한 작품으로, 1936년에 집필한 것과 이를 개작해 1947년에 ≪전북공론≫에 발표한 것 두 종류가 있다. 두 작품 모두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을 대가로 인당수에 빠진다는 ≪심청전≫의 기본 플롯을 차용했다. 하지만 원작의 신화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거부하고 배경을 현실 세계로 한정하면서 비극적 결말을 택하고 있어 주목된다.
지은이
채만식은 1902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났다.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예과에서 수학했으며 조선일보사, 동아일보사, 개벽사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1936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약했다. 1924년 단편 <세길로>를 ≪조선문단≫에 발표해 데뷔한 뒤 290여 편에 이르는 장·단편소설과 희곡, 평론, 수필을 썼다. 다양한 작품에서 식민지 상황 아래 농민의 궁핍, 지식인의 고뇌, 도시 하층민의 몰락 등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근저에 놓여 있는 역사·사회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희곡 26편을 남길 정도로 다작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이 중에는 촌극이나 스케치 같은 짧은 작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여건으로는 공연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아 그중 <예수나 안 믿었드면> 한 편만 1937년 7월 중앙무대에서 공연되었다. 주목할 만한 희곡으로는 <祭饗날>, <沈 봉사>, <당랑의 전설> 등이 있다.
차례
서막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제6막
제7막
附記
<沈 봉사>는
채만식은
책속으로
심 봉사: 그러면 그렇지. (벌떡 일어서서 춤을 덩실덩실 추며) 어허 좋다. 그러면 그렇지, 내 딸 심청이가 죽다니 될 말인가! 흐흐 좋다. 얼씨구 좋다. 심청이가, 우리 딸 심청이가, 출천대효 내 딸 심청이가 죽는대서야 천도가 무심하지, 흐흐 좋다. 얼씨구 좋다. 글쎄 어쩐지 그런 것만 같더라니 거참 혈육이란 할 수 없는 거야! 어쩐지 어데 가서 살어 있는 것만 같더란 말이야! 흐흐 좋다. 얼씨구 좋다. 그런데…. 그런데 말씀입니다. 장 승상 부인, 그래 그 애가 지금 있기는 어데 가 있답니까? 그건 모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