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안타깝게도 그녀가 창녀라니(‘Tis Pity She’s a Whore)>는 영국 극작가 존 퍼드의 대표작으로 1620년대에 집필되어 1633년에 출판되었다. 이탈리아 파르마를 무대로 근친상간이라는 금기를 범한 남매 지오바니와 아나벨라의 이야기를 다룬다. 내용과 제목 모두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충격적이어서 초연 때부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파랑새>를 쓴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이 작품을 불어로 번역해 루브르 극장 무대에 올린 공연이 특히 유명한데, 이때 공연 제목은 ‘아나벨라(Annabella)’였다. 연극인 아르토가 잔혹연극을 주창하면서 예시로 든 바로 그 공연이다.
드물게도 ‘창녀’라는 단어를 곧바로 사용한 제목에서 예고되듯 작품의 내용과 표현은 직설적이고 충격적이다. 남매간의 사랑이라는 소재도 그렇지만, 금기를 깬 대가로 이어지는 폭력, 피가 난무하는 복수 과정은 현대 관객의 눈에도 잔혹하게 비쳐진다. 그러나 남매의 근친상간 자체가 불경하고 끔찍하게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법과 관습이 금지하는 열정을 잠재우기 위해 지오바니와 아나벨라 남매는 무수한 날들을 인내하고 기도하며 보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어찌할 수 없는 더 강력한 힘에 이끌려 서로를 연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쓰디쓴 결과로 세상이 이들 연인을 혐오하고 비난하게 되었을 때, 연인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며 여느 비극의 영웅처럼 종말을 맞는다. 존 퍼드는 이들 남매의 사랑을 인위적인 법과 제도, 종교가 금지한 것으로 그리기보다는 연인에게 이끌리는 자연스러운 열정으로 묘사하며, 연인의 종말을 끔찍한 죄의 대가가 아닌 비극적 숙명으로 그렸다.
대신 이들 연인을 비난하고 정죄하려 드는 귀족 사회와 종교 지도자의 위선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거짓말을 일삼는 수도사,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추기경, 부정과 폭력에 익숙한 귀족, 이들에게 동조하는 귀족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들 연인을 단죄하는 심판자로 행세하기 때문이다. 남매의 금기를 깬 사랑이 파국을 맞는 결말을 비극적으로 그려 낸 동시에 영국 귀족 사회와 종교의 위선을 꼬집은 <안타깝게도 그녀가 창녀라니>를 통해 존 퍼드는 엘리자베스 시대 최후의 위대한 비극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200자평
근친상간이라는 비윤리적인 소재를 비극적인 로맨스로 풀어 간 희곡. 파격적인 소재 선택, 기성 종교와 귀족의 위선을 꼬집는 급진적인 주제, 피가 난무하는 잔인한 장면 설정으로 초연 때부터 논란을 낳았다. 아르토가 잔혹연극 이론을 펼치면서 이 작품을 예시로 들기도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드라마 가운데 드물게 현대에도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다.
지은이
존 퍼드(John Ford, 1586∼1639)는 영국의 재커비언과 캐럴라인 시대의 극작가이자 시인으로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마지막 주요 작가”라고 알려져 있다. 1586년 영국 데본셔 일싱턴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부유한 가문의 토머스 퍼드와 엘리자베스 퍼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601년에서 1602년까지 옥스퍼드 엑세터 대학에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고 1602년 16세에 런던 4개 법학원 중 하나인 미들 템플에 입학해 여러 해 동안 법을 공부했다고 한다. 퍼드는 극작품을 쓰기 전, 1606년에서 1620년 사이에 <사랑의 승리(Love Triumphant)>(1606), <황금 평균(The Golden Mean)>(1613), 그리고 <생명의 선(A Line of Life)>(1620)을 포함해 여러 편의 산문을 썼다. 그가 극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1621년부터인데 1625년부터는 단독으로 집필을 시작해 약 12편의 작품을 썼다. 극작가로서의 명성은 단독으로 집필한 2편의 작품에서 기인하는데 바로 <안타깝게도 그녀가 창녀라니(‘Tis Pity She’s a Whore)>(1625∼1633)와 <상심(The Broken Heart)>(1629)이다. 이 두 작품에서 퍼드는 끔찍하고 선정적인 주제를 솔직한 문체로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진 <레이디의 시련>이 출판된 1639년 이후 퍼드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고 그의 죽음과 관련된 기록도 없다. 1642년, 그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교도 영향 아래 있던 의회가 런던 극장들을 폐쇄하고 그 결과 영국 극문학도 침체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의 작품에는 청교도 혁명을 앞둔 영국 사회의 불안과 기존 가치의 붕괴 양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옮긴이
임도현은 서울시립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리버풀대학교(University of Liverpool)에서 르네상스와 낭만주의 문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동대학교에서 셰익스피어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희곡을 비교분석한 논문 <Shakespeare and Yeats’s Plays: Impact, Influence and Intertextuality>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 논문 <<베니스 상인> : 앤토니오의 우울함>으로 한국셰익스피어학회에서 수여하는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공연을 위한 희곡 번역과 함께 연극평론을 하고 있고 드라마터그로 공연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한 셰익스피어 전공자들로 구성된 원어연극단 ‘Shakespeare’s Kids’의 단원으로 <리처드 3세>, <법은 법대로>, <줄리어스 시저> 등 여러 편의 공연에 배우로 출연했다. 현재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고 대진대학교 창의미래인재대학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글담출판사에서 2015년에 출간된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 : 바른 양육관을 갖고 싶은 부모를 위한 인문육아≫가 있는데 자녀 양육의 해법을 인문학에서 찾으려는 시도로 기획된 프로젝트로, 문학 부분을 맡아서 <자신의 시선에 아이를 가두는 부모에게 셰익스피어가 말을 건네다>라는 제목의 글을 수록했다. 번역서로는 2015년에 동인출판사에서 출간된 셰익스피어 역사극 중 하나인 ≪헨리 4세 1부(Henry 4, Part 1)≫가 있고 2016년 한빛출판사에서 출간된 예이츠의 희곡 ≪마음이 열망하는 곳(The Land of Heart’s Desire)≫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지오바니 : 오빠와 누이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통념들이
저와 저의 영원한 행복에
걸림돌이 되는 건가요?
가령 우리가 한 아버지에게서 났고, 하나의 자궁이
(나의 기쁨에 저주가 있기를!) 우리 둘 모두에게 생명과 탄생을 주었다고 해 보죠.
그러므로 우리는 태생적으로 그만큼 더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닌가요?
-9쪽
소렌조 : 이리 와, 매춘부, 악명 높은 창녀! 너의 불순한 정맥에 흐르는
모든 핏방울이 하나의 생명이라면, 이 칼은 (보이지 않니?) 한 번의 타격으로
그 모든 것을 물리칠 수 있을 텐데! 너, 작부, 어디에도 없는, 유명한 작부
몰염치한 얼굴로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는 너,
파르마에서 너의 헤프고 교활한 매춘에 포주가 될 자가
나 말고는 없었던 것이냐?
네 욕정의 뜨거운 가려움증과 염증,
네 욕정의 흥분은 과식이 될 정도로 충족되어야 한단 말이냐?
-143쪽
지오바니 : 네가 죽게 될 때
그 이유를 말해 줄게. 너의 가장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을 심지어 죽을 때조차 논쟁하는 것은,
내가 가장 영광스러워야 할 이 행위의 수행을
망설이게 할 테니까.
아나벨라 : 그를 용서해 주세요, 하늘이여, 그리고 나를, 나의 죄를! 안녕,
-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