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미소 속의 긴장감, 성실 뒤의 외로움, 보이지 않는 좌절감을 파헤치다
일터와 가정 속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는 혹실드의 감정 사회학
오랫동안 사회학은 사회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을 포착하지 못했다. 우리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정’을 그저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간과해 왔기 때문이다. 앨리 러셀 혹실드는 이러한 상황에 도전하며 감정 사회학의 기틀을 다진 사회학자다. 감정의 사회적 의미를 폭넓게 탐색하면서 우리 일상을 분석하고 해석할 개념을 풍성하게 했다. 혹실드 덕에 사회학은 지평을 크게 넓히고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탁월한 사회학적 상상력과 끈질긴 질적 연구 방법으로 무장한 혹실드는 일상에서 늘 당연시해 왔기에 눈에 띄지 않던 현상들을 깊숙이 파고든다. 아울러 그렇게 발견한 것들을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다. 사회학자 대부분이 젠더에 따른 역할 분업을 당연시하며 바라볼 때, 혹실드는 항공사 여승무원의 포장된 미소 아래 숨겨진 긴장을, 이주 가사 도우미의 성실함 뒤에 숨어 있는 외로움과 고독을, 여성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드러나지 않은 좌절을 예리한 시선으로 간파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은 감정노동, 일과 가족 사이 첨예한 긴장, 글로벌리제이션과 맞물린 돌봄노동의 연쇄 등을 직시하게 되었다.
이 책은 사회학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찾으려 분투한 혹실드의 학문적 여정을 “2교대제”, “시간 압박”, “글로벌 돌봄 연쇄”, “아웃소싱 자아” 등 열 가지 키워드로 살핀다. 이 개념들은 사회학계를 넘어 일상 속 대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정책 담당자들에게 다채롭게 활용되고 있다. 그 누구보다 우리 삶에 가깝게 다가온 사회학자를 만나 보자.
앨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 1947∼ )
20세기 후반부터 학계의 주목과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온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로, 감정노동 연구의 선구자이자 일ᐨ가족 넥서스 연구의 대표자다. 현재 버클리 대학원 사회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대표작 ≪감정노동≫(1983)으로 미국사회학회에서 찰스쿨리상과 C.라이트밀스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2008년에는 ≪2교대제≫, ≪시간 압박≫, ≪글로벌 여성≫을 출판한 공로로 제시버나드상을 수상했다. “질문의 프레임을 구성하고 분석의 통찰력을 더하는 데 창의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사회학자이자, “단어와 문장 속에 패러다임 전환적 통찰을 능숙한 솜씨로 담아내는” 사회학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감정노동≫, ≪2교대제≫, ≪시간 압박≫ 그리고 ≪자기 땅의 이방인들≫은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혹실드 덕에 우리 일상을 분석하고 해석할 개념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졌고, 그녀의 치밀하고 생생한 질적 연구 덕에 글로벌 시장 자본주의부터 가족의 일상까지 치밀하고 촘촘한 분석이 가능해졌다.
200자평
앨리 러셀 혹실드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며 탁월한 상상력으로 사회학의 지평을 크게 넓힌 사회학자다. 오랫동안 간과되어 온 감정의 사회적 의미에 주목해 일상을 분석하고 해석할 개념을 듬뿍 마련했다. 이 책은 감정노동, 일과 가족의 관계, 이주 여성, 트럼피즘 등을 세밀히 연구한 혹실드의 학문적 여정을 열 가지 키워드로 살핀다. 늘 당연시해 왔기에 눈에 띄지 않던 현상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만날 수 있다.
지은이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에머리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족 사회학자로, 혹실드의 세계에 흠뻑 매료되어 “감성 사회학 이론에 대한 탐색적 연구”(2003)와 “일상의 해부를 위한 혹실드의 개념 도구 탐색”(2015)을 발표했다. 현재 신세대의 성·사랑·결혼을 주제로 집필 중이며, 한국 사회의 맥락에 혹실드의 이론과 개념 틀을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단독 저서로는 ≪사랑을 읽는다≫(1998), ≪인간행위와 사회구조≫(2018)가 있고, 공저로는 ≪오늘의 사회학 이론가≫(2015), ≪문화로 읽는 페미니즘≫(2020), ≪가족과 친밀성의 사회학≫(2023, 개정판)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가족난민≫(2019)이 있다.
차례
감정노동 연구의 선구자, 앨리 러셀 혹실드
01 감정노동
02 2교대제
03 시간 압박
04 친밀한 삶의 상품화
05 글로벌 돌봄 연쇄
06 아웃소싱 자아
07 일ᐨ가족 넥서스
08 정체된 혁명
09 자기 땅의 이방인들
10 공공 사회학
앨리 러셀 혹실드의 저술들
책속으로
혹실드의 질적 연구가 빛을 발하는 또 다른 대목은 맞벌이 부부의 가사 및 양육 분업 유형에 따라 미묘하게 작동하는 “감사의 경제(economy of gratitude)”를 포착해 낸 데 있다. “누가 누구를 향해 감사함을 느끼는가?”, “무엇 때문에 감사함을 느끼는가?” 등의 이슈는 부부 사이에 표현하기 어려운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의외의 순간에 뜻밖의 협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부인과 남편이 젠더 이데올로기를 둘러싸고 얼마나 긴밀한 제휴를 이루고 있는지, 더불어 감사의 경제 속에서 공정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는, 안락한 결혼 생활 및 행복도에 대한 인식을 예측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_“02 2교대제” 중에서
혹실드에 따르면 중요한 회의 참석을 취소하고 집에 돌아가 딸을 돌보기로 결정하기까지 엄마가 겪어야 하는 갈등과 딸의 간절한 바람, 잠시라도 더 머물다 가길 원하는 딸을 위해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아야 하는 아빠의 초조함, 자녀에게 포장 도시락을 사다 주면서 자신은 헌신적 부모가 아니라는 생각에 밀려오는 씁쓸함 등,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수많은 도전이 오늘날 중류층 맞벌이 부모의 “경쟁 영역(contested terrain)”을 형성하고 있다. 마치 작업장에서 고용주와 근로자 사이에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다양한 협상과 미묘한 밀당이 진행되듯 말이다.
_“03 시간 압박” 중에서
혹실드의 작업은 실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에 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문제적 집단을 연구하는 것은 분명 꺼려지는 일이고 혹실드 스스로도 언급했듯이 사회과학자 자신에게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동안 트럼피즘의 부상이란 수수께끼를 풀려는 시도는 대체로 우파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우파 정당에 투표하는 사회 집단을 향해 분노와 경멸을 표명하는 데 머물곤 했다. 반면 티 파티와 트럼피즘의 부상을 미국적 이형(異形, variant) 속에서 포착하고자 했던 혹실드의 시도는 편파적 색채를 걷어 냄으로써 기존의 도덕적 굴레를 현명하게 피해 갔다.
_“09 자기 땅의 이방인들” 중에서
혹실드야말로 “사람”을 사회학의 세계 속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데 일등 공신이었음을 필히 기억해야 한다. 다수의 사회학자가 “제도” 차원에서 결혼에 접근하는 동안, 혹실드는 누가 빨래를 걷고 누가 쓰레기를 버리는지, 일상의 소소한 이슈를 둘러싸고 식탁 위에서 진행되는 협상에 관심을 집중했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젠더에 따른 역할 분업을 당연시하며 쿨하게 바라볼 때, 혹실드는 항공사 여승무원의 포장된 미소 아래 숨겨진 긴장을, 이주 가사 도우미의 성실함 뒤에 숨어 있는 외로움과 고독을, 여성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드러나지 않은 좌절과 폐쇄 공포증을 예리한 시선으로 간파했다.
_“10 공공 사회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