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계 연극사에서 입센은 근대극의 아버지로 불리며 여전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페미니즘 극의 시초가 된 <인형의 집> 이후 사회문제를 주제로 사회극을 연속해 발표하던 입센은 1884년 <들오리>를 기점으로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었다. 입센은 초기 거칠고 사실적인 사회 비판에서 벗어나 후기로 갈수록 상징주의와 은유, 시적인 세계로 경도되어 간다. 〈어린 에욜프〉(1894)는 입센의 후기 산문 희곡 열두 편 중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이런 극작 스타일 변화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결혼 10년 만에 알메르스가 글쓰기를 빌미로 10주간의 도보 여행길에 올랐다. 아내와 아들 곁을 떠나 밖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산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는 거대한 빙퇴석 사이에서 무한한 고독을 만끽하고, 일출과 산봉우리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과 영혼의 교감을 하는 가운데 거대한 호수의 황량한 기슭에 도달한다. 호수를 건너려 하지만 거기엔 사람도 배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산기슭을 따라 우회하기로 한다. 그러다 이내 길을 잃고 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죽음이 길동무처럼 자신과 동행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밤새 산길을 헤매다 새벽이 되어 마침내 호수 반대쪽 기슭에 안전하게 도착한다. 그가 겪은 일은 사실상 고대의 원형적 꿈과 같은 것으로 중대한 결정, 새로운 삶의 차원으로 이행, 자아의 영적 죽음, 그리고 재생과 부활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런 그가 덧없는 열정에서 벗어나 책임과 희망에 대한 새로운 포부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여기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입센은 〈어린 에욜프〉를 탈고하도고 두 달이 지나서야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사이 〈어린 에욜프〉는 대대적인 수정을 거쳤다. 연극 평론가이자 입센 번역가인 윌리엄 아처는 이 수정을 거의 재창작에 가까운 것으로 간주한다. 애초엔 그저 ‘평범한 아이’에 대한 ‘평범한 아내’의 질투를 탐구하는 내용이던 것이 수정 이후 복합적인 인간 심리에 기반한 복잡한 사건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희곡의 근간을 이루는 ‘공포’와 ‘고양’의 정서 역시 입센이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구현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에욜프〉는 입센 극작술의 한 전형으로서 학계와 비평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에 비하면 무대화 사례는 적은 편이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합리적인 해석과 과감한 실험을 가능케 한다. 오늘날 다양한 시도로 미학적 잠재력을 입증하는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로도 각색되었다.
200자평
입센은 근대극의 아버지로 불리며 여전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페미니즘 극의 시초가 된 <인형의 집> 이후 거칠고 사실적인 사회 비판 드라마를 선보이던 입센은 〈들오리〉를 기점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다. 〈어린 에욜프〉는 입센 후기 산문 희곡 열두 편 중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이런 극작 스타일 변화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은이
헨리크 입센(Henrik J. Ibsen, 1828∼1906)
1828년 3월 20일 노르웨이의 수도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에서 남서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작은 항구도시 시엔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집이 파산해 열다섯 살까지 약방에서 도제로 일했다. 독학으로 대학 진학을 위한 수험 준비를 하는 한편, 신문에 만화와 시를 기고했다. 희곡 <카틸리나>(1848)를 출판했으나 주목받지 못하고 그 후 <전사의 무덤>(1850) 상연을 계기로 대학 진학을 단념하고 작가로 나설 것을 결심했다. 1851년 국민극장 상임작가 겸 무대감독으로 초청되었는데, 이때 무대 기교를 연구한 것이 훗날 극작가로 대성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1857년에 노르웨이 극장으로 적을 옮긴 뒤 최초의 현대극 <사랑의 희극>(1866)과 <왕위를 노리는 자>를 발표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목사 브란을 주인공으로 한 대작 <브랑>(1866)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았다. 이후 <페르 귄트>(1867), <황제와 갈릴리 사람>(1873) 등에서 사상적 입장을 확고하게 굳혔다. 이어 사회극 <사회의 기둥>(1877), <인형의 집>(1879) 등을 발표했다. 특히 <인형의 집>은 여주인공 노라가 남성에 종속된 여성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려는 과정을 묘사해 여성 해방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00년 뇌출혈로 첫 발작을 일으킨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1906년 78세로 사망했다.
옮긴이
조태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同) 대학원을 졸업하고 앙토냉 아르토의 연극 이론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객원교수를 거쳐 배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2년 미국 루이지애나 대학교(ULL) 커뮤니케이션학과 방문교수를 지냈다. 연극 이론 및 극작술, 공연 미학에 관련한 논문과 칼럼을 여러 편 썼으며, 고등학교 인정 교과서 ≪연극≫(천재교과서, 2018)을 공동 집필했고, <골고다의 딸들>(한웅출판, 1992>, <바람의 전쟁>(열린세상, 1996> 등의 번역 소설과 번역 희곡 <유령소나타>(지만지, 2014)와 <바다에서 온 여인>(지만지, 2015), <로칸디에라>(지만지, 2016),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지만지, 2018), <헤다 가블레르>(지만지, 2018), <건축가 솔네스>(지만지드라마, 2019), <루나사에서 춤을>(지만지드라마, 2020)>, <로스메르스홀름>(지만지드라마, 2020)을 펴냈다. 또한 공연 창작 현장에서 극작가 및 연출가,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하면서 연극, 뮤지컬, 오페라, 무용 등 다양한 공연 장르를 넘나들며 다수의 작품에 참여했고 현재 극단 인공낙원 대표, 극단 하땅세 상임 연출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희곡 <창밖의 앵두꽃은 몇 번이나 피었는고>, <3cm>(지만지드라마, 2021), <푸른 개미가 꿈꾸는 곳> 등이 있으며, 연극 <유령소나타>, <루나사에서 춤을>, <목소리>,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 <애랑연가>, <규방난장>, 오페라 <류퉁의 꿈> 등을 연출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쥐 부인 : (문가에서 무릎을 굽혀 인사하며) 실례지만… 이 댁에 집안을 갉아먹는 녀석이 있을까요?
알메르스 : 우리 집에? 아뇨, 없는 거 같은데.
쥐 부인 : 네, 만약 있다면 주인님을 도와 그놈들을 몰아내는 기쁨을 좀 누려 볼까 싶어서요.
리타 : 네, 네,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하지만 저희 집엔 그런 게 없네요.
쥐 부인 : 그것참 아쉽게 됐네요. 제가 지금 막 한 바퀴 돌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런데 언제 또 이 지역에 오게 될지 몰라서… 아이고, 피곤하다!
18-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