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후설은 제자들에게만 알려진 자신의 현상학에 대한 구상을 일반 대중에게 간명하게 전달하고자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발표했다. 그는 제1부에서 ‘자연주의철학’, 제2부에서 ‘역사주의와 세계관철학’을 비판한 뒤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곧 ‘현상학’을 제시한다.
자연주의는 모든 존재를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수량화해 규정하고 의식과 이념을 자연화(사물화)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증명되지 않는 것을 모두 부정하는 방법론적 편견에 빠져 있고, 보편타당한 이념적 규범을 우연적인 경험적 사실을 통해 정초하려 하기 때문에 불합리하며, 이념을 부정하는 이론 역시 객관적 보편타당성을 요구하는 이념적인 것이므로 자기모순이다. 또한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만 간주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서 가치와 의미의 문제가 소외된 삶의 위기를 초래한다.
역사주의는 정신적 삶을 지배하는 동기들을 추후로 체험함으로써 그때그때 정신 형태들의 본질과 발전을 역사적 발생론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치 평가의 원리들이 결국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역사가가 단지 전제할 뿐 정초할 수는 없는 이념적 영역에 놓여 있기 때문에, 사실과 이념을 인식론적으로 혼동한 오류이며, 이것을 철저히 밀고 나가면 결국 극단적인 회의적 상대주의가 될 뿐이다.
세계관철학은 세계에 관한 경험과 지식인 세계관을 각 시대의 정신으로 간주하고, 확고한 실증적 개별과학에 근거하므로 학문적 철학이라고 자임한다. 그러나 세계관철학이 강조하는 세계관은 각 시대에 엄밀한 학문을 불완전하게나마 현실화한 것도 아니며, 진리를 단순한 사실들의 어설픈 혼합물로 해체한 것, 즉 지적 성실성이 결여되고 보편타당성을 상실한 것으로, 결국 비이성적인 역사주의적 회의론의 산물일 뿐이다.
이러한 방법론이 초래한 인간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후설은 이론적 앎의 자기 책임과 실천적 삶의 의지 결단을 아우르는 현상학을 제시한다. 기존 철학과 모든 편견에서 벗어나 의식에 직접 주어진 사태 자체를 직관해 ‘사태 자체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200자평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이 현상학의 기본 이념을 명료하게 밝힌 책이다. 그는 제자들에게만 알려진 현상학에 대한 구상을 일반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고자 이 책을 썼다. 인문과학의 여러 분야뿐 아니라 사회과학과 문화 예술 전반에 다양하게 응용되면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후설 현상학의 논지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초판에서 처음 번역의 오역과 문제점을 바로잡으면서 주석을 풍부하게 달았고, 이번 개정판에서는 원서를 다시 대조하며 역자가 학계에서 그간 바꾼 용어 등을 반영하고 문장을 전반적으로 다듬었다.
지은이
현상학(Phänomenologie)의 창시자. 독일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할레 대학의 강사, 괴팅겐 대학의 강사와 교수,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은퇴 후 더욱 왕성한 의욕과 새로운 각오로 연구와 강연에 매진하면서 죽는 날까지, “철학자로 살아왔고 철학자로 죽고 싶다”는 자신의 유언 그대로, 진지한 초심자의 자세로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수행한, ‘철학자’ 자체였다.
그는 생전에 ≪산술철학≫(1891), ≪논리연구≫(1900∼1901),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1911),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제1권(1913), ≪형식 논리학과 선험 논리학≫(1929), ≪데카르트적 성찰≫(1931),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1936)을 남겼다.
그가 남긴 방대한 유고(유태인 저서 말살 운동으로 폐기될 위험에서 구출된 약 4만 5000장의 속기 원고와 1만여 장의 타이프 원고)는 벨기에 루뱅대학의 후설 아카이브(Husserl-Archiv)가 1950년부터 후설 전집을 출간한 이래 2005년 제38권까지 계속되고 있다.
옮긴이
이종훈(李宗勳)은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춘천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와 한국현상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현대의 위기와 생활세계≫(동녘, 1994), ≪아빠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현암사, 1994, 2006) 1∼3권, ≪후설 현상학으로 돌아가기≫(한길사, 2017) 등이, 옮긴 책으로 ≪시간의식≫(한길사, 1996),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한길사, 1997), ≪경험과 판단≫(민음사, 1997), ≪데카르트적 성찰≫(한길사, 2002),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한길사, 2007) 1∼3권, ≪형식논리학과 선험논리학≫(한길사, 2019), ≪현상학적 심리학≫(한길사, 2013), ≪논리연구≫(민음사, 2018) 1∼3권, ≪수동적 종합≫(한길사, 2018), ≪제일철학≫(한길사, 2020) 1∼2권, ≪상호 주관성≫(한길사, 2021) 등이 있다.
차례
서론
제1부 자연주의 철학
제2부 역사주의와 세계관 철학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철학자에게는 공동정신(Gemeingeist)의 발견이 자연(Natur)의 발견만큼이나 중요하다. 실로 일반적 정신생활에 몰두하는 것은 자연에 몰두하는 것보다 더 근원적이고, 그래서 보다 기초적인 탐구 자료를 철학자에게 제공한다. 왜냐하면 본질학(Wesenslehre)인 현상학의 영역은 개인적 정신으로부터 일반적 정신의 전체 영역에로 곧바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104~105쪽
무엇보다 철학은 ‘자신의’ 절대적으로 명석한 출발점, 즉 자신의 절대적으로 명석한 문제들과 이 문제들의 고유한 의미에서 미리 지시된 방법들과 가장 밑에는 절대적으로 명석하게 주어진 사태들의 연구 영역을 획득할 때까지 결코 휴식하면 안 된다. ‘어디에서도’ 철저한 무편견성(無偏見性)을 포기하면 안 되며, 가령 처음부터 이 ‘사태들(Sachen)’을 경험적 ‘사실들(Tatsachen)’과 동일하게 확인해도 안 되고, 이렇게 중요한 의미에서 직접적 직관 속에 절대적으로 주어진 이념(Ideen)에 대해 맹목적 태도를 취해도 안 된다.
-137쪽
그러므로 우리 시대가 성취해야 할 가장 위대한 발걸음은 올바른 의미에서 철학적 직관에 의해 ‘현상학적 본질 파악’의 무한한 연구 영역을 열고, 간접적으로 기호화하거나 수학화하는 어떤 방법도 사용하지 않고, 또한 추론과 논증의 장치도 사용하지 않은 채, 가장 엄밀하고도 ‘모든’ 장래의 철학에 대해 결정적인 풍부한 인식을 획득하는 학문의 길을 여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 138~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