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간은 자기가 발명한 기술을 통해 새로운 자기를 발명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새롭게 읽는 기술철학의 고전
보통 우리는 기술을 고찰할 때 유용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쓸 만한지, 다루기 쉬운지, 잘 작동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기술도구주의 관점이다. 반면 에른스트 카프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카프에 따르면 모든 기술은 인간 신체의 복제, 즉 객관화·외부화된 인간이다. 인간은 자기 밖의 자기, 곧 기술을 경유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기술이 인간을 통해 진화하듯 인간은 기술을 통해 도야한다.
이 책은 기술과 인간의 공진화 관계를 밝히며 근대 기술철학의 초석을 세운 카프의 사상을 요약·소개한다. 손이나 눈 같은 신체 기관이 기술로 복제되는 과정인 ‘기관투사’부터, 인간과 기술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 주는 ‘형식적 유사성’과 ‘추상적 유사성’, 기술철학 관점으로 바라본 ‘문화’와 ‘언어’와 ‘국가’ 개념을 간추려 설명한다.
새롭고 놀라운 기술이 거의 날마다 출시되고 있지만 정작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방기되는 상황이다. 기술은 쓰이거나 혹은 버려지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늘 상호 작용하는 대상이다. 카프의 기술철학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여전히 유의미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른스트 카프(Ernst Kapp, 1808∼1896)
기술철학을 최초로 체계화한 독일의 철학자다. 고전문헌학을 전공하고 김나지움 교사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이민해 농장과 신문사를 경영했다. 이후 다시 독일로 돌아와 사강사로 일하며 기술철학 연구에 매진했다. 자연철학과 기술철학이라는 두 기둥으로 자신의 학문을 정립했는데, 카프에 따르면 이 둘은 모두 인간의 자기 인식에 이바지한다. 저서로는 ≪아테네 선박에 관하여≫(박사학위논문, 1830), ≪비교 일반 지질학≫(1845), ≪구성된 독재체제와 헌법적 자유≫(1849), ≪기술철학 개요≫(1877)가 있다. 주창 초반에는 활발히 논의되다가 이후 거의 망각되기에 이르렀던 카프의 독특한 기술철학 관점은 현재의 기술 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00자평
카프는 철학 분과로서 ‘기술철학’을 처음 주창한 사상가다. 카프에 따르면 모든 기술은 인간 신체의 복제다. 기술은 객관화된 인간 신체며, 인간은 기술을 경유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객관화된 자기를 통해 자기 인식에 이르는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 기술철학의 골자다.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지은이
조창오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다. 중점 연구 분야는 예술철학과 기술철학이다. 헤겔과 베냐민의 예술철학, 분석 미학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으며, 이외에 사회철학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는 기술철학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은 ≪현대의 우울증적 구성과 상징, 헤겔의 현대비극 개념≫(2014)이다. 논문으로 “‘고향 없음’의 삶에 관한 철학적 반성”(2019), “슈미트의 낭만주의 개념과 미적 주권”(2017), “슈미트와 벤야민의 종말론적 사유”(2016), “셸링의 ‘비극적인 것’의 철학”(2015), “단토의 예술 존재론”(2015), “안더스의 기술 개념과 인간 향상”(2013), “카시러의 기술 개념과 그 현재성”(2013)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기술철학 입문≫(2021),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2021), ≪늙어감에 관하여≫(2019), ≪박물관 이론 입문≫(2018)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예술의 종말과 현대예술≫(2019)이 있다.
차례
경험과 이론의 종합
01 자기 인식
02 문화
03 기관투사와 공진화
04 손 도구와 형식적 유사성
05 사지척도와 추상적 유사성
06 시각·청각 장비와 무의식적 기관투사
07 크레인, 증기기관, 전신
08 기계 기술과 황금 비율
09 언어
10 국가
책속으로
카프가 ≪기술철학 개요≫에서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명제는 ‘정신의 모든 활동은 인간이 자기 신체를 복제하는 활동이며, 그 결과물은 복제된 자기 신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신체를 객관 세계 속에 그대로 복제하는 활동을 수행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외부 세계에 자신의 분신, 인조인간을 제작하려 한다. … 카프가 보기에 인간의 문화사는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자기 신체를 모델 삼아 자기 바깥에 복제물을 제작해 온 과정이다. 학문 활동을 포함해 인간 활동 모두는 무의식적 혹은 자연 발생적 복제 작업이다. 자연과학이 낮은 수준에 불과했을 때에도 인간은 잘 알지도 못한 채 자기 신체 구조나 그 작동 방식을 복제했다. 카프는 여러 기술 제작물을 근거로 이를 증명하려 한다.
_ “경험과 이론의 종합” 중에서
인간은 단순히 결여를 보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술과 더불어 변화하는 자신을 강화·확대하기 위해 기술을 제작한다. 자기 보충이 아니라 자기완성, 자기 확대, 이를 통한 자기 인식이 기술 제작의 근본 의미다. 기술을 제작하게 되면 그에 맞춰 인간은 공진화한다. 즉 기술은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상호작용해야 할 상대방이다. 기술을 통해 다른 능력치를 획득한 인간은 새롭게 변화한 자신의 기관을 다시 복제하고, 이로써 단순히 힘을 쓰던 과거에서 벗어나 힘과 지성의 균형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기술과 적절히 관계 맺어야 한다.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확대하는 만큼 인간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_ “03 기관투사와 공진화” 중에서
카프는 지금까지 인간이 다루어 온 도구와 기계가 점점 더 정신화한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정신화’한다는 것은 신체 기관 또한 정신화의 정도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는 의미다. … 손 도구에서 증기기관, 전신망으로 발전하며 기술은 거친 신체 기관의 복제에서 신경망 속 전기 신호 전달의 복제에 이르렀다. 전기 신호는 분명히 물리적 현상이며, 이를 복제하는 것은 손이나 발을 복제하는 것과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전기 신호는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에서 전기 신호는 일정한 ‘생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전기 신호를 복제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복제하는 것이다. 전신은 정보 전달, 즉 우리의 생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물리적 복제와 다르다. 이 점에서 카프는 전신을 통해 기술적 대상이 “정신의 투명한 형식 영역”을 복제하는 것으로 나아간다고 규정한다.
_ “07 크레인, 증기기관, 전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