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르토가 남긴 유일한 연극 이론서
아르토의 잔혹연극론은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과 반대 지점을 향한다. 관객의 감정이입을 극도로 경계하는 서사극과 달리 잔혹연극은 오히려 관객과 무대, 배우의 몰아일체를 향해 간다. 이를 위해 객석과 무대의 구분도 없애 버린다. 이 책은 이런 아르토의 연극 이론을 1차 정리한 편집본으로, 1931년부터 아르토가 여러 매체에 기고해 온 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가운데서 연극에 대한 텍스트만 발췌해 모은 것이다. 1936년, 이 책이 출간된 뒤 아르토는 정신 착란으로 병원에 수용되어 자신의 연극 이론을 본격적으로 체계화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연극과 그 이중≫은 아르토가 남긴 사실상 유일한 연극 이론서인 셈이다. 이 책에 인용된 두 차례의 “잔혹연극” 선언을 통해 아르토가 밝힌 잔혹연극 개념과 지향은, 그럼에도 후대에 계승되어 현대 연극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 현란했던 연극계의 역동 가운데서 아르토의 ‘잔혹연극’은 특히 베케트, 그로토프스키, 보알 등으로 이어지며 오늘날 교육과 심리 치료 분야에서도 대안적 방법론과 길을 제시한다.
의식을 깨우기 위한 충격요법 ‘잔혹연극’
아르토가 처음 ‘잔혹연극’을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곧장 피로 빨갛게 물든 무대, 살인과 근친상간이 난무하는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무대를 떠올렸다. 여전히 ‘잔혹연극’은 무섭고 잔인한, 피비린내 나는 무대 자체로 연결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무대는 잔혹연극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의 의식을 두드리는 가장 초보적인 수단일 뿐 잔혹연극의 전부는 아니다. 아르토도 사람들이 “잔혹”이란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아르토는 자신이 추구하는 연극을 “잔혹연극”이라 불렀을까? 이 책 서문인 ‘연극과 문화’에서 그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아르토에게 사회를 지탱하는 문화란 한낱 나태한 인습일 뿐 삶의 목적, 본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 하면 연극이 문화, 문명이란 이름의 단단한 벽을 허물고 삶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아르토의 고민은 거기에 있었다. 이를 위해 연극 무대는 문화와 문명을 단호히 거부해야 했다. 문화와 문명을 부정하는 무대는 그 속에 머문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잔혹’하게 비치는 무대는 바로 문화,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의 의식을 두드려 깨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충실한 번역과 전문적인 해설로 출간
아르토와 잔혹연극에 대한 오해와 오독은 여전하다. 국내 아르토 전공자 1호인 한무 박사가 이를 불식하고자 30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저술 ≪아르토와 잔혹연극≫을 펴낸 지 꼭 10년 만에 아르토의 유일한 연극 이론서이자 대표 저작인 ≪연극과 그 이중≫을 출간한다. 아르토 전문가인 이선형 교수가 번역에 나섰다. 이선형 교수는 원전을 충실히 우리말로 옮기고 원고지 300매에 이르는 전문적인 해설을 덧붙여 아르토와 잔혹연극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돌이켜 보면 역자의 긴 학문적 여정은 아르토와 함께였던 것 같다. 대학원에 진학해 프랑스 연극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은 뒤 처음 아르토를 만났다. ≪연극과 그 이중≫을 읽었을 때 너무나 생소하고 어려웠다. 지금 그 생소함은 사라졌으나 어려움은 여전하다. (중략)
출판사로부터 ≪연극과 그 이중≫ 번역 의뢰를 받고 마음이 잠시 복잡해졌다. 한 번은 꼭 번역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오래전에 포기한 상태였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고향 친구를 소환하는 느낌이었다. 번역을 시작하고 곧장 아르토에 빠져들었다. 정독을 해야 하니 이전에 대충 넘어갔던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중략)
아르토와 다시 만나 어려운 문체와 씨름하면서도 한쪽에서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번역을 한다고 해서 꼭 원작자를 추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자의 정독이 한편으론 새로운 세계로의 시각을 열어 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연극과 그 이중≫의 번역은 역자에게 연극과 연극치료에 있어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옮긴이 서문 중에서
200자평
20세기 미국의 지성 수전 손택은 현대 연극을 아르토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연출가로, 배우로, 극작가로 활약했던 연극인 아르토는 조명, 의상, 음악, 몸짓이 어우러진 발리 연극에서 연극의 이상을 본다. 이후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기성 연극과 확연히 구분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연극론을 피력했다. 그리고 이 글들을 모아 편집한 ≪연극과 그 이중≫에서 이를 ‘잔혹연극’이라 명명했다. 현대연극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극 운동으로 평가되는 ‘잔혹연극’은 이후 전위극, 부조리극에 영향을 미쳤다.
국내 아르토 전공자 1호 한무 박사가 30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저술 ≪아르토와 잔혹연극≫을 펴낸 지 꼭 10년 만에 아르토의 유일한 연극 이론서이자 대표 저작인 ≪연극과 그 이중≫을 출간한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아르토 연구로 D.E.A.를 취득한 이선형 교수가 번역하고 해설했다.
지은이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는 프랑스의 시인, 배우, 연출가, 연극 이론가, 화가, 수필가, 데생 화가 등으로 알려져 있다.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잔혹연극을 창시했다. 저서로는 ≪신경 측정계(Le Pèse-Nerfs)≫(1927), ≪엘리오가발 혹은 왕관을 쓴 무정부주의자(Héliogabale ou l’Anarchiste couronné)≫(1934), ≪연극과 그 이중(Le Théâtre et son double)≫(1938), ≪신의 판단과 결별하기 위하여(Pour en finir avec le jugement de dieu)≫(1948) 등이 있으며 그로토프스키, 리빙 시어터 등 현대의 실험연극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옮긴이
이선형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김천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동화 ≪곰팡이 빵≫(2010), ≪용기 없는 감잎≫(2012), ≪셈 아저씨≫(2015)를 출간했으며, ≪연극·영화로 떠나는 가족치료≫(공저, 2010), ≪프랑스 현대연극의 이론과 실제≫(2007), ≪예술 영화 읽기≫(2005), ≪연극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2013) 등이 있고, 역서로는 ≪영상 예술 미학≫(2009), ≪공연 예술의 기호≫(2008), ≪이미지와 기호≫(2004), ≪지하철의 연인들≫(2003), ≪각색, 연극에서 영화로≫(2002) 등이 있다. 연극을 통한 치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차례
옮긴이 서문
1. 서론 : 연극과 문화
2. 연극과 페스트
3. 연출과 형이상학
4. 연금술적 연극
5. 발리 연극에 대해
6. 동양 연극과 서양 연극
7. 걸작과의 결별
8. 연극과 잔혹
9. 잔혹연극(제1차 선언)
10. 잔혹에 대한 편지
11. 언어에 대한 편지들
12. 잔혹연극(제2차 선언)
13. 감정의 운동 경기
14. 두 개의 단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앙토냉 아르토 연보
찾아보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페스트는 잠자고 있는 이미지와 잠재적 무질서를 취하다가 갑자기 극단적인 제스처에 이를 때까지 밀어붙인다. 연극 또한 제스처들을 취하고 이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페스트처럼 연극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가능한 것들의 잠재성과 물질화되어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다시 연결한다. 연극은 머리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인해 염증을 일으키는 충동들, 체액의 소환, 혈액의 멈춤, 휴지, 침묵의 충격으로 작용하는 전형적 상징들과 형상들을 재발견한다. 연극은 이 힘들을 통해 우리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모든 갈등을 되살리고, 이 힘에 우리가 상징으로 떠받드는 이름을 부여한다. 여기 우리 앞에 불가능한 혼란 속에서 상징들이 서로 싸우면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시작되고, 무대에서 벌어진 시가 현실화된 상징을 제공하고 열기를 북돋울 때 비로소 연극은 존재할 수 있게 된다.
-42-43쪽
나는 연극이 바뀌기 위해서는 문명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부류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가능한 한 가장 어렵고 최상의 의미에서 사용된 연극은 사물의 형성과 그 양상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두 개의 신경의 자기장, 두 개의 살아 있는 중심, 두 개의 열정적인 표현이 무대에서 만나도록 하는 것은 완전하고 진실하고 결정적인 그 어떤 것이다. 이는 삶에서 시간을 초월한 방탕 속에서 두 겉모습이 서로 만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내가 잔혹연극을 제안하는 이유다. 내가 ‘잔혹’이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모든 사람이 곧장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잔혹연극’은 무엇보다도 연극이 어렵고 잔혹한 것임을 뜻한다. 잔혹은 공연 차원에서, 서로의 몸을 자르거나, 인체 모형을 톱으로 잘라 내거나, 아시리아 황제들이 잘라 낸 인간의 귀와 코를 주머니에 담아 우체국으로 보내는 것처럼 서로 반목하여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이 우리에게 대항하여 실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고 필연적인 어떤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 하늘은 언제든지 우리 머리 위에 떨어질 수 있다. 연극은 무엇보다도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144쪽
잔혹연극은 열정적이고 발작적인 삶의 개념을 연극에 복귀시키기 위해 창조되었다. 이 연극이 근거로 삼고자 하는 잔혹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무대 요소의 극단적 응축성, 폭력적인 엄격함의 의미에서다.
-225쪽, <잔혹연극 제2차 선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