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내각제 옹호론의 고전, 왜 150여 년 전의 《영국 헌정》을 읽는가?
월터 배젓의 《영국 헌정》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 헌정 체제에 대한 역사상 가장 탁월한 해설서로서, 내각제 옹호론의 고전이다. 배젓은 내각, 국왕, 귀족원 그리고 평민원을 빅토리아 시대의 4대 헌정 기관으로 꼽았다. 전통적 설명에서의 국왕, 귀족원, 평민원을 꼽는 3기관설을 배격하고 내각을 헌정 기관에 더하며 그것도 앞머리에 내세운 것이다. 배젓은 영국 헌정체에서 의회와 행정부는 내각이라는 “연결 고리”에 의해 밀접하게 연결되었고 의회 주권과 더불어 최고 통치 기관으로서 내각이 당시 헌정 체제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엄존에도 불구하고 배젓은 영국 헌정 체제를 “위장한 공화정”이며 내각제 정부라고 규정한 다음 내각제에 대한 찬양으로 나아갔다. 그는 내각제가 “하나로 형성된 여론, 존경스럽고 유능하며 규율 잡힌 입법부, 잘 선택된 행정부, 서로 방해하지 않고 협력하는 의회와 행정부의 관계”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했으며, 배젓의 내각제 찬양은 미국 대통령제와의 비교를 동반하여 후자의 결점을 지적하는 데로 이어졌다.
그는 영국 헌정을 논하기 위해 설정한 주제, 즉 내각·국왕·귀족원·평민원의 네 기관과 각료 경질 등 실제 정치 행위들에 대해 경험적으로 접근했다. 기존 저술들을 이론에 치우쳤고 이론에만 기반한 세련성을 지녔다고 비판하며 이념이나 이론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의식적으로 거부했다. 영국 헌정의 실제 작동을 설명하기로 작정했던 것인데, 이는 헌법전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헌정 체제를 조망하는 효과적 방법으로 드러났다. 또한 그는 기능을 중심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영국 헌정이 훌륭하게 운영된다는 판단에서 당시 체제 전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로 나아갔다. 이는 6년 전에 발간된 밀(J. S. Mill)의 영국 헌정에 대한 평가가 대의 정치 원리를 기준으로 삼아 비판과 개혁성을 띤 것과 대조된다. 그가 행한 논의의 독창성은 정치 분석에서 인간의 감성과 성향, 그리고 국민성 등 소위 비이성적 요소를 중요한 설명 인자로서 취급한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충성심과 존경심, 관습을 정치의 중요 요소로 파악하고 영국 헌정에서 국왕과 귀족원의 위상 및 기능을 독창적으로 설명했다.
《영국 헌정》에서 읽을 수 있는 주요 주제는 내각제 옹호론, 정치 제도와 인간성 및 국민성과의 관련성, 민주주의 비판론, 하층 사람들의 성향 분석 등이다. 이 주제들에 관한 배젓의 논설은 기본적으로 ‘빅토리아 시대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전개된 것이다. 더 나아가 배젓의 시각은 전체적으로 당시 영국의 번영과 위세에 만족하며 그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주의자의 시각이라고 평가된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그리고 반민주주의가 배젓의 주장을 평가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요소인 것이다. 더욱이 배젓의 분석과 주장이 21세기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그리고 반민주주의에 대한 파악을 넘어서 더욱 날카로운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200자평
영국 빅토리아 시대 가장 중요한 헌법 해설가인 월터 배젓의 헌정 분석서로, 내각제 옹호론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고려할 필수 사항들, 즉 내각제와 대통령제의 대비, 의회 작동에서 관건이 되는 요소들, 여론과 언론의 기능, 국민의 정치의식과 정치제도의 관계 등을 논의한다.
지은이
월터 배젓(Walter Bagehot, 1826∼1877)
영국이 세계 최고의 번영과 국제적 위세를 누리던 빅토리아 시대에 활약한 뛰어난 언론인이며 문필가다. 문법학교와 브리스톨 칼리지를 거쳐 개혁을 표방한 신생 대학인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공부했으며 22세에 최우등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나 법률가 대신 가업인 은행 경영과 문필가의 길을 선택했다. 다방면에 재능이 있던 그는 20대부터 문필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곧 큰 주목을 받았다. 세간에 그의 능력을 각인시킨 글은 《인콰이어러》의 특파원으로서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보도한 〈1851년 프랑스 쿠데타에 관한 편지〉다. 여기서 그는 프랑스 국민성을 주요 설명 인자로 채택한 독창적 설명과 재기 넘친 문체를 선보였다. 29세에 《내셔널 리뷰》라는 새 잡지를 공동 창간했는데, 여기에 발표한 의회 개혁에 관한 논설은 그를 당대 이슈에서 유망한 논객의 지위로 올려놓았다.
자유무역을 기치로 내건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창간한 윌슨(J. Wilson)의 딸과 결혼하고, 1861년부터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으로서 본격적인 언론 활동을 시작했다. 오늘날 150년이 넘는 역사를 쌓은 《이코노미스트》가 주간 평론난의 제목을 “배젓”이라고 쓸 만큼 그는 이 잡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표 저술로는 빅토리아 전성기의 영국 헌정 체제를 분석한 《영국 헌정》(1867), 진화론을 선구적으로 채용해 정치 발전의 기제를 구명한 《자연학과 정치학》(1872), 런던 은행과 금융계를 분석한 《롬바드 거리》(1873), 경제학 논저인 《영국 정치경제학의 전제》(1876) 등이 있다.
옮긴이
김종원
경희대학교에서 〈둔부의회의 무역 정책과 1651년의 항배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서유럽 무슬림과 국가 그리고 급진 이슬람주의》(공저, 아모르문디, 2009)가 있고, 번역서로 《제국》(민음사, 2006), 《과거는 낯선 나라다》(공역, 개마고원, 2006), 《역사의 격정: 자율적 반란의 역사》(공역, 미토, 2003), 《영국 제국주의: 1750∼1970》(공역, 동문선, 2001) 등이 있다.
이태숙
서울대학교에서 〈버크의 역사관과 보수주의〉로 석사 학위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웨이크필드와 식민체계화 운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제국주의와 영국 정치사를 주제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 《근대 영국 헌정: 역사와 담론》(한길사, 출간 예정), 《서유럽 무슬림과 국가 그리고 급진 이슬람주의》(공저, 아모르문디, 2009)가 있다. 번역서로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한길사, 2008), 《빅토리아 시대 명사들》(경희대학교출판국, 2003), 《영국 제국주의: 1750∼1970》(공역, 동문선, 2001) 등이 있다.
차례
제2판 서문
제1장 내각
제2장 군주제
제3장 군주제 (계속)
제4장 귀족원
제5장 평민원
제6장 내각 변경에 관해
제7장 이른바 견제와 균형
제8장 내각제의 전제 조건과 영국 내각제의 특징
제9장 영국 헌정의 역사와 그 결과 : 결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훌륭한 의회는 최고로 중요한 선거 단체이기도 하다. 의회가 한 나라의 법률을 제정하는 데 적당한 정도라면, 의회의 다수는 분명히 그 나라의 평균 지적 수준을 대표할 것이다. 분명히 의회의 다양한 의원들은 그 사회에서 발견될 여러 가지 개별적 관심, 견해, 편견을 대표할 것이다. 의회에는 온갖 특정 분파의 옹호자가 있을 것이고 어떠한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광범위한 중립 단체−국민 그 자체처럼 동질적이고 공정한−의 옹호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단체가 가능하다면, 행정부를 선출하는 데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단체다. 그 단체는 정치 활동이 활발하고 정치적 생활과 밀접하며 자신이 출범하게 한 업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따라서 그 단체는 그 사회에 존재하는 만큼의 지성을 보유한다.
2.
미국에서는 단일 경쟁에 중요성이 압도적으로 집중됨으로써 정당에 몰두하는 현상이 악화되고, 뇌물로 공직을 약속한 것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진다. 승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자기 마음대로 자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3.
소수는 대중의 이성을 장악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환상과 관습을 장악해 통치한다.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멀리 있는 사물에 관한 그들의 환상과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주변 사물에 관한 그들의 관습을 장악해 통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