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소설문학선집’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오영수의 작품은 근대적 도시문명으로부터 이격되어 있는 농촌, 산골, 어촌 등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특히 도시 문화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공동체적 정서와 친화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도시 공간과 생활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감이 작품 면면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전원 지향성에 대한 옹호 속에 인간의 본원적 심성에 대한 탐구가 주요한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당대의 리얼리티를 벗어나 초월적 낭만의 세계로 경도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인본주의를 바탕에 깔면서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분단 현실에 대한 극복 의지를 비롯하여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연민과 위무를 텍스트 내부에서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30여 년의 창작 활동 기간을 통틀어 145편 내외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작가는 그 문학적 특질로 온정과 선의(김동리), 긍정적 주인공(신동욱), 반문명적 인간성의 형상화(장문평), 한과 인정적 특징(천이두), 원초적 세계의 갈구(이현진) 등을 주목받아 왔다. 그리하여 대표적인 특징으로 향토성, 풍자성, 해학성 등을 토대로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복원하면서 반근대적 원시성을 텍스트 내부에 기입하면서 동시에 낭만주의적 풍경과 인간주의적 현실을 형상화하는 데에 천착해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자평
한국적 정서와 원형적 심상을 단편소설의 미학에 충실하게 담아낸 대표적인 서정소설 작가인 오영수의 9편의 작품을 실었다. 오영수의 소설에는 토착적인 한국인의 정서와 서정적 배경이 어우러져 서정 소설로 명명해도 좋을 향토적 서정성의 작품, 도시 생활의 비루하고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휴머니즘적 정서를 놓치지 않는 리얼리즘의 작품, 분단 역사가 강제해온 모순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인본주의적 세계 등이 드러난다.
지은이
오영수는 1911년 2월 11일 경남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 313번지에서 아버지 오시영 씨와 어머니 손필옥 씨 사이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월주(月洲) 또는 난계(蘭溪)이며 9세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28년 언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 일본 오사카에서 나니와중학 속성과를 수료하고 1935년 일본대학 전문부에 적을 두었으나 각기병으로 중퇴하고 귀국하여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동시를 발표한다. 193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국민예술원에 입학한 뒤 도중에 학도병에 징집당하지 않으려고 숨어 다닌다. 1938년 국민예술원을 졸업한 뒤에 귀국하여 동래 일신여고 출신의 김정선과 결혼한다. 1939년 만주 신경으로 가서 방랑생활을 하다가 1943년 처가가 있는 경남 양산군 일광면 산전리로 이사하여 김동리와 교우를 갖는다. 1945년 부산 경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국어를 가르친다.
1948년 시 <산골 아가>(<백민>)를 발표하고, 1949년 단편 <남이와 엿장수>(<고무신>으로 개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1950년 단편 <머루>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진행한다. 6·25를 맞아 청마 유치환과 함께 동부전선에 종군하고, 1954년 첫 창작집 ≪머루≫를 문화당에서 간행한다. 1955년 조연현을 주간으로 ≪현대문학≫ 창간호를 편집, 발행하고 제1회 한국문학가협회상을 수상한다. 1956년 제2창작집 ≪갯마을≫을 간행하고 1957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으로 이사하는데, 이 무렵부터 신경성 위궤양을 앓는다. 1958년 제3창작집 ≪명암≫을 간행하고 1959년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한다. 1960년 제4창작집 ≪메아리≫를 간행한다. 1963년 서울 도봉구 우이동으로 이사하고, 1965년 제5창작집 ≪수련≫을 간행한 뒤 1966년 위궤양으로 ≪현대문학≫사의 실무를 떠난다. 1968년 ≪오영수 전집≫ 전 5권을 현대서적에서 간행하고 1970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위원장에 피선된다. 1974년 ≪오영수 대표작 선집≫ 전 7권이 동림출판사에서 간행되고, 1977년 제22회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한다. 1978년 창작집 ≪읽어버린 도원≫을 간행하고 1979년 5월 15일 경남 울주군 웅촌면 곡천리 자택에서 간염으로 타계한 뒤 언양면 송태리 선영에 안장된다.
그는 토착적인 한국인의 정서와 풍경을 간결하고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작가다. 향토성 짙은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대립을 통해 선량한 인간성을 탐구하고 묘사해 온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서민층 생활의 애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 작품세계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각박한 현실의 폐해를 비판함으로써 따사로운 인정의 미학을 선보인다.
평소 성품이 소박하고 낚시와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만년에는 고향 근처로 낙향하여 요양과 창작에 정진했으나 1979년 발표한 단편 <특질고(特質考)>로 인해 뜻하지 않은 파문을 일으켜 정신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 작품은 사투리와 지역민의 특성을 담은 작품으로 작가의 의도는 향토성의 고찰 속에 방언의 고수를 피력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지만, 소설의 내용이 사실적 기록으로 받아들여져 특정 지역을 비하했다는 시비에 휘말리면서 결국 문협에서 오영수가 제명되고, 그의 사과문이 공개됨으로써 사건이 마무리된다.
엮은이
오태호는 1970년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집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철거되어, 지금은 그 자리에 왕복 6차선 도로가 나 있다. 어쩌면 유목적 도시인의 팔자를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장위동 근처의 장위국민학교와 남대문중학교, 서라벌고등학교를 타고난 체력으로 12년 동안 개근하고, 그러저러한 성적으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1989년 입학한다.
1989년은 정권과 시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승했다. 그래서 민족과 민중, 노동과 계급, 해방과 통일 등의 소위 굵직굵직한 이야깃거리들이 화제였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오롯한 나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화염병과 쇠파이프, 짱돌과 최루가스가 뒤범벅된 교정과 거리에서 ‘나’와 세계는 그렇게 서걱거리며 절뚝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내 주변의 다른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문학과 혁명을 동시에 꿈꾸는 몽상가였다. 몽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대학 4년이 끝나갈 무렵,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의 대학 시절 꿈은 표면적으로는 좌절되었다.
1993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이제 비로소 ‘나는 누구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진정한 청춘의 방황은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4년 내내 항상 ‘누구와 함께’였던 ‘우리 안의 나’에서, 대학원 입학시험을 혼자서 준비하는 6개월 동안에 나는 이제 ‘홀로인 나’로 거듭나야 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들어온 대학원 생활에서 나는 다시금 문학적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1998년 <황석영의 “장길산” 연구>로 석사 학위논문을 쓰고,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과 삶에 대해 더욱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된다. 박사 과정을 수료한 2000년부터는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비롯한 교양과목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1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되었고 이후 여기저기에 잡문을 쓰고 있다. 2004년에는 <황석영 소설의 근대성과 탈근대성 연구>로 박사 학위논문을 제출했고, 2005년에는 소설 평론들을 모아 ≪오래된 서사≫를, 2008년에는 시 평론들을 모아 ≪여백의 시학≫ 등 두 권의 평론집을 상재했다. 평론 <고요한 정신의 깊이들>로 제13회 ‘젊은평론가상’(2012)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학부대학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요즘 들어 문학은 삶과 현실을 숙성하게 한다는 모토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숙성은 말 그대로 빠름보다는 느림 쪽에 가 닿아 있는 표현이다. 대학시절에는 몹시 들떠 있다는 주변의 지적을 받았었고, 지금은 지나치게 가라앉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가급적 시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문학이 언어의 속살을 들추어 삶을 위무하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차례
고무신
머루
화산댁이
갯마을
박학도
후일담(後日譚)
은냇골 이야기
산딸기
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금하는 음식일수록 맘이 당기듯 잊어버리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놓치기 싫은 마음―그것은 해순이에게 까마득 사라져 가는 기억의 불씨를 솟구쳐 사르개를 지펴놓은 것과도 같았다.
-≪갯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