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볼테르가 다시 쓴 <오이디푸스>, 고전의 가장 현대적인 각색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비극의 전범으로 꼽으며 사건이 개연성과 필연성을 가지고 전개되는 점을 특히 높게 평가했다. 누가 여기에 반론을 펼 수 있었을까? 하지만 볼테르가 보기에 이 고전은 투박하기만 했다. 전막에 걸쳐 거의 모든 장면에서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 왕의 살해자이자 그의 버려진 아들이라는 게 명백히 암시되고 있음에도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사실을 의심조차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르네유, 드 라 모트 등 당시 내로라하던 고전극 작가들의 리메이크작들도 이런 오류를 답습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볼테르는 “그리스 시인들은 아무리 찬양해도 무방하지만, 그들을 모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리고 새로운 구상으로 <오이디푸스>를 다시 썼다. 주제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 오직 “신과 인간의 대립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에 초점을 맞춰 줄거리를 짰다. 테베 통치권에 관한 얘기도,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의 사랑 얘기도 걷어 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사건의 ‘개연성과 필연성’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상식적이고 논리적일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모든 사건이 그럴듯하게 전개되도록 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볼테르의 이런 시도는 관객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24세 청년 볼테르의 데뷔작은 고전 비극의 거장이었던 코르네유의 <오이디푸스>를 밀어 내고 프랑스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되었다.
잔인한 신과 결백한 인간의 이야기
볼테르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를 각색하면서 특히 주목한 대목은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가 각자 비밀로 간직해 온 신탁을 털어놓는 고백 장면이었다. 코르네유의 각색본에선 과감히 생략되었고, 볼테르의 지인들 역시 삭제하길 당부했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볼테르에겐 이 대목이 가장 중요했다. <오이디푸스> 창작에 돌입하기 전 이 장면만 따로 떼어 지인들에게 보였을 정도였다. 볼테르는 왜 이 장면에 주목했을까?
소포클레스는 이 장면을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의 모자 관계를 암시하는 장치로 썼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의 오만한 천성에 내려진 벌로 묘사했지만 볼테르는 여기서 신의 잔인한 면모를 봤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는 무서운 운명을 피해 보려 최선을 다해 발버둥 쳤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게 될까 두려워 조국을 떠나 방랑했고, 이오카스테는 아들과 상간하게 될까 두려워 모성을 거두고 피눈물을 쏟으며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은 무심하게도 둘을 기어이 예정된 운명으로 끌고 갔다. 두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면 신의 말씀을 그대로 믿은 것이었다. 신을 믿은 대가로 파국을 맞은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원작과 가장 차별화되는 대목이자 볼테르의 반교권주의의 씨앗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극작가 볼테르
지금은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철학 콩트 ≪캉디드≫로 더 잘 알려진 볼테르는 사실 극작가로 가장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런 볼테르에게 <오이디푸스>는 데뷔작인 동시에 극작가로서 명성을 안겨 준 첫 흥행작이었다. 이후로 볼테르는 극작품 52편을 남긴다. 코르네유와 라신이 평생 쓴 비극보다도 많다. 볼테르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선출될 수 있었던 것도 극작가로서 명성 덕분이었다. 단순히 많은 작품을 쓴 데만 그치지 않았다. 볼테르의 작품들은 흥행 성적도 좋았다. 1680년 이후 150년간 프랑스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작품들을 통틀어 가장 흥행한 작품 1위부터 6위까지가 모두 볼테르의 것이었다. 특히 데뷔작 <오이디푸스>의 성공 이후 볼테르는 ‘아루에’라는 본명을 버리고 필명 ‘볼테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문필가로서 볼테르가 <오이디푸스>와 함께 탄생한 것이다.
그가 극을 쓸 당시 프랑스 연극은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띠고 있었다. 이전 시기에 유행한 고전주의적 규칙을 따르되 합리적으로 적절히 변형하는 흐름과 고전주의를 완전히 거부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흐름이었다. 볼테르는 고전주의 규칙을 엄격히 따르면서도 사건이 논리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극을 구성했다. 무엇보다 주제가 효과적으로 강조된 고전의 ‘단순성’을 본받고자 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지 않고 오직 중심 주제에 집중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볼테르가 말하는 고전의 ‘단순성’이었고 미덕이었다. <오이디푸스>는 바로 그런 고전의 단순성을 최고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200자평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비극의 전범으로 꼽았다. 볼테르의 생각은 달랐다. 모든 정황과 증언이 진작부터 오이디푸스를 라이오스 왕의 아들로 지목하고 있었음에도 비극의 당사자들은 왜 마지막 순간까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까? 볼테르는 이런 전개의 억지성을 꼬집으며 완전히 새로운 <오이디푸스>를 썼다. 그의 데뷔작이었다. 청년 볼테르의 <오이디푸스>는 곧 최고의 비극 작가 코르네유가 쓴 <오이디푸스>를 밀어 내고 코메디프랑세즈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계몽주의 사상가로 더 잘 알려진 볼테르의 시작은 이처럼 재능 있는 ‘극작가’였다.
지은이
볼테르(Voltaire, 1694-1778)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ois Marie Arouet)’. 법조인이 되길 바랐던 부친의 바람을 저버리고 일찍이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다. 24세 이른 나이에 비극 <오이디푸스>로 유명세를 떨쳤다. 작가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발표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현재는 이들 작품보다 볼테르가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더 유명하다. ≪캉디드≫(1759), ≪자디그≫(1748), ≪랭제뉘≫(1767) 등이 대표작이다. 교권주의에 맞서 평생 투쟁했던 볼테르는 관용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모든 저술에서 이런 사상적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사재를 털어서까지 배타적인 종교주의에 희생된 사람들을 변호하고 도움으로써 실제로 관용을 실천했다. 오늘날 볼테르를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는 이유다. 철학자로, 작가로, 행동하는 지성으로 왕성히 활동했던 볼테르는 84세인 1778년 5월 30일에 영면에 들었다.
옮긴이
전종호는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교(파리 4대학교)에서 18세기 프랑스 문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아베 프레보(Abbé Prévost) 작품에 나타난 본성과 은총>. 프랑스 리옹 2대학교 18세기 연구소의 연구교수를 지냈다. 현재 서강대학교 유럽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지성사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볼테르와 예수회에 관한 연구로 <볼테르의 문학관에 끼친 예수회의 영향>, <볼테르의 서한문을 통해 본 18세기 초 예수회의 교육>, <볼테르의 <오이디푸스> 주제연구>, <볼테르의 한국관계 자료에 대하여>, <예수회의 ‘루이 르 그랑 콜레주(Collège Louis le Grand)’와 프랑스의 계몽주의>, <‘연극의 도덕성 논쟁’과 예수회의 연극론> 등의 논문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 연보
찾아보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저는 신들을 믿었습니다, 전하. 그리고 독실한 신앙심은 잔인하게,
아들에 대한 제 모정을 완전히 억눌렀습니다.
이 아우성치는 모성애는 우리의 신께 대항했고,
그 엄정한 법칙을 원망했으나 부질없는 짓이었지요.
범죄로 끌어들이려는 처절한 숙명으로부터
저는 이 어린 희생자를 막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운명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를 가엾게 여긴 나머지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오오, 불행한 만큼 죄 많은 연민이여!
오오, 거짓 신탁의 기만적인 모호함이여!
-96쪽
“신성한 장소에 순수함을 더럽히려 다시는 오지 말라.
신들은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 너를 거부했다.
그들은 불경한 제물을 절대로 받지 않는다.
너의 선물은 분노의 제단으로 가져가라.
그들의 뱀이 너를 찢어 버리라고 빌어라.
가라, 그들이 바로 네가 간청해야 할 신들이다.”
공포에 사로잡혀 나는 정신을 잃었소.
그 목소리가 내게 말했소. 왕비여 믿어지시오?
옛날 하늘이 당신의 아들을 위협했던
믿기지 않는 죄들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은 두려운 예언이,
이제는 바로 내가 아버지의 살해자가 될 것이라 했소.
-98쪽
오이디푸스 :결국, 이 끔찍한 신탁이 완수되었다.
내 두려움이 그 피할 수 없는 결과를 재촉한!
그리고 나는 결국 근친상간과 친부살해,
그 와중에 덕성까지 뒤죽박죽된 무서운 존재가 되었구나.
가련한 덕성이여, 헛되고 비통한 이름,
네 덕분에 나는 증오스러운 하루하루를 참아 낼 수 있었으나,
너는 나의 어두운 지배자에게 저항할 수 없었구나.
나는 피하려고 했으나 함정에 빠졌다.
-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