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야기 속에서 가난을 참다못해 도움을 청하려고 김진호를 찾아가는 이혈룡은 몰락한 양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전일의 맹세를 생각하며 찾아온 이혈룡을 모르는 체하고 죽이려 하는 김진호는 겉으로는 신의(信義)를 내세우면서도, 자기의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서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양반층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조선 후기에 양반층이 권력을 잡은 뒤, 이를 세습하는 벌열(閥閱) 집단과 권력의 주변에서 멀어져 몰락한 선비 집단으로 나누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대립과 갈등을 반영한 것이다.
옥단춘은 천인(賤人) 신분의 기생이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나고, 헌신적인 사랑과 신의를 지닌 인물이다. 그래서 정경부인(貞敬夫人)의 가자(加資)를 받고, 정승의 아내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다. 옥단춘의 헌신적인 사랑과 신의는 하층민들이 중히 여기는 윤리의식의 표현이라 하겠다.
지은이는 순정과 절개와 의리를 지닌 사람이라면 신분의 해방은 물론이고, 그에 상응(相應)하는 대우와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식을 드러냈다.
<옥단춘전>의 관계도-<춘향전>, <옥당춘>
<옥단춘전>과 <춘향전>은 문체, 표현 기교, 구성 등에서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옥단춘전>을 <춘향전>의 모방이거나 아류(亞流)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타당성은 그리 높지 않다. <옥단춘전>은 배경설화에서 <옥단춘전>으로의 단선적 이행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판소리 및 <춘향전>의 매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 작품이다. <옥단춘전>의 작자는 ≪청구야담≫이나 ≪계서야담≫에 실려 있는 김우항 이야기와 노진 이야기 같은 설화를 소설화하면서 주제, 인물의 성격, 문체 등 작품의 틀을 판소리 및 <춘향전>에서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옥단춘전>의 필사본 이본들은 저마다 판소리, 특히 <춘향전>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옥단춘전>은 의기설화의 구조와 <춘향전>의 구성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는 당나라의 백행간(白行簡)이 지은 소설 <이왜전(李娃傳)>은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실려 전해온다.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 때 인기를 끌었던 극본 <옥당춘>은 <이왜전>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작품이다. 중국의 극본 <옥당춘>과 우리나라 고소설 <옥단춘전>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제목이 유사하다./두 남녀 주인공의 신분이 동일하다./ 남주인공이 불우하게 되었다가 여주인공의 도움으로 곤경을 벗어나 출세한다./여주인공이 곤경에 처하게 되자 현달(顯達)한 남주인공이 구해준다./남녀주인공이 부부가 된다./왕금룡과 이혈룡, 옥당춘과 옥단춘, 심연림과 김진호 등 배역이 같다.
따라서 한국 고소설 <옥단춘전>이 중국의 극본 <옥당춘>의 영향 아래 지어진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옥단춘전>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만나게 된 동기가 색정(色情)이나 물질에 있지 않고, 남주인공이 불우하나 비범한 인물임을 간파한 기녀 옥단춘의 지인지감(知人之鑑)에 있었다는 점, 남주인공의 불행이 여주인공과의 관계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라는 점 등 이야기의 구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옥단춘전>에서는 이혈룡과 김진호를 동문수학한 친구 사이로 설정하여 갈등을 심화시키는 한편, 친구 사이의 의리와 우정을 강조했고, 옥단춘의 지인지감과 순정이 작품 서두부터 강조되고 있다는 점도 <옥당춘>과 다르다.
권세를 잡은 양반과 몰락한 양반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첨예하게 그리고, 옥단춘의 신분 해방을 나타낸 <옥단춘전>은 조선 후기 사회상의 반영이기도 하다. 다만 남녀 주인공의 신분,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도와주는 것과 인물 설정 등에서 두 작품의 관련성을 찾을 수도 있다. 이에 미루어 <옥단춘전>은 <옥당춘>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설화를 배경으로 해 조선 후기 사회상을 반영한 한국 고소설. 의로운 기생 옥단춘의 순정을 그린 애정소설이다.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윤리가 강조되고, 악을 행한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민중의 의식이 드러난다. 헌신적인 사랑과 신의를 지닌 옥단춘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하층민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윤리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옮긴이
최운식은 서울교육대학교 및 서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경대와 한국교원대 교수, 한국민속학회 회장, 국제어문학회 회장, 청람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이면서 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객원교수로 있다. 저서에는 ≪심청전 연구≫, ≪한국 고소설 연구≫, ≪한국 설화 연구≫, ≪한국 서사의 전통과 설화문학≫, ≪전래동화 교육의 이론과 실제≫, ≪한국인의 삶과 문화≫, ≪함께 떠나는 이야기 여행≫, ≪다시 떠나는 이야기 여행≫, ≪한국의 민담≫, ≪옛날 옛적에≫, ≪가을 햇빛 비치는 창가에서≫ 등 50여 권이 있다.
차례
이혈룡과 김진호가 세의를 지키며 서로 도울 것을 맹세하다
혈룡은 곤궁하게 되고, 진호는 평안 감사가 되어 호사하다
진호가 거지꼴로 찾아온 혈룡을 대동강 물에 던져 죽이라 하다
옥단춘이 사공을 매수하여 혈룡을 살리고 도와주다
혈룡이 과거에 급제하고 암행어사가 되다
혈룡이 거지 차림으로 옥단춘을 찾아가 마음을 떠보다
진호가 다시 찾아온 혈룡을 옥단춘과 함께 죽이라 하다
혈룡이 진호를 봉고파직하고 평안 감사가 되다
혈룡이 높은 벼슬을 하며 옥단춘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다
원문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거년에 나를 물에 넣으라 한 것은 어찌한 일이며, 또 오늘날 나를 물에 넣으려 한 뜻은 무엇인고? 그전에 너와 나 언약하던 일을 생각지 못하느냐? 오늘날 무도(無道)한 너를 대하여 오히려 더러운 말은 아니 하거니와, 그 죄상(罪狀)을 생각하면 너를 당장 죽일 것이로되, 왕명이 계시었고, 너는 나라 죄인 되었기로 자하(自下) 수죄(數罪)는 아니 하거니와 우선 장파(狀罷)하고, 나라에 장계를 올리려 하니 그리 알라.